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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바담 감독의 <닉 오브 타임>
2003-01-15

시한부 살인지령

Nick of Time, 1995년감독 존 바담 출연 조니 뎁 MBC 1월18일(토) 밤 11시10분

영화 제목인 <닉 오브 타임>(Nick Of Time)은 ‘아슬아슬한 순간’을 일컫는 관용구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기에 한 남자가 딸과 함께 기차역에 도착한 뒤 기이한 일을 겪는다. 경찰로 보이는 사람들이 어린 딸을 인질로 잡고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딸의 목숨을 살려내고 싶으면 우리가 지시하는 대로, 살인할 것. 정해진 시간 내에.” 어처구니가 없다. 그럼에도 남자는 제안을 뿌리치기 힘들다. 권총을 억지로 손에 쥐고, 살인을 해야 하는 장소로 이동하면서 전신에 땀이 흐른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것인가. <닉 오브 타임>은 ‘제한시간’의 모티브를 응용하는 스릴러다. 한 시간 내에 주인공은 성공적으로 모든 일을 완수해야 한다. 그것은 영화 상영시간과 거의 일치한다.

회계사 왓슨은 존스라는 이에게 협박을 당한다. 오후 1시30분까지 누군가를 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왓슨이 총을 겨눠야 하는 상대는 새로 선출된 여성 주지사다. 왓슨은 주지사의 여비서, 경호원 등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들 역시 죽임을 당하거나 왓슨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왓슨은 시간이 흐를수록 주지사 암살음모의 실체에 접근해가는데 주지사의 측근이 사건에 깊숙이 개입해 있다.

<닉 오브 타임>은 흥미로운 스릴러다. 영화는 시간 내에 살인임무를 끝내야 하는 왓슨이라는 남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중산층 가장에서, 순식간에 암살범이 되어야 하는 기막힌 운명을 지닌 것이다. 왓슨은 숨가쁘게 해결책을 모색한다. 주지사 주변인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거나 호텔에서 일하는 종업원에게 상황을 설명한다. 그렇지만 상황은 악화된다. 주지사의 주변에서 일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주지사의 죽음을 바라고 있으며 또한 같은 패거리임이 밝혀진다. 농담 같은 구석이 없지 않지만, 이 과정은 영화 속 주인공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닉 오브 타임>이 긴장감을 자아내는 것은 영화가 하나의 공간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주지사가 기자회견과 연설을 하기로 예정된 호텔이다. 왓슨은 이 단일한 공간을 미로처럼 헤매고 다닌다. 그가 가는 곳마다 존스라는 악당(캐릭터는 크리스토퍼 워컨이 연기했다. 과연 악역 전문배우!)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협박을 멈추지 않는다. 계단과 엘리베이터, 연설회가 열리는 홀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상황을 유연하게 담아낸다.

존 바담 감독은 1970년대, 80년대 할리우드의 흥행 보증수표 같은 존재였다. <토요일 밤의 열기>(1977)에서 <위험한 게임>(1983), <잠복근무>(1987), <전선위의 참새>(1989) 등의 제목만 나열하는 것만으로 연출자의 활약상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매끈하고 상업성이 있으며, 아이디어를 겸비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닉 오브 타임>은 스릴러의 고전이 되기엔 부족한 감이 없지 않지만, 장르영화로서는 충분히 포만감을 준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