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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말 많은 영화의 정치학

골룸이 부시 대통령과 닮았다면?

한동안 가수 보아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세 번째 편인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 출연하게 될 것이라는 낭설이 있었다. 해리 포터가 무도회에 참석할 때 파트너로 원하는 동양계 여자선배 초챙 역에 낙점되었다는 것. 물론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 관련 인터넷 홈페이지들의 게시판에 몇몇 팬들이 올린 글이 와전되면서 퍼져나갔던 것으로,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즉시 그런 제의를 받은 적이 없다는 해명을 하면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과연 그런 내용이 기사거리가 될 정도였는지는 의문이다. 당시 소문의 진원지로 지목되었던 머글넷(mugglenet.com), 해리포터닷컴(iharrypotter.com), 인터넷 무비 데이터베이스(www.imdb.com) 등의 사이트들을 뒤져본 결과, 보아에 대한 소문은 한국인으로 보이는 아주 극소수 몇몇 네티즌들끼리 주거니받거니 하는 수준에 불과해 보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당시 그러한 관련 사이트들의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었던 것은, 리처드 해리스를 대신해 덤블도어를 연기할 배우와 새로운 등장인물인 시리어스 블랙에는 누가 어울리느냐 하는 것 등이었다. 그중 덤블도어 교장 역에는 강력한 후보자로 거론되던 이안 매켈런이 아닌 <고스포드 파크>의 마이클 갬본으로 결정되었고, 시리어스 블랙에는 게리 올드먼이 발탁된 것으로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아직까지도 초챙을 연기할 동양계 여배우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여전히 몇몇 배우들에 대한 소문이 돌기는 하지만 적임자를 못 찾은 것. 따라서 보아가 후보로 거론되었던 것과 상관없이, 한동안 초챙 역의 향배는 <해리 포터> 팬들 사이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3편의 제작과 관련된 뉴스에 시선이 가 있는 상황에서, <해리 포터> 팬들은 물론 전세계 네티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건이 일어났다.

푸틴 대통령과 도비의 얼굴.

도비는 최소한 자자 빙크스만큼 황당한 캐릭터는 아니라고 네티즌들은 평가를 내렸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시리어스 블랙으로 출연할 것으로 보이는 게리 올드먼.

지난 1월 중순경 <해리 포터>의 관련 웹사이트들에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 나온 집사 요정 도비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닮았으면, 그 이면에는 정치적으로 불온한 의도가 숨어 있다는 주장이 올라왔던 것이다. 그 중거로 도비와 푸틴 대통령의 얼굴이 비교된 사진이 함께 올라와 있었는데, 도비의 특징적인 코와 눈매 그리고 입술형태가 푸틴 대통령과 아주 흡사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네티즌들의 반응이었다. 그렇게 눈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유사성 때문에, 그 이슈는 삽시간에 전세계 네티즌들을 발칵 뒤집어놓기 충분했다.

그런 논란에 더욱 불을 붙인 것은 1월20일 <BBC>가 운영하는 어린이를 위한 웹사이트에서 그 유사성을 묻는 투표를 시작한 것이었다. 1월 말까지 약 9200여명이 투표에 참여한 결과는, 무려 57%가 그 유사성에 동의한다는 것. 사태가 그렇게 일파만파로 커지자 처음에는 별다른 문제가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던 제작사 워너브러더스와 피해(?)의 당사자로 지목된 러시아쪽에서도 이상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일단 러시아에서는 신문과 방송에서 그 사실이 주요 뉴스로 전해지기 시작했고, 이어 한 법률회사에 ‘고의적으로 국가 지도자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려 한 것’이라는 표현을 들며 법률적인 소송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것. 정확히 그 법률회사의 이름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러시아 변호사회의 대변인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그와 관련된 소송이 제기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법정에서 그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이다. 만약 그런 시도를 한다면 수많은 전문가들을 불러다가 그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겠지만, 그러기 어려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 말에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 내부의 관련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것은 당연한 일. 처음엔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가 의외로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자, 극도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일체의 코멘트를 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면서 이면에서는 이슈를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에 관련된 웹페이지들의 삭제를 비공식적으로 요청했고, 는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하고 그 페이지들을 결국 없애버렸다. 대신 지금은 ‘도비가 <스타워즈 에피소드1>의 자자 빙크스 수준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투표가 올라와 네티즌들의 관심을 분산시키고 있는 중이다. 참고로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반대세력을 가지고 있는 자자 빙크스와의 비교에 대해 2월11일 현재까지 약 71%의 네티즌들이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어쩌면 별것 아닐 수 있는 일이 세계적인 정치·외교적 이슈로 비화할 뻔한 이번 사태는 인터넷의 영향력과 부작용을 새삼 확인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문제가 확산되는 중에 푸틴 대통령의 색다른 면이 세상에 알려졌다는 사실이다. 지난 2000년 푸틴 대통령의 이미지를 가진 인형이 등장하는 풍자 TV프로그램에 대해, 일군의 러시아 교수들이 문제를 제기했고 그뒤에는 푸틴 대통령의 보좌관들이 있었던 것이 새삼 기사화되었던 것. 그 기사를 접한 네티즌들은 아직까지 푸틴 대통령 혹은 그 측근들만이라도 권위주의적인 면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정치가들의 권위적인 면을 싫어한다는 한 네티즌은 머글넷 게시판에 “하긴,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에 등장하는 골룸이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닮았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가 더 궁금하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어린이 BBC <해리 포터 페이지> : http://news.bbc.co.uk/cbbcnews/hi/static/find_out/specials/harry_potter/default.stm

도비 팬 홈페이지 : http://www.devils-snare.org/dobby/elf.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