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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이르는 길,<백기완의 통일 이야기>
2003-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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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를 살며 민주화를 염원했던 대학생 중 백기완의 <자주 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주 고름…>은 민중적인 설화를 들려주는 전통-정통 이야기꾼의 강건하고 유려한 입담과 민족의 지상 과제 통일의 전망이 중첩되는, 그렇게 정치와 예술이 중첩되는 빛나는 대목이었다.

87년 6월 민주화 대항쟁을 수십만명의 감동적인 육체로, 육체의 전망으로 치른 뒤 두렵고 벅찬 마음으로 대통령선거를 지켜보았던 시민들이라면 사자갈기머리 대통령 후보 백기완의 대갈일성이 몇십년 케케묵은 우리네 노예근성을 통쾌하게 빠쇄가는, 그렇게 스스로 빠쇄지던 쾌감을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갖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백기완은 선구적인 통일꾼이고 늙지 않는 민주화 투사며 폭발적 인기를 누리던 정치가고, 민중-민족 예술가들의 권위 혹은 정부였다.

그런데, 정작 군사정권이 끝나고 김영삼 ‘문민’정권, 김대중 ‘국민’정부가 이어지면서 현실은 그의 ‘이상’과 크게 어긋났고 그 현상에 대응하면서 거꾸로 그의, 정치와 경제의 이상적인 결합은 깨지게 된다. 그는 울분에 젖었고 울분은 종종 울화로 치달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솔직한 눈물, 내가 보기에 희귀한, 순정의 눈물이 있었다. 모든 것을 아프게 받아들이고 고난을 통해 자신의 전망을 넓혀가는 매개이자 내용으로서 눈물.

<자주 고름…> 이래 그의 책이 아담하고 예쁘장한 옷을 입은 적은 없다. 그것이야말로 적게는 오해였고 크게는 무지로 인한 홀대였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의 글은 무엇보다 문학적이고 예술적이다.

‘전투적 미학’을 과시했던 ‘운동권’출판사에서 펴낸 이제까지의 ‘백기완 책’들은 백기완의 예술성을 모종의, 시대에 뒤늦은 누추로 보이게 하는 점이 없지 않았다.

<백기완의 통일 이야기>는 출판의 당대미학을 갖추었고, 그 효과는 놀랍다. 다소 읽기가 까다로워 보였던, 혹은 (순 우리말 사용이) 고집스러워 보였던 그의 글이 매우 독특한, 수준 높은, 그리고 고전적이니 향취를 풍긴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통일=노나메기’의 내용이 순정한 눈물의 생애를 입고 여느 해박한 통일론 따위가 도저히 넘볼 수 없는 논리적 당위한 품격 높은 예술성을 발한다.

<자주 고름…>은 딸에게 주는 편지였다. <백기완의…>는 미래의 모든 손자들에게 주는 ‘통일=이야기’다. 그렇다. 이 책은 <자주 고름…>의 위대한 만년작이다. 부디 그의 ‘통일=이야기’가 노무현 정책과는 상생하기를.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