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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관을 넘어서,<기묘한 이야기>
김혜리 2003-02-18

■ Story

한밤중 교외의 작은 역을 나서려던 승객이 갑작스런 폭우로 발이 묶인다. 도리없이 역사 안에서 비를 피하게 된 호기심 많은 대학생, 샐러리맨, 젊은 커플에게 선글라스를 낀 정체불명의 중년 신사(다모리)는 기묘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 Review

음식과 잠, 섹스를 구하는 절체절명의 허기에는 비할 바 아니겠지만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갈증은 질기고 뿌리 깊다. 스토리가 희극이냐 비극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본성상 기승전결 구조를 지닌 ‘이야기’는 선명한 형상없이 소용돌이치고 있을 현실의 치명적 지루함에 가상이나마 질서를 부여해 우리를 위안하기 때문이다.

옴니버스영화 <기묘한 이야기>는 제목대로 다른 어떤 영화적 요소보다 스토리의 기발함에 승부를 거는 기획이다. 반 시간 안에 공포와 놀라움을 반드시 서비스하도록 설계된 <환상특급> <어메이징 스토리>를 떠올리면 수긍이 쉽다.

1990년 4월 처음 전파를 탄 <후지TV> 인기 프로그램 <세상의 기묘한 이야기>의 1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극장판 <기묘한 이야기>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브라운관이 감당하기 힘든 소재를 가공한 호러, 코믹시대극, 멜로드라마의 삼색 코스 요리. 본래는 4개의 에피소드로 제작됐으나 한국 개봉판에서는 세 번째 이야기 <체스>가 누락됐다.

첫 번째 에피소드 <눈 속의 하룻밤>은 전형적인 설산괴담. 얼어붙은 산중에 추락한 여객기 생존자 5명은 산장을 찾아헤매던 도중 부상자를 포기한다. 살아남은 네명은 교대로 눈을 붙이지만, 누가 누구를 깨웠나 헤아려보다 다섯 번째 불침번의 존재를 깨닫는다. 사방을 가늠할 수 없는 공포, 비디오 카메라에 잡힌 소녀의 표정이 <블레어 윗치>를 연상시킨다. 2화 <사무라이의 핸드폰>은 SF적 상상력에 기초한 코믹시대극. 18세기 초 무사 오이시는 골목에서 이해불능의 물건, 휴대폰을 습득한다. 300년 뒤의 미래에서 걸려온 전화는 당대의 진실을 묻지만, 역사책에 영웅으로 기록된 오이시의 실상은 비분강개한 부하들이 정세를 고할 때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애인의 이불에서 기어나오는 게으른 남자다. 명분과 대의를 숭상하는 시대를 거스르는 꽤 모던한(?) 개인주의자였던 주인공이 거꾸로 후세의 인식에 맞추어 18세기적 인물로 변하는 아이러니가 재미있다. 오구라 히사오 감독의 마지막 에피소드 <결혼가상체험>은 결혼에 쿨링 오프(반품 가능한 시험 사용기간)가 있다면 어떨까라는 가정에서 나온 소품. 결혼을 진행하던 연인이 예식장에서 패키지로 제공하는 결혼 시뮬레이션을 체험한 뒤 갈등에 빠진다. 사랑은 변질된다는 대전제를 인정하고 불가피한 변화 속에서도 함락되지 않을 마지막 작은 보루가 무엇인지 그 보루에 생을 걸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는 교훈의 로맨스. <러브레터>의 소년 후지이 이쓰키(가시와바라 다카시)가 나온다. 김혜리 vermeer @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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