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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란> 송해성 감독의 편지
2001-05-02

내게로 돌아 오는 먼길

● 프롤로그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이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한 교수님께 ‘내가 영화감독이 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편지를 썼던 십여년

전 그날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의 여배우에게 ‘당신이 연기할 캐릭터의 히스토리’에 대해 긴 편지를 썼던 수개월 전 그날처럼요. 나는 이

편지를 부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 우체통 앞에서 잠깐 망설입니다. 덜컥 편지를 넣어버린 뒤에 후회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다 결국 부치기로 합니다.

수신자가 너무 많군요. <카라>를 봤던 사람들,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 나를 믿었던 사람들, 나를 의심했던 사람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또 부칩니다. 그리고 편지 첫머리에 <파이란>이라는 제목을 달아 봅니다.

#1.

<카라> 이후, 강재처럼 살았습니다

<카라>가 개봉되던 극장 앞에서 지인들을 만났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영화를 보지 않은 채 그냥 돌아가는 길이었죠.

“네 영화가 아니”니까 볼 필요가 없다면서. 내 의사와 무관하게 합류했고, 저작권 소송에 휘말려 촬영이 중단됐었지만, 시작한 이상 내가 마무리해야

했던 프로젝트. 그들 말마따나 <카라>는 내 영화가 아니었지만, 싫든 좋든 내 필모그래피에 남을 영화였습니다. 한동안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왜 <카라>를 찍었냐”는 질문을 피할 길이 없었고, 때마다 앵무새처럼 같은 변명을 되풀이하는 게 싫었거든요. 그리고

<파이란>의 강재처럼 종일 오락실에서 시간을 죽였습니다. 5천원짜리 경품을 타기 위해 6만∼7만원의 게임비를 날리면서요. 문득 이게

뭔가,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희망을 품고 용기를 내고 호기를 부려볼 만큼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번쩍 뜨게 할 만한 ‘물건’을 내놓았다가도 다음 기회를 만들지 못하는 이들, 너무 빨리 피고 지는 사람들을, 나는 수없이 봐왔습니다.

하물며 망가져버린 첫 번째 영화를 만회할 ‘기회’를, 내가 바라고 만날 수 있을까요. 어느 날 김성수 감독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나, <런어웨이>로

깨지고 나서 2년을 놀았다. 다음 영화 잘 만들면 돼.” 고마웠지만, 속절없이 쓴웃음이 나오더군요. 가슴속에서 마른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2.

원작소설 <러브레터>, 심상치 않았지요

문득 <카라> 후반작업 때 일본에서 만난 통역자 생각이 났습니다. 요즘 <철도원>이라고 일본에서 날리는 영화가 있는데,

그 원작소설집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더군요. 아사다 지로의 단편집인데, <철도원> 뒤에 붙은 <러브레터>라는 단편이 더

심금을 울린다나요. 건성으로 듣던 내게 통역자가 열심히 줄거리 얘기를 해줬습니다. 막 출소한 사십대 삼류 깡패가 서류로 결혼한 중국 여자의

죽음과 러브레터를 접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는 얘기였죠. 시시콜콜 자세한 얘기를 들은 것도 아니었는데, 참, 이상하지요. 뭔가 뜨거운

것이 가슴속에서 올라왔습니다. 심상치 않았어요. 뭐라고 할까. 남자의 회한이랄까. 사십줄에 접어들어서 문득 어떤 계기로 삶을 돌아보는데, 이뤄놓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이룰 수도 없다는 걸 알게 되죠. 그제서야 이게 아니었는데, 후회하고 절망하는 그 남자의 얘기가, 내 얘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선물받은 그 소설 생각이 났습니다. 번역을 맡겨 번역본을 보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어,

하는 사이에 <철도원> 열풍이 한국에도 상륙했더군요. 영화도 개봉하고 책도 출간됐습니다. 일본 소설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것이 맘에

걸리긴 했지만, 나만이 아는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잠시 주춤하게 되더군요. 그때 구로사와 아키라가 떠올랐습니다. 원작 <맥베스>에

어떤 누도 끼치지 않으면서, 또다른 ‘작품’ <거미의 성>을 만들어 보인 그의 성가를 기억해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외람되지만,

나도 그처럼 한번 해보겠다구요.

#3. 나를

믿어줄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초고는 유성의 한 여관에서 사흘 동안 썼습니다. 나는 외로운 사람들의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한때 같이 어울리고 놀았던 사람이 갑자기 죽어

없어졌다고 칩시다. 누가 없어진 것 같긴 한데, 누구였더라, 이름이 뭐였더라,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기억나지 않는 거예요. 전라도 시골에서

올라와 낯선 땅 인천에 버려진 남자, 중국에서 고아가 돼 한국까지 흘러들어온 여자가,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요. 그 캐릭터들을 그냥 휙

던져놓고 지켜볼 생각이었습니다. 다큐적인 카메라로 그들의 역정을 묵묵히 따라가기로 했지요. 그러던 와중에 <카라>를 같이 했던 안상훈

프로듀서가 튜브쪽과 접촉한 모양입니다. 튜브의 황우현 이사는 시놉시스만 보고 제작 의사를 밝혔습니다. 의외로 <카라>를 잘 봤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장사가 안 돼도 괜찮으니까, 만들어놓고 우리끼리 좋아하고 뿌듯해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는 거예요.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고마웠습니다. 모두가 나를 거부할 때, 믿고 받아들였으니까요. ‘함께’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 온전한

‘내 영화’를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작은 안도감이 슬며시 들었습니다.

#4.

강재를 죽여야만 했습니다

21세기가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시나리오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나의 세계관이, 인생관이 밝지 못한 탓일까요. 세기가 바뀐다고 세상이

온통 들떠 있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사람들이 바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없는 사람은 계속 없이 살고, 있는 사람은 계속 누리고 사는 것이지요.

그게 현실이니까요. 강재의 삶이 현실의 내 삶을 오롯이 투영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강재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입니다. 나도

강재들처럼 별 볼일 없이 살고 있는 사람이니까요. 원작 <러브레터>의 주인공은 망자가 된 생면부지 이국 아내의 유골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울면서 웃자니, 마른 뼈들이 무릎 위에서 달그락거리며 우는 소리를 냈다”하고, 끝마치지요. 그건 슬픈 희망 같은 겁니다. 그러나

나는 <파이란>의 강재를 죽여야 했습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지요. 이 사회는 강재 같은 인간에게 희망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강재의 동기이자 보스인 용식이 말마따나, 강재는 그 바닥 체질도 아닌 것이, 간도 쪼만하고, 마음도 여리고, 끈기도 없어서, 맡은 일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죠. ‘동정 없는 세상’은 강재 같은 놈들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싹트는 것조차 두고 못 보죠. 그게 세상의 법칙입니다.

강재에게 덧붙인 깡패의 서사는, 그가 얼마나 한심하게 살아왔는지, 그리하여 사랑의 흔적 앞에서 얼마나 깊은 시름과 회한에 젖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장치에 불과합니다. 깡패영화나, 깡패영화의 관습을 빌린 드라마나,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그냥 인간 이강재에 관한 영화를 만들 생각이었으니까요.

#5. 파이란을

왜 세탁소로 보냈냐고요?

가장 풀기 어려웠던 숙제는, 파이란이라는 캐릭터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원작의 파이란은 달랑 두장의 편지로만 설명되는, 실체가

‘없는’ 캐릭터였습니다. 나는 파이란이 외로운 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강하지만, 어떤 근본적인 외로움이 있는 여자라구요. 중국에서 건너온 젊고

예쁜 여자라면, 게다가 조직에 엮여 팔려다니는 몸이라면, 원작에서처럼 창녀로 설정하는 게 옳았겠지요. 그게 현실적인 상황이니까요. 심지어 원작에서

파이란은 남편에게 남긴 편지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손님들 모두 친절하지만, 일하면서 당신을 잊지 않습니다. 진짜입니다. 손님을 당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열심히 되어서 손님이 기뻐합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그건 일본 정서이지, 한국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얘기입니다.

사실 처음에 흑산도 창녀로, 현실적으로 그려 보기도 했지만, 너무 암울하고 팍팍해져 버렸습니다. 노출 신을 찍어낼 자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현실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파이란을 세탁소로 보냈지요. 나는 세탁한다는 행위, 누군가를 깨끗하게 만들어준다는 행위가 참 좋습니다. 가망없는

인간 이강재를 구원한다는 의미, 세상을 정화하고 순수하게 베푸는 사람의 이미지로는 세탁부가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강재에 포커스를 맞추느라

파이란을 현실적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건 자백해야겠습니다. 그림 속 모델이나 정물처럼 생동감 없이 고정돼버린 느낌, 그게 아쉽습니다.

#6.

둘이 만난다면 많이 울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강재와 파이란, 색깔과 질감이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를 교직시키기로 했습니다. 시작은 ‘이보다 더 나쁠 수 없을’ 만큼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진 강재의 절망에, 1년 전 부푼 꿈을 안고 한국을 찾은 파이란의 희망을 마주 보게 하는 것이었지요. 시간과 공간이 엇갈려 꽂히고,

이들은 서로 만나지 못합니다. 만나게 된다면, 멜로 성향이 짙어질 테고, 대중성을 생각하자면, 그렇게 울리는 편이 나았겠지만요. 타협할 수

있는 부분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카라>를 하면서, 내가 할 수 없는 게 뭔지 깨달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도 알아냈으까요. 그러다보니, 강재의 삶을 그리는 데 많은 시간과 공을 할애하게 됐습니다. 강재라는 인물을

바닥까지 끌어내려, 연민과 동정을 끌어내기 위해선, 그래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원래는 강재에 대한 설명이 더 많았습니다. 상대 조직원을 죽인

보스를 대신해 감옥으로 들어가기로 하면서, 강재는 고향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겁니다. 통장번호 불러라, 나 맏아들이다, 걱정마라, 큰소리치지요.

파이란에게 호적을 팔아 받은 돈을 경마장에서 날리는 장면도 있었구요. 그래야 파이란의 죽음을 접한 강재의 회한이 더 커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이 아니면, 강재라는 인간을 충분히 동정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조금 가파른 감이 있긴 하지만, 그런 뒤에 파이란을 등장시켜 교차편집시키기로

했습니다.

#7. "최민식씨,

나를 못믿는 겁니까?"

최민식씨가 강재 역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화 꼭 한번 하고 싶었다”고 흔쾌히 응한 뒤로도 3개월이나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다 못해 최민식씨의 사무실로 올라갔습니다. 도장 찍지 않는 이유가 뭐냐, 나를 못 믿는 거냐,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냐, 그걸 알아야 다른 배우도 설득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조곤조곤 캐물었죠. 솔직히 섭섭했습니다. 내가 흥행으로 검증된 감독이라도, 그렇게

망설였을까, 그런 자괴감도 들었구요. 그날 저녁에 최민식씨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하겠다고 하더군요. 최민식씨가 캐스팅된 뒤로, 초고의 냉소적이고

유약한 캐릭터에 동적이고 거친 컬러를 덧칠했습니다. 그리고 파이란의 캐스팅까지 마무리되면서, 장백지의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거듭 시나리오를

수정했습니다. 8고쯤 나온 뒤인가, 헌팅을 시작했지요. 강재의 공간은 쇳가루가 날리는 팍팍한 곳, 아등바등 사는 사람들의 공간, 중국인들이

들어오는 제1창구로서의 인천을 택했습니다. 파이란의 공간은 바다과 등대가 보이는 대진으로 정했습니다. 행선지를 정하고 스탭들과 차를 달려 여장을

풀자, 겨울이 성큼 다가와 있었습니다.

#8.

다짐했습니다.술 생각나는 영화를 만들자,하고

대진과 인천의 겨울 바다는 몹시 추웠습니다. 20년 만의 한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영상 10도에서도 동사하는 사람들의 나라 홍콩에서

온 장백지가 가장 고생이 많았지요. 스탭과 배우들이 어울려 한판 축구를 하거나, 알코올 기운을 빌려 추위를 달래곤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끼리

다짐했지요. 술 생각나는 영화를 만들자, 하고. 어떻게 찍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고, 또 그만큼 유난히 어렵게 찍은 장면들이 있습니다. 강재가

바닷가에서 파이란의 두 번째 편지를 읽는 장면은 본래 눈물기조차 없었습니다. 대신 구토를 해서, 가슴속의 오물을 모조리 뱉아내게 돼 있었지요.

최민식씨가 그러더군요. 이쯤에서 울어도 되지 않겠느냐고. 구토의 상징적인 의미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어서, 울다가 토하는 설정으로 갔지요.

편집에서 잘랐지만요. 5번 NG가 나고, 매번 2시간씩 쉬다보니, 해가 저물더군요. 연출부 동생들이 최민식씨가 하루 만에 부쩍 늙었다고 안쓰러워

했습니다. 또 하나는 강재가 파이란의 비디오를 보면서 죽음을 맞는 라스트였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늦게 알아버린 사랑, 지나간 삶에 대한 회한에 사무친 얼굴을 만들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어느덧 춥고 외롭던 48회 촬영이 끝났더군요.

술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는 술을 마셨습니다.

#9. 고집스러워졌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울리는 영화는 만들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기술시사 때 영화를 보던 누군가가 훌쩍훌쩍 울어댑니다. 돌아보니 최민식씨더군요. 머쓱했던지,

영화가 슬퍼서가 아니라, 스탭들 고생한 생각에 울었다고 둘러댑니다. 영화를 보면서, 마음먹었던 만큼 ‘흔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내게는 남습니다.

다른 영화에서 묘사해대듯이 양아치 세계란 결코 폼나는 곳이 아니라고, 마구 깨고 흔들어대고 싶었습니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도심의 하늘처럼,

금방이라도 일이 터질 것 같은 불길하고 위태로운 공기를 살려내고 싶었습니다. 그러지 못해 아쉽습니다. <파이란>이 ‘재밌다’가 아니라

‘좋다’고 입을 모으는 평들에 관객의 맘이 얼마나 동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저 남의 인생 1시간50분이 꽤 긴 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고,

그만큼의 책임을 잊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름답고 화려한 것에 홀려 멀미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촌스럽고 투박한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달까요. 이런 생각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나는 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지 못했고, 그렇게 오래 살다보니, 부쩍 고집스러워진 것 같습니다. 그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에필로그

나는 지금 유성으로 떠납니다. 불현듯 <파이란>의 첫 번째 시나리오를 낳은 그곳에 돌아가고 싶어져서요. 편지가 배달될 즈음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이 편지에서 무얼 읽으셨는지 궁금하군요. 무엇보다 행간마다 채워넣은 나의 본심을, 진심을 읽으셨기를 바랍니다. 타율

3할의 타자는 잘하는 축에 속한다죠. 감독 한 사람 보고 수십억원씩 투자하고, 과정보다 결과로 평가하는 충무로에서, 그런 관대함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고 지켜봐주기를, 강재들에게 세상이 좀더 관대해지기를 바라 봅니다. 부질없지만요.

취재 허문영 기자 정리 박은영 기자 사진 정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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