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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 료타로의 역사소설 <료마가 간다>
2003-01-27

위대한 일본인,걸어나왔다

일본 최고의 역사소설가는 시바 료타로가 첫머리에 꼽힌다. ‘요시카와 에이지가 책상 위의 원고지와 펜 하나로 소설을 탈고했다면, 시바 료타로는 트럭 한대분의 자료가 필요하다’는 말처럼 시바 료타로는 철저한 자료조사를 통해 일본인의 원형이 될 만한 역사적 인물을 잡아내고, 그 캐릭터를 생생하게 창조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시바 료타로는 역사소설을 통해 일본의 전후세대에게 ‘일본인이 나아갈 길과 일본인의 원형’을 제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 지난 1천년간 가장 위대한 일본인을 꼽았을 때 1위가 사카모토 료마였다. 전국시대를 마감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2위이고, 오다 노부나가는 3위였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이끌면서 에도 막부를 무너뜨린 사카모토 료마가 최고의 일본인으로 부각된 것은 상당 부분 시바 료타로의 덕이라 할 수 있다. 료마가 중요한 역사적 인물이기는 하지만, 현대 일본인의 귀감이 될 만한 영웅으로 정착된 것은 1962년부터 <산케이신문>에 연재했던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면서 신드롬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130여판, 1억부 이상이 팔리면서 현대 일본인들에게 ‘료마 전설’을 정착시킨 <료마가 간다>는 ‘메이지 혁명이라는 정치적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탁월한 협상력을 발휘해서 에도 막부를 쓰러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카모토 료마를 통하여 일본인의 갈 길을 제시하였다.

시고쿠의 도사현에서 태어난 하급 무사 사카모토 료마는 에도로 검술 유학을 왔다가 개방을 요구하는 미국의 함선을 목격한다. 처음에는 양이를 주장했지만, 차츰 그들의 힘을 받아들여 근대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카모토 료마는 권위에 짓눌리지 않고, 일찌감치 해외에 눈을 돌려 일본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너른 시야와 발빠른 행동력으로 근대 일본의 문을 열어젖힌 사카모토 료마는, 굳어 있는 관료체제에 도전하는 21세기 벤처 기업가들에게도 절대적인 존경을 받고 있다.

60년대 초반에 쓰여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료마라는 인물형은 고루하지 않다. 료마가 일본인을 사로잡은 것은 기존의 권위와 질서는 물론 개인의 욕망이나 사심에도 전혀 얽매이지 않는 독특한 캐릭터에서도 연유한다. 국수주의적 태도와 남성우월주의적인 시각 때문에 비판받는 시바 료타로의 탁월한 능력은 역사책의 한 페이지에 머물러 있던 인물을 현실로 끌어내서 숨쉬게 만드는 놀라운 ‘의제 설정’ 능력이다. 지금 우리의 역사소설에서도 가장 필요한 바로 그것 말이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lotusid@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