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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TV시리즈 <호박전>
2003-01-02

못생겨도 씩씩하게만 자라다오!

둥글넓적한 얼굴, 쭉 찢어진 눈, 펑퍼짐한 몸매…. 비온 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www.b-on-d.com)가 기획하는 13부작 TV시리즈 <호박전>은 신데렐라나 백설공주가 아니라 못생기고 힘센 여주인공들을 내세웠다. ‘마법의 호박단지에 얽힌 전설’인 <호박전>은 그래서 ‘호박 같은 소녀들에 대한 전설’로 풀이해도 좋을 듯싶다.

배경은 조선시대. 호박단지 속에 꽃향기를 저장하는 게 취미인 강이와 태권도에 능한 의리파 청이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친구다. 너무 못생겨서 또래들에게 놀림받는 강이를 청이는 언제나 감싸준다. 그런 강이에게 비밀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꽃향기를 이용해서 마법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이들이 사는 마을에 웅얼초가 피면서 시작된다. 사악한 기운을 퍼뜨리는 웅얼초는 악은 강하게 하고 선은 약하게 하는 풀로, 대마왕 다킬의 세력을 상징한다. 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강이와 청이, 그리고 청이의 남동생 소쿠리 보이만이 대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길을 떠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인물이 가세하니, 바로 하늘나라에서 아기 도깨비들을 지키던 잠깐 왕자. 실수로 대마왕에게 도깨비들을 빼앗기고, 모니터 도깨비로 변해버린 그는 세상을 혼란하게 만드는 26마리의 도깨비를 봉인하면 본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 왕자는 강이 일행을 만나 함께 모험을 시작하는데….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지원하는 ‘2002년 하반기 우수파일럿 제작지원’ 선정작인 <호박전>은 전통적인 요소와 현대적인 요소를 적절히 섞은 판타지애니메이션이다. 대마왕이니, 모니터니, 게임이니, 조선시대답지 않은 요소들이 등장하지만 참빗과 부채, 처녀귀신을 모티브로 한 주변 캐릭터가 상당히 기발하다. 거기다가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까지. 이런 개성이 미국 메이저 제작사들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최종 해외평가에서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호박전>의 개성은 색감에서도 두드러진다. 꽃향기가 주요 에너지라서 그런지 3분가량의 데모 영상에서 드러나는 색감은 온통 꽃분홍이다. 그런데도 어색하지 않다. 조만간 파일럿도 완성될 예정이라고.

<언년이>로 알려진 유진희 감독이 이끄는 비온 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4명의 정예 스탭으로 움직이는 창작집단. 그동안 단편에 주력해온 유진희 감독은 “투자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자생력 있는 스튜디오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일단 산업적인 역량이 커져야 단편이나 기획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만의 색깔로 틈새시장을 노리겠다는 비온 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TV시리즈와 스폿애니메이션, 로고 및 타이틀애니메이션, 일러스트레이션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외주와 기획을 함께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 있다. 이들의 비범한 개성이 호박 같은 소녀들을 주인공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디지털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비온 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그려내는 <호박전>. 선악 구도 속에서도 주인공들의 첫사랑과 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그려내는 섬세함, 그리고 소심함을 극복하고 마침내 자신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강이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작품이다.김일림/ 월간 <뉴타입> 기자 illim@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