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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한 천재의 야심작, 햇빛 속으로

70년대를 대표하는 프랑스 감독의 하나로 꼽히는 장 외스타슈(Jean Eustache)의 (Numero zero)(아트님, 두 개의 e에 오른쪽 위가 올라가는 액센트 붙습니다!)이 제작된 지 30년 만인 지난 1월22일 개봉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집단운동으로서의 누벨바그가 쇠락하기 시작하는 1963년 데뷔한 외스타슈는 이 영화를 만들기 전 두편의 중편영화와 두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평단에서 주목받았지만 감독으로 명성을 얻은 것은 1973년 작품인 <엄마와 창녀>를 발표하고 나서다. 은 곧 0에서 다시 출발한다는 감독의 의도를 타이틀에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으로 감독이 이전까지 만든 자신의 작품들을 비판하고 영화의 역사가 쌓아놓은 수많은 기법들을 벗어던지려는 선언문과 같은 성격을 띤다.

외스타슈는 프랑스 현대사를 체화하고 있는 외할머니의 삶의 기록을 자신과의 대화형태로 영화에 담는다. 동원된 장비는 16mm 카메라 두대와 2시간 분량의 필름이 전부였다. 완성된 영화시간은 정확히 사용된 필름의 시간과 일치한다. 감독이 직접 슬래이트를 치고 이것은 편집에서 잘려나가지 않고 그대로 영화의 일부로 남아 있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바람둥이 남편 때문에 속앓이를 한 할머니의 삶의 기록은 할머니가 자신의 손자인 외스타슈를 언급하면서 끝난다.

완성된 영화를 감독은 장 마리 스트라우브 감독을 포함한 극소수의 친구들에게만 보여주고 극장에 상영하는 것을 거부한 채 영화가 세월과 함께 점점 가치가 높아서 모두가 보고 싶어할 때 보여주겠다는 야심차지만 황당한 결정을 내린다. 영화를 본 친구들은 걸작이라고 환호했지만 그외의 사람들에게는 원하는 만큼의 반향을 못 얻은 채 시간은 흐른다. 외스타슈가 1981년 자살하고 저주받은 천재와 같은 전설적인 인물이 되면서 미공개 작품인 역시 본 사람은 거의 없지만 전설적인 작품이 되어 감독의 의도대로 모든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욕망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화제 속에 개봉되기에 이른다.

이 영화가 감동을 주는 것은 영화의 기원으로 돌아감을 통해 외스타슈가 진정한 감독으로 태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감독은 거듭나기 위해 영화의 문법이 없던 영화의 기원으로 돌아가 카메라와 대상 사이에 놓인 자신의 위치를 아무것도 영화에 대해 모르는 사람처럼 다시 고민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만큼이나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낸 자신의 가족사를 다시 정리하고 할머니를 통해 ‘감독’으로 불림받는 것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감독의 바람은 이뤄진 것 같다. 이 영화 이후 7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의 하나로 서슴없이 꼽히는 <엄마와 창녀> 즉 제대로 된 첫 번째 작품, (Numero un)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파리=성지혜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