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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 김지운이 꾸는 한겨울밤의 악몽 [3]
2003-02-05

가장 행복한 순간에 가장 비극적인 것을 떠올린다

<장화, 홍련>의 단서들

가족괴담 <장화, 홍련>은 이른바 ‘계모형 가정 비극’ <장화홍련전>에서 권선징악의 테마를 발라내고, 가족이라는 허상에 대한 결벽증적 집착과 소녀들의 성장통을 충돌시킨 호러다. 친엄마를 여의고 서울에서 요양하던 수미, 수연 자매가 아버지 무현이 새엄마 은주와 새 가정을 꾸린 집으로 돌아옴으로써 괴담은 시작된다. 30대 초반의 아름다운 여자 은주는 전처 자식을 반기는 듯하지만 동생과 아버지에게 죽은 엄마를 대신하려는 수연과 생모를 빼닮은 수미, 과거를 내몰고 싶어하는 계모의 강박관념은 부자연스럽게 충돌하고 집안에는 귀기가 감돈다. 시나리오는 실종자를 찾는 경찰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액자틀을 포함하고 있지만 최종 편집본에 포함될지는 아직 미지수. 가족 구성원 각자가 안고 있는 아물지 않은 상처를 덮어두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모서리가 부딪히는 광경의 에너지가 초자연적 현상이 없어도 상당한 긴장을 유발한다. <장화, 홍련>은 2월 말 크랭크업하고 3월에 편집, 4월에 믹싱을 마무리지은 뒤 초여름 개봉할 예정이다.

이미지 한컷의 이미지와 마주앉는 것. 그리고 화면 뒤에 도사린 스토리를 상상하는 것. 바로 김지운 영화의 시작이다. <조용한 가족>은 블랙코미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노르웨이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에서 출발했다. <반칙왕>의 심상은 처절한 육체적 긴장 속에 평정을 획득한 먹이를 향해 비상하는 호랑이의 그림에서 왔고 <커밍 아웃>과 <쓰리>는 르네 마그리트의 <공동발명>과 <빛의 제국>에서 영감을 빌려왔다. 신디 셔먼의 사진, 존 에버렛 밀레,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등 라파엘 전파 회화와 함께 <장화, 홍련>의 청사진이 된 것은 코닥이 발행하는 <무빙 이미지> 지난해 봄호 표지에 실린 사진. “가장 행복한 순간에 가장 비극적인 것을 떠올린다”는 김지운 감독은 청명한 봄날 손을 맞잡고 뛰어가는 두 소녀의 사진에서 미성년의 꽃 같은 시절에 맛보는 죽음보다 끔찍한 공포와 혼돈을 상상했다

세트와 오브제 전남 벌교에 야외세트가, 양수리 종합촬영소 제2세트에 실내세트가 지어졌던 자매의 집은 1980년대에 마지막으로 개축한 것처럼 보이는 연대불명의 3층 적산가옥. 목조인 탓에 발 디딜 때마다 집 자체가 신음한다. 어두운 연륜이 감긴 앤티크가구와 낡음과 청결함이 묘하게 맞물려 있으며 1층은 완벽한 가정을 꿈꾸는 새엄마가, 꽃무늬 벽지가 발린 2층은 소녀들이 지배한다. <장화, 홍련>은 공포영화답게 공간에 캐릭터를 부여했지만 인물을 내리누르지는 않도록 절제했다. 울부짖는 아이 동상과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를 공간을 이고 있는 늙은 나무 뿌리의 그림은 미술팀이 직접 제작했다.

인물, 사운드, 조명 아버지, 두 자매, 새엄마 4인의 실내극인 <장화, 홍련>의 최대 도전은 배우의 선택, 사운드와 조명의 조율, 그리고 이 이야기의 본질을 대변하는 일련의 ‘인상’들이 유연한 흐름을 이루게 만드는 데 있다. 촬영이 진행되면서 비중을 더하고 있는 인물은 염정아가 연기하는 계모 은주. “장애물 경기는 장애물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흥미로운 정도가 좌우된다.” 장애물로서 계모가 파괴해야 할 대상을 넘어 그만큼 강력하게 형상화될 거라는 뜻이다. <장화, 홍련>의 조명은 알려진 대로 천을 필터삼아 빛을 걸르는 앰비언스를 이용했다. 전체적으로 커튼을 내린 대낮의 광선이 어딘가 퇴폐적인 벽지색과 화음을 낸다. 지금까지 자신의 영화 중 가장 만족스런 사운드를 얻었던 <메모리즈>에서 인형 목 돌아가는 음향에 본인의 음성도 섞었던 김지운 감독은 <장화, 홍련>에서 일상적 오브제의 사운드를 활용할 생각. 전기 난로 철창을 무전기로 긁어서 나는 음향 등을 이미 채집해두었다. 김혜리 verme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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