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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의 오!컬트 <브리짓 존스의 일기>
2003-01-08

나,내년엔 진짜 달라진다아∼!

따로 보면 각자가 다 멀쩡해도 조합해놓으면 칙칙해지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이런 거. 해질녘. 운전. 트레이시 채프먼, 삼십대, 독신. 이중 내가 원한을 가진 건 하나도 없다. 그런데 며칠 전 퇴근길에 차 안에서 트레이시 채프먼의 신보를 틀어놓고 흥얼거리며 가다가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게다가 그때 하필 나의 복장은 완전히 10년차 ‘커리어 우먼’의 그것이었다).

으악… 이건 노처녀를 주제로 한 전시 포스터에 등장하면 딱 어울릴 풍경이잖아. 보드카 병나발을 불면서 <올 바이 마이셀프>를 부르는 브리짓 존스의 사진 옆에 나란히 걸려, ‘그녀의 낮과 밤’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으면 딱이겠군. 나는 황급히 갓길에 차를 세운 뒤 몇달 동안 의자 밑을 굴러다니던 에미넴 음반의 먼지를 털어 시디 플레이어에 끼워넣었다. 스스로의 검열에 걸려 좋아하는 음악도 맘대로 들을 수도 없다니 아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그리고 새해가 밝았다. 드디어 나는 브리짓 존스와 동갑이 된 것이다. 만세! 만세! 만세! 으흑…. 지지난해에 극장에서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볼 때만 해도 내가 서른두살까지 그녀와 목표- 술 끊고 살 빼고 멋진 남자를 만나자!- 를 공유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것은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그 전해에도 나의 목표였으니까. 지난해 1월1일 일기장에 써내려간 나의 필체는 얼마나 단호했던가. 그러나 2002년 결산 스코어. 3개월 등록했던 피트니스센터는 한달 동안 3일 나간 것이 전부이고, 단체 술자리라도 있었던 다음날이면, 전날 밤 노래방 바닥에 구멍을 파서 나를 생매장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고 어김없이 후회하며 머리를 찧는다.

커리어 직장생활 8년차에 인터뷰 나가서 취재원의 열변을 20분도 넘게 듣고 난 다음 하는 질문이라곤 “죄송한데요, 볼펜 좀 빌려주실 수 있나요” 정도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보면서 가장 가슴에 꽂혔던 장면도 바로 그가 진행을 맡았던 출판기념회였다. 나의 일에서 가장 끔찍하게 여겨온 부분이 이런 상황 한가운데 서 있어야 할 때다. 유명인이나 폼 잡는 인간들(특히 한 예술하는 인간들) 사이를 오가며 친한 척하고 아는 척해야 하는, 그러나 단 한명도 나의 아는 척으로 속여넘기지 못하고 ‘쟤는 뭐야’하는 눈길을 받으며 화장실 가는 척 표표히 자리를 떠야 했던 그런 상황들. 결국 혼자 구석에서 퍼마시다가 인생이 즐거워져서는 횡설수설… 으으으으…. 정말이지 이 장면을 보면서 브리짓 존스랑 얼싸안고 울부짖고 싶었다. “신이여 왜 우리를 이렇게 만드셨나이까 쿠오바디스!”

그리고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보여준 중요한 진실 하나. 가족마저 심정적으로는 내다버린 서른두살의 여자에게 믿을 만한 건 친구밖에 없다는 것. 허구한 날 남자에게 채이고 징징대거나, 입에 걸레를 물고 다니는 수준으로 욕쟁이거나, 게이인 브리짓의 친구들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그다지 매력도, 경쟁력도 없는 인간들이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정말 이 영화는 코미디가 아니라 호러무비가 됐을 것이다. 나 역시 ‘대한민국 1%’(대한민국에서 1% 정도의 특이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그러니까 지극히 비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또는 경쟁력 1%을 자랑하는)인 내 친구들이 없었다면 서른한살의 마지막 밤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공포영화가 3편까지 저절로 완성된다. 얘들아 고마워, 그렇지만 올 연말에는 반드시 너희들을 배신하고야 말겠어. 음하하하하. (젠장 올해는 진짜 했던 결심 다시 안 하기로 맘먹었었는데….)김은형/ <한겨레> 문화부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