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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칸다하르>

Safar e Ghandehar, 2001년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 출연 닐로우파 파지라EBS 3월1일(토) 밤 10시

익명의 여성으로부터 온 편지

<칸다하르>는 사실 끔찍한 영화다.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곳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고 있다. 지뢰 때문에 많은 이들이 팔과 다리를 잃고, 어린이들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 그런데 <칸다하르>를 이슬람 문명권에 대한 현실비판의 목소리만을 담은 영화라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영화는, 신비로운 구석이 있다. 그것은 ‘부르카’라고 불리는 아프간 전통의상에 상당 부분 의지하고 있다. 성인이 된 여성이 입어야 하는 부르카는 일반적 의상과는 거리를 둔다. 말 그대로 눈과 코, 입을 비롯해 여성의 신체 전부를 뒤덮은 천을 의미하는 것이다. 부르카를 입은 아프간 여성들은 사진을 찍을 때 타인과 대화를 나눌 때 이 천조각을 몸에서 뗄 수 없다. 철저한 익명성을 강요받는 것이다. 부르카의 여인들은 뜨거운 사막을 걸어다니고, 구슬프게 통곡하며 이따금 흥얼흥얼 노래를 부른다. 이것은 아프간의 처절한 현실에서 길어올린, 보석 같은 초현실적 이미지다.

저널리스트 나파스는 칸다하르에 사는 여동생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나파스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으로 현재 캐나다에서 일하고 있다. 동생은 20세기 마지막 개기일식이 있는 날, 자살하겠다는 편지를 썼다. 여동생의 죽음을 막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온 나파스는 한 가족의 여행에 동반해 길을 떠난다. <칸다하르>는 허공에서 영화가 시작한다.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하는 나파스의 시점에서 카메라는 황량한 지상을 내려다본다. 나파스는 녹음기를 들고 열심히 자신의 상황을 녹음하고 있다. 이곳에 오게 된 목적과 동기, 그리고 여행의 어려움 등. 영화는 칸다하르라는 지방을 향하는 이 여성의 궤적을 담은 로드무비다. <칸다하르>는 최소한의 드라마 품새를 유지하면서 극을 구성한다. 나파스는 도중에 많은 이들과 만나는데 그것은 신체를 손상당한 사람들, 종교적 믿음의 문제, 그리고 부르카를 입은 여성들의 오래 묵은 사연이다. 나파스는 길을 재촉하면서 그들의 사연을 녹음기에 꼼꼼하게 담는다. 영화는 즉흥적인 연출에 기대는 부분이 적지 않다. 나파스라는 주인공이 엮는 드라마는, 실제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삶과 충돌하면서 후퇴하고 부분적으로 변색된 흔적이 눈에 띈다. 사막에서 빚어진 몽환적인 이미지, 그리고 민속음악의 향연은 영화를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선 어딘가에서 쉼없이 운동하게끔 작용한다.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은 <사이클리스트>(1989)와 <가베>(1996) 등의 영화를 만든 적 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처럼 이란 출신인 그는 어린이와 종교, 현실인식이라는 이란영화의 보편적 특징을 공유하는 연출자다. 최근 이란영화들이 단순 서사를 반복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데 반해 마흐말바프 감독의 영화는, 영화 매체에 대한 독창적 실험을 하면서 이란영화의 새로운 미학적 영토를 개척하고 있다고 평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