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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화지들이 꼽은 2002년 베스트 10 [1]
2003-02-05

엄지손가락은 어디로?

2002년이 저물었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너무 심한 ‘뒷북’일까요. 이럴 때 편리한 것이 음력이지요. 음력으로, 우리는 아직 2002년 세밑을 보내고 있는 셈입니다. 2002년을 돌아보는 김에, 좀 넓게 돌아보기로 합니다. 한국 밖의 영화계에선 2002년 한해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영화를 ‘띄우고’ 또 ‘씹었는지’ 말입니다. 때맞춰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지들이 속속 2002년 결산 기사를 내놓아주었습니다. 이에 <씨네21>은 <필름 코멘트> <빌리지 보이스> <뉴욕타임스> <타임> <가디언>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카이에 뒤 시네마> <키네마순보>가 선정한 2002년 최고·최악의 영화목록을 갈무리했습니다. 이미 보신 영화는 어디쯤 자리잡고 있는지, 아직 만나지 못한 미지의 걸작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세요. - 편집자정리 박은영 cinepark@hani.co.kr

미국 인디영화 나란히 1,2위

<필름 코멘트>가 꼽은 2002년 베스트 10

개빈 스미스를 비롯한 <필름 코멘트>의 내부 필진, <빌리지 보이스> <뉴욕타임스> <버라이어티> 등에 기고하는 스타급 평론가 59명은 일제히 미국 인디영화(또는 그 정신을 계승한 영화)의 손을 들어줬다. 토드 헤인즈의 멜로드라마 <파 프롬 헤븐>과 스파이크 존즈의 <어댑테이션>을 각각 2002년 ‘최선’의 영화와 ‘차선’의 영화로 선정한 것이다.

<필름 코멘트>가 2002년 최고의 작품으로 꼽은 <파 프롬 헤븐>은 할리우드 고전 멜로의 대부인 더글러스 서커의 <천국이 허락하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 90년대 뉴퀴어시네마를 이끈 주역답게 토드 헤인즈는 <파 프롬 헤븐>에 호모 섹슈얼리티와 인종문제를 덧붙여 제기하는데, <필름 코멘트>는 그 내용보다는 ‘화법’에 주목하고 있다.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화려한 영상이 흑인-게이-여자의 관계에 대한 관객의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게 한다는 것. 에이미 터빈은 “극도로 탐미적인 영상 때문에 정치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이 영화는 매우 급진적이다”라고 평하면서 그 ‘모순의 힘’을 칭송하고 있다. 이어 <필름 코멘트>가 스파이크 존즈의 <어댑테이션>을 “역대 스튜디오 작품 중 가장 대담하고 기발한 작품”으로 평가, 2위에 올렸다는 사실은 반역과 혁신의 요소, 대안의 가능성이 주요 선정 기준이었음을 가늠케 한다.

이 밖에도 <필름 코멘트>는 2002년 영화계의 경향을 아우르는 문제작들을 되짚어보고 있다. 매번 논쟁적인 다큐멘터리로 박스오피스에서 선전하는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 고대 신화를 장엄하고도 현대적인 디지털 소프 오페라로 탈바꿈시킨 에스키모영화 <패스트 러너> 등이 그런 작품들. <갱스 오브 뉴욕>은 거장 스코시즈가 9·11 이후 패닉에 빠진 스튜디오와 타협한 결과물로 엇갈린 반응을 낳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렬한 서사극이라고 판정했다. 소쿠로프의 <러시아 방주>와 키아로스타미의 <텐>도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신기원을 이룬 작품들로 기억돼야 한다고 정리하고 있다.

재미난 것은 <마이 빅 팻 그릭 웨딩>에 대한 반응. <필름 코멘트>는 이 영화가 평론가들의 견해와는 무관하게 과대 평가됐다면서, “멍청한 틴에이저들을 겨냥한 영화들 속에서 돋보인, 멍청한 50대를 위한 영화일 뿐”이라고 깎아내렸다. 아닌 게 아니라 ‘인턴의 습격’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한 워스트영화 10에서, <마이 빅 팻 그릭 웨딩>은 당당히 1위에 올라 있다.

천국이 허락한 1위

<빌리지 보이스>가 꼽은 2002년 베스트 10

“천국의 나날들”(Days of Heaven)! <빌리지 보이스>에서 영화 전문지를 비롯해 주간지와 웹진의 필자 78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2년 최고의 영화’ 설문은 <파 프롬 헤븐>의 압승으로 끝났다. 유권자() 60% 이상의 열렬한 지지를 얻어 최고의 영화로 선정된 <파 프롬 헤븐>의 영예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부문별 베스트의 감독과 각본 부문에서 토드 헤인즈는 <펀치 드렁크 러브>의 폴 토머스 앤더슨을 가볍게 따돌렸고, 주연배우 줄리언 무어 역시 <갱스 오브 뉴욕>의 대니얼 데이 루이스를 제압, 최우수 연기자로 선정됐다.

<빌리지 보이스>의 평론가 짐 호버먼은 <파 프롬 헤븐>의 승리는 이미 영화의 개봉 시점에 예견됐다고 밝힌다. ‘적어도’ 대안문화를 지지하는 매체의 필자들로 꾸려진 <빌리지 보이스>의 캠프에선 그러하다는 것. “<파 프롬 헤븐>에 대한 열광은 역설적이다. 사람들은 이 영화가 한때 인기를 누렸으나 지금은 영락한, 더글러스 서크의 50년대 여성영화 스타일을 부활시켰기 때문에 열광하고 또 같은 이유로 혐오한다.” 2002년 베스트영화 목록의 특징은 하나로 아우를 만한 경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는 <멀홀랜드 드라이브> <화양연화> <메멘토> 등 2001년의 영화들 대부분이 주제로든 형식으로든 ‘꿈’ 또는 ‘판타지’로 묶였던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 그러나 기이한 로드 무비(<이 투 마마> <어바웃 슈미트>), 형이상학적 우화(<어댑테이션> <거기 지금 몇시니>), 역사 예술영화(<러시아 방주> <패스트 러너>), 이채로운 로맨틱코미디(<펀치 드렁크 러브> <그녀에게>) 등 각양각색의 영화를 만난 기쁨도 만만치 않았다고, 호버먼은 회술한다.

<빌리지 보이스>의 초이스와 관객의 선택이 만나는 지점은 10위권 밖으로, <갱스 오브 뉴욕>(11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12위), <마이너리티 리포트>(16위),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29위), <스파이더 맨>(48위) 등이 그 주요 작품들이다. 이 밖에 소수로부터 선택받았지만, 열렬한 지지를 얻은 작품들로는 <모번 캘러의 여행>(13위), <피아니스트>(17위), (25위), <캐치 미 이프 유 캔>(49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