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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웨이] 절대 이데올로기로 군림하는 프랑스의 예술지상주의
2003-02-28

오! 예술

프랑스는 아직도 봉건적인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 나라다. 여성 총리가 나오면 Le Premiere 인지 La Premiere인지 고민하는 나라다. 사무엘 헌팅턴이 지난 2월 초에 파리에 있었다면 서구 전체를 상호충돌하는 여러 문명 가운데 하나로 묶은 것을 후회했을 거다. 외부세계를 중시하는 영미계열 국가들과 모든 사물들에 성별을 매기는 것을 즐길 정도로 정신세계 속으로의 몰입을 즐기는 프랑스, 독일 등의 대륙계 국가들의 차이는 좀처럼 좁히기 힘들다.

무역협상이 올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문화시장개방 반대세력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개방주도 세력들이 힘을 겨루고 있다. 이 힘겨루기에서 항공기 제조업이 제조업의 총아이듯이 문화산업의 총아인 영화 및 텔레비전 산업은 매우 중요한 부문이다. 한 세력의 맏형 노릇을 하는 프랑스가 지난 2월2일부터 4일까지 세계 각국의 반대세력을 규합했던 파리회의의 내용과 형식은 문명의 충돌을 연상시켰다(한국은 예술인들의 참여로 영화산업을 지켜낸 기린아로 소개되었다).

대회의 구호인 문화적 다양성(cultural diversity)은 이미 하나의 정치적 신념과 보편적 정의개념으로 완성되어 있었고 자국문화산업 보호라는 즉자적인 목표들에 대한 추호의 부끄러움도 완전히 녹여버리고 있었다. 회의 첫날 엘리제궁에 참가단을 초대했던 시라크 대통령의 연설을 들어보자. “예술가는 인생과 세계에 향취와 감각과 미를 부여한다. 인류의 반사경으로서 인류의 내적 영혼을 드러낸다. 우리 역사의 증인이며, 시대의 모순에 대한 우리의 항거의 화신이며, 더 나은 현실을 위한 우리의 갈망의 화신이다…(중략)… 그는 자유와 신망을 받아야만 한다. 사회는 창작자들과 예술가들에게 정당한 자리를 허용하는 만큼 발전한다.” 20세기를 풍미했던 사상가들이 특정계급을 찬양하던 그 목소리, 프랑스의 어느 대문호가 사회발전의 척도를 특정 사회적 약자들의 처우에 맞추었던 목소리가 들린다.

대회의 분위기는 반(反)WTO로 진보로 분류할 수 없는 일종의 예술지상주의 바로 그것이었다. 주최단체인 극작가/연기예술인저작권협회(SACD)의 저작권에 대한 입장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카피레프트 얘기는 꺼내보지도 못했다. 이들의 1차 목표는 우선 예술의 진흥이지 사회변혁도 아니고 민중해방도 아니었다. ‘문화적 다양성’의 중요성만이 철학적 인류학적 수사들로 장식되어 그 흔한 농담 하나없이 발제시간을 넘겨가며 반복, 강조되었고 이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다른 진보적인 명제들과의 타협 및 연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별로 없이 주최쪽이 미리 만들어놓은 결의문이 만장일치의 박수로 통과되었다.

회의를 마치면서 느낀 것은 일종의 자신감이었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이다. 돈이라는 매개체 없이도 삶의 질을 고양하는 문화유산이 가득하고 새로운 문화유산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길거리의 휴지통과 우체통 하나도 감미롭지 않은 것이 없다. 미국에 유일하게 ‘No’라고 할 수 있는 힘은 이 국부(國富)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엄청난 국부를 만들고 유지시키는 원동력은 예술인들에 대한 대우가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대우 못지않게 사회발전의 척도가 될 수 있다고 강변하며, 아무 부끄럼없이 “바보, 예술이 문제잖아”(It’s art, stupid!)라고 정치인들에게 외치는 예술가들의 고집스러운 신념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신념은 조직적으로 세련되지도 않고 사상적으로 강고하지도 않은 삼류 노동조합식 회의에서 나온다. 필자의 눈에 허술해 보이기만 하는 회의를 하면서도 자신들이 따라가야 할 ‘국제수준’은 없다고 생각하는 프랑스가 부러운 이유는 무엇일까?

돌아오기 전날 밤 그 시대의 카뮈들이 동시대의 트로츠키들과 놀았다는 몽파르나스의 어느 카페에서 술을 마셨다. 길 건너의 다른 유명한 카페 간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박았다. 카페주인이 손을 휘저으면서 왜 자신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다른 집을 배경으로 사진을 박느냐며 자신의 술집이 보이도록 바쪽을 향해서도 한장 박으란다. 술집주인은 자신의 카페를 일종의 예술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박경신/ 변호사·법무법인 한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