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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리베트 감독의 <잔다르크: 감옥편>
2003-01-22

히스테리에 빠진 성녀

Jean La Pucelle: Les Prisons1994년, 감독 자크 리베트 출연 상드린 보네르 EBS 1월25일(토) 밤 10시

자크 리베트 감독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일원이면서 접근하기 까다로운 감독이다. 그의 영화는 상영시간이 길기로 유명하며 실험적 색채가 짙기로도 악명이 높다. 자크 리베트의 영화로는 드물게 상업적으로 성공했던 <미치광이 같은 사랑>의 오리지널 버전은 무려 4시간을 상회한다. 2부작으로 제작한 <잔다르크> 역시 두편을 합치면 4시간짜리 대작이다. <잔다르크: 감옥편>은 잔다르크가 대군을 이끌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뒤 맞이하게 되었던 비극적 운명을 담고 있다. 여기서 신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존재로 추앙받았던 잔다르크는 서서히 몰락의 징조를 띤다. 영화는 로베르 브레송의 <잔다르크의 재판>(1962)에서 볼 수 있었던 극도의 금욕적 스타일과 비교할 만하다.

프랑스 왕위에 오른 샤를은 측근의 영향으로 영국과 협정을 맺고 파리를 탈환하려는 의지를 상실한다. 잔다르크는 영국군을 상대로 전투에서 연승을 거두며 왕을 설득하지만 오히려 왕의 제지를 받는다. 그럼에도 전투를 멈추지 않던 잔다르크는 적에게 사로잡히는 신세가 된다. 샤를을 격렬하게 증오하는 필립 왕자는 잔다르크를 영국인들에게 넘기고 종교재판이 열리게 된다.

<잔다르크: 전쟁편>에서 자크 리베트 감독은 전투장면을 다수 생락했다. 전쟁터에서 승리를 거두는 잔다르크의 외면보다 그녀의 내면세계에 비중을 둔 것이다. <감옥편>에서 잔다르크는 적들의 손에 붙잡힌 뒤 종교적 문제에 대해 고뇌하고 회의를 거듭한다. 영화에선 그녀에 대한 재판과정이 누락되어 있다. 대신, 세밀한 에피소드를 통해 역사적 인물인 잔다르크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한다. 예컨대 옷에 관한 묘사가 그렇다. 영화 속 잔다르크는 포로가 되었음에도, 그리고 다른 여성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옷을 벗길 주저한다. 이는 잔다르크가 엄숙한 종교인들에게 ‘여성’으로서, 그리고 같은 여성에게도 마찬가지로 위협적인 존재였음을 암시한다. 영화는 잔다르크가 겪는 전락의 과정을 스케치하고 있다. 그녀는 감옥에서 겁탈의 대상이 되며 고통 속에서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 이것은 그녀가 지녔던 성녀 이미지를 과감하게 탈색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자신이 화형당할지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성녀의 모습은, 여느 잔다르크 영화와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이다.

영화구조는 단순하다. 인터뷰 구성으로 잔다르크 주변인이 등장해 내레이션을 들려주고 있으며 영화의 시간은 일직선으로 흘러간다. 잔다르크가 기도를 올리는 성당 내부 등을 자크 리베크 감독은 팬(pan)과 짧은 거리의 트래킹을 활용해 촬영함으로써 극의 긴장감을 조율한다. “자크 리베트는 심리학적이고 정치적인 억압, 미학적 억압 사이에서 생명력 있는 평행선을 발견했다”는 어느 영화학자의 언급은, 정확한 지적이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