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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행제로>의 `별난 형제` 작가 이해영,이해준 이야기 [3]
이영진 2003-03-07

이 해 영

1973년 서울 출생.

유년시절, 음악에 빠져 살았음(지금도 시나리오 작업할 때 볼륨 ’이빠이’ 틀어놓음. 직접적인 영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대사가 씹히거나 그럴 때는 장르와 연관 있는 음악을 취사 선택함. 혹 지방에서 작업할 땐 어떤 CD를 가져갈 것인지 매번 고민)

틈나면 청계천에서 구한 B급 난도질 영화를 보며, 인간은 과연 몇등분 될수 있는가도 연구했음(아직까지 해답을 구하진 못함).

그 놈의 시간이 그래도 남으면 공부도 좀 했음.

하지만, 자식들만큼은 너른 분야에서 고루 활동하기를 바라는 아버지를 둔 탓에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해야 했고, 수와 관련된 학문과 체질적으로 궁합이 맞지 않은 탓에, 아쉽게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었음.

대학입시 때 2교시 수학시험을 시작으로 백지 제출함.

엄한 아버지한테 일방적으로 깨지면서 소극적 저항에 대해 조금 후회했음.

서울예대 광고창작과에 입학한 뒤 평범한 삶을 꾸리려 했으나 과 선배였던 개그맨 남희석으로부터 “눈빛이 음흉하기 짝이 없는 것이 필시 여학생을 어떻게 해보려는 심산을 가진 놈”이라는 지적을 받으면서 한동안 이성들로부터 왕따를 당했고 그 충격으로 이후 고통의 가시밭길을 자원함.

이 해 준

1973년 서울 출생.

9남매 대가족의 막내. 소란스러운 집안이 너무 싫었음.

누나들의 바이올린, 피아노 합주 소리에 여러번 경기도 일으킴.

이후 주로 소음을 피해 후미진 골방과 벽장에서 사색에 잠기는 것을 즐겨함(지금도 음악이라고 하면 치를 떰. 해영의 버릇때문에 회의가 아니라면 시나리오는 주로 거리에서 아이템을 떠올리고 카페에 가서 씀).

고등학교 때는 단편소설을 끼적이며 보냈음.

하지만 정작 대학 진학시엔 정상적으로 살고 싶어서 문예창작학과나 영화과 보다 비교적 현실적인 광고창작과를 지원함.

대학 진학 후, 한때 주위에서 코웃음 치던 아이디어(출력된 음파로 인해 컵이 테이블에서 떨어지지만, 그런 줄 모르고 정작 여인은 죄없는 고양이를 나무란다는 미니 콤포넌트 광고)로 대학생 광고 대상에 입선하는 실력을 과시. 그 해 경쟁작이 예년만 못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지만, 이에 대해서 본인은 “제품의 특성을 잘 살린 컨셉츄얼한 아이디어”라고 자평. 해영이 보컬을 맡고, 자신이 베이스를 맡아 1회용 밴드를 결성함. 맹연습 끝에 김건모, 김원준 등이 거쳐간 교내 무대에서 <니가 웃을 수 있다면> 이라는 애절한 발라드 곡을 연주했으나 클라이맥스 이후 나오는 화음 부분에서 마네킹처럼 굳어 ‘끽’ 소리 못하는 바람에 예선 탈락. 그 이유에 대해서 그는 유년 시절 트라우마의 발작이라고만 설명함. 교내에서 ‘침묵미남’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젊음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진 않는다는 진리를 인지하고 시나리오 작업에 뛰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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