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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둔중함,들어올림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 O.S.T
2003-01-11

성기완의 영화음악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2편이 1편보다는 감동이 덜하다. 1편에서의 상상력이 훨씬 더 생동감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사운드 측면에서 보더라도 1편이 훨씬 더 공을 많이 들인 느낌이다. 1편의 사운드는 효과음, 음악, 대사가 어우러져 매우 독창적인 경지를 제시했다. 1편의 사운드는, 1편의 주제와 흡사하게 ‘아래’에 무게중심을 두는 사운드였고, 이는 다른 어떤 영화에서도 들을 수 없는 독특한 것이었다. 그러나 2편의 사운드는 이와 같은 집중력이 조금 떨어진다. 어떤 면에서는, 1편이 대서사시를 방불케 하는 복잡무비한 판타지의 세계 속으로 관객을 빠뜨리기 위해 ‘효과’를 많이 강조했다면 2편은 이제 그 판타지의 세계를 양극화하고 있는 이념에 좀더 충실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래서 2편은 관념적이다. 선과 악의 대회전이 벌어지는 검고 음울한 땅은 비현실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관념의 현시이다. 관념이 세계를 조정한다면 그건 비극적이다. 왜냐하면 삶 앞에서 삶을 통제하는 관념은 삶의 세계를 ‘운명’의 메커니즘으로 재조작하기 때문이다. 2편이 더 암울하게 다가오는 건 그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발걸음이 힘겹고 느리다.

2편의 음악이 가지는 우선적인 특징 역시 ‘둔중함’일 것이다. 1편에 이어 음악을 맡고 있는 하워드 쇼어는 3편까지 가야 할 운명을 지닌 음악가. 그의 발걸음 역시 불의 산으로 향하는 주인공들의 발걸음만큼이나 무거워 보인다. 영화의 진행 자체가 등장인물들의 그 무거운 발걸음처럼 전개되는데, 음악은 그 ‘무거움’의 음향적 표현이다. 1편에서 대립과 대조법이 음악을 이끌어갔다면 2편에서는 한데 뭉쳐진 무거운 선율들의 암중모색과도 같은 진행이 음악의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옮긴다. 그 ‘느림’과 ‘무게’가 하워드 쇼어의 가장 주목할 만한 개성이다. 가령 존 윌리엄스를 떠올려보자. 그의 음악은 삼각형, 사각형, 하는 식으로 매우 도형적이다. 꼭지점들이 딱딱 박혀 있다. 리듬은 느릴 때나 빠를 때나 명쾌하고 대개의 멜로디는 팡파르풍이다. 그러나 하워드 쇼어의 음악은 꼭지점들이 허물어져 있다. 육중한 멜로디의 화성은 자세히 들어보면 순진할 정도로 단순하긴 하지만 그 형체들은 괴물의 얼굴처럼 뭉개져 있고 흐름은 협곡 싸움의 와중에 빠개진 병사의 뇌수처럼 무정형이다. 그런 면에서는 <택시 드라이버>의 영화음악가인 거장 버나드 허먼의 도시적인 기괴함과 상통한다.

피터 잭슨의 회색빛 화면과 하워드 쇼어의 음울하고 거대한 ‘젤 타입’의 음악은 동양의 오행(五行)으로 치자면 ‘물’의 성질이 많아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협곡의 대혈투는 거대한 물의 터짐에 의해 괴물들이 떠내려가면서 끝난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이 역시 가공할 규모를 지닌 영화인 것은, 영화가 그 무거운 ‘젤 타입’의 관념을 들어올린다는 데 있다. 음악에서는 신비스러운 중세 성가풍의 멜로디들이 그 둔중한 흐름을 들어올린다. 영화는 대단한 힘으로 느슨하게 비탈진 언덕을 한발 한발 올라간다. 이 느슨한 상승감이 영화의 힘이다. 무엇이 그것을 담보하나 역설적으로 그것은 디테일의 섬세함이다. “내가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매료된 것은 사악한 것이 이토록 작은 물건이라는 점”이라는 피터 잭슨의 언급과도 통한다.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이토록 느린 플라톤적 고양감 속에는 백인우월주의도 섞여 있다. 네발로 기는 사악하고 불쌍한 괴물의 얼굴은 몽골인의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눈부시게 흰 백인 영웅들. 그들은 2편에서도 아직 가야 할 곳이 남아 있는 듯, 저 먼 산을 바라보며 3편을 예고한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