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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밖에 못하니까 한가해요,<미소>의 조성하
사진 정진환최수임 2003-01-29

혹시 이 사람의 얼굴을 본 기억이 나는가. <인샬라>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자폭하는 전투기 조종사, <화산고>에서 화산고 5인방 중 한명. 연극을 좀 본 사람이라면 <뜨거운 바다>의 형사부장이나 뮤지컬 <돈 키호테>의 마부장이었던 그를 알아볼지도 모르겠다.

“저는 막차 인생인가봐요.” <화산고>에도 크랭크인 며칠 전 캐스팅됐다는 조성하는, <미소>에서도 역시 크랭크인을 불과 하루 앞둔 날에 캐스팅되었다며 털털한 웃음을 짓는다. 연극 <뜨거운 바다>를 끝내고 대학로에서 호프 한잔을 들이켜고 있을 때, 우연히 만난 임순례 감독이 “갑자기 하기로 했던 사람이 못하게 됐는데, 오디션을 다시 한번 보자”고 해 수순을 밟았다고. 임순례 감독과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오디션 때 처음 만난 사이로, 고향에서 사업하는 친구 역을 할 뻔 했는데 <화산고> 촬영이랑 겹쳐서 못했다가 다시 <미소> 오디션에서 만난 적이 있던 사이다. 그냥 지나가버린 줄 알았던 만남들이 몇겹 쌓여 열매를 맺은 셈.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병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사진작가 소정(추상미)의 이야기인 <미소>에서, 조성하는 소정이 여행을 다니다 머무르는 경비행장의 비행강사로 나온다. 술로 소일하는 어둡고 거친 성격의 인물. 강가의 비행장에 있는 창고를 빌려 숙식을 하던 소정은, 그와 우연히 정사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 파국으로 치닫는다. “비행강사는 어쩌면 소정하고 비슷한 인물이에요. 둘 다 고립돼 있는 인물이죠. 시나리오엔 안 나오지만 전, 아마도 그 비행강사가 파일럿이 되려다 좌절한 인물이 아닐까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고1 때 연극반에 든 이후 서울예대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대학로 연극판에서 활동하고… 연극은 조성하에게 그냥 자연스럽게 몸담게 된 ‘물’이었다. 하지만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연극배우를 한 지 10년이 넘고 결혼을 해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는데도 끼니걱정, 차비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자 무대를 내려와야 하지 않을까라는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할 줄 아는 게 연기 빼고는 운전밖에 없더라구요. 택시나 트럭을 해볼까, 아님 장사를 해볼까, 그러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출연 제의가 들어오고 다시 연기를 하게 됐어요. 아직도 아버지는 경찰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하시지만, 아무래도 전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인가봐요.”

보기 드물게 날카로우면서 어둠이 서린 눈매를 가진 조성하는, 그 표정 때문인지 연극에서 주로 “성격있는 역할들”을 해왔다고 한다. 산적 두목, 간사한 인간, 지능적인 형사 등등. 올 3월 방영을 시작하는 MBC 주말드라마 <죽도록 사랑해>에서도 70∼80년대의 “비리비리한 양아치”역을 맡아 그 눈매를 한번 더 써먹을 예정. 이 밖에 <웁스!>라는 로맨틱코미디 연극도 한편 연습하고 있단다. “바쁘시겠네요” 했더니 “절대, 바쁘다고 쓰지 마세요!”라고. “예술인으로서가 아니라 직업인으로서, 가장으로서 배우”를 하기로 맘먹은 이상, 그는 웬만큼 바빠지기 전까지는 “늘 한가한 배우”로 알려지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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