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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신년 특별기획 <K·O·R·E·A>
2003-01-15

`대∼한민국`의 이면

지난 한해, ‘대한민국’이란 단어는 연일 상종가를 기록했다. 6월 한달 동안 무슨 주문처럼 반복된 “대~한민국”이란 구호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을 넘어 일본, 대만으로 확산되었다는 ‘한류’로 인해 국제적 자부심이 한껏 부풀었던데다가, 연말에는 미군 장갑차 사건으로 인해 광화문 거리에 또다시 대한민국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 맥락이야 다르다 해도 대한민국을 외치는 사람들의 가슴 한 귀퉁이에 묘한 애국심이 옹송거리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애국심이라는 게 유별나긴 하다. 외국 여행을 갈 때 배낭 한가운데 태극기를 붙이고 다닌다거나 하는 것은 애교로 봐줄 만하다. IMF가 터졌을 때 장롱 속 금붙이를 몽땅 긁어다 나라를 위해 바친다거나, 민족감정을 건드리는 사건이라도 터지면 규탄대회니 인터넷 테러를 벌이는 것을 보면 조금 끔찍스럽기까지 하다. 거기에 유사 이래 9천 몇번의 외침을 받고서도 살아남았다느니,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단일혈통의 민족이라느니 하는 믿기 어려운 역사적 ‘증언’까지 덧붙여지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은 그야말로 성역 불가침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자랑스런 대한민국은 우리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일까 MBC의 신년 특별기획 5부작 는 이 물음에서 시작하고 있다. 지난해 다큐멘터리 <미국>을 통해 보여주었던 균형 잡힌 관찰력으로 이번에는 우리 자신을 들여다본 것이다. 그리고 그 눈매는 훨씬 매서워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프로그램에 나타난 대한민국, 혹은 ‘KOREA’라는 이름은 그다지 아름답거나 떳떳하지 못하다. 오히려 궁색하고, 치졸하며, 속 좁은 나라에 가깝다. 국제 원조를 다룬 1부 에서부터 그 부끄러운 초상이 여실히 드러난다. 경제규모는 세계 13위이지만 국제원조에는 GNP의 0.1%도 사용하지 않는 나라가 바로 한국인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가 ‘경제적 동물’이라고 멸시하는 일본은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원조국이며, 북유럽 국가들은 GNP의 1%가량을 자신들보다 못한 나라를 돕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당할 때는 이 나라의 인색함에 분통이 터질 지경이다. 외국인노동자를 다룬 5부 <그들도 우리처럼>에 이르면 지난해의 자랑스러웠던 ‘대~한민국’은 그 마지막 꼬리까지 내려야 할 판이다. 그들이 당한 폭력과 원색적인 욕설 앞에서는 한국사회가 ‘GNP 인종주의’에 빠져 있다는 박노자 교수의 일침조차 사치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2부 <KOREA를 배우려 해도>와 3부 <빛나는 문화 초라한 문화원>, 4부 <외국 교과서 속의 KOREA>에서는 각각 외국에서의 한국학의 위상, 한국문화원의 실태, 외국 교과서에 실린 한국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대학이나 박물관에서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푸대접을 받는 사정이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 흥분할 것도, 더이상 한탄할 것도 없다. 문제는 이런 푸대접을 단순히 ‘국력의 차이’일 뿐 우리 자신은 빛나는 문화민족이라고 자위하며 팔짱만 끼고 있는 현실이다. 제작진은 이러한 소극적 태도에 대해 적극적 투자와 관심만이 이런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충고한다. 2편에서는 아무런 지원이 없어 소멸해가고 있는 독일의 한국학과 공격적인 지원으로 그 규모를 확장해가고 있는 하버드대학의 한국학을 비교하며 그 해법을 제시하고, 4편에서는 외국 교과서 편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일본과 독일의 예를 들어 우리의 정책 부재를 비판하고 나선다.

별볼일도 없으면서, 벌어놓은 돈도 좋은 데 쓰지 못하는 치사한 졸부로서 ‘KOREA’를 그린 이 프로그램은, 한국이나 한국인을 주제로 다루는 다큐멘터리들이 대개 얄팍한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데 그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대단한 용기를 내고 있는 셈이다. 신년 벽두부터 싫은 소리 해대는 것도 그리 맘 편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더구나 우리의 치부를 드러낸 뒤, 그 대안으로 보여주는 다른 나라의 상황이라는 것이 너무나 이상적이었기에 그 씁쓸함은 더할 수밖에 없다. GNP의 1% 이상을 국제 원조에 사용하는 북유럽의 국가들을 보면 우리의 인색함이 더 도드라지고, 제3세계에서 온 외국인노동자들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 노르웨이의 시민사회를 보면 우리의 근거없는 편견이 더없이 한심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위스키 수입액이 국제 원조액보다 많은 나라. 아시아에서 인기있다는 연예인 뉴스에는 열광하지만 그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에게는 폭력과 욕설을 퍼붓는 나라. 2003년, 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은 이토록 부끄럽다. 김형진/ 자유기고가 ofotherspace@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