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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권의 책으로 읽는 감독의 길 -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11]

갱이 있는 거리, 성당이 있는 풍경

<비열한 거리>

1986년 자신의 영화 <라운드 미드나잇>의 주요 배역에 마틴 스코시즈를 출연시켜야겠다고 결심한 베르트랑 타베르니에는 스코시즈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마티, 자네는 반드시 이 영화에 출연해야 해. 그 클럽의 주인은 자네와 똑같거든. 좋은 사람이면서도 엄청나게 잔인한 인간이란 말일세.” 타베르니에는 스코시즈의 이중성을 잘 알고 있었다. 폭력에의 심취와 영적 구원을 향한 열망이라는 이중성 말이다. 그리고 그 불화하는 이중성이야말로 스코시즈 영화의 가장 깊은 속살, 혹은 유년기의 정신적 낙인 같은 것이기도 하다.

총소리가 일상적 소음이었던 뉴욕의 리틀 이탈리아에서 자란 스코시즈는 “동네에서 가장 힘센 존재는 거리의 터프 가이들과 성당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래도 성당의 힘이 더 마음에 끌렸던 모양이다. “조직에 속한 이들은 신부에게 깊은 존경심을 보였는데… 무서운 사내들이 신부들에게 꼼짝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이것이 발단이 되어 여덟살 땐가 아홉살 되던 해에 신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신부에의 꿈은 오래갔다. 그의 고등학교 때 성적이 중간 정도만 됐어도, 우리는 지난 주말에 <갱스 오브 뉴욕>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고교 졸업반 성적이 최하위 4분의 1에 속하는 바람에 바라던 신학교 진학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결국 스코시즈는 뜻하지 않게 영화감독이 됐고, 칸 황금종려상을 받은 <택시 드라이버>(1976), 세계 영화사의 걸작으로 꼽히는 <분노의 주먹>(1980) 등으로 젊은 거장에 등극했다. 그래도 못다 이룬 신부에의 꿈은 결국 문제투성이 영화 <예수의 마지막 유혹>으로 그를 몰고 갔는데, 15년 동안 준비했다는 이 영화는 그에게 영화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선사했다. 이 영화 속의 예수와 신도들은 얼핏 보기에 갱스터 집단처럼 묘사됐고 예수의 성행위가 암시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제작사로부터 여러차례 거절당한 끝에 4주 동안 길가는 사람을 붙들고 제작비를 보태달라고 호소했다는 이야기, 이 영화가 제작단계에서부터 가톨릭 단체들의 격렬한 항의시위에 직면했고 개봉된 극장에선 폭탄테러까지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이젠 거의 전설이 됐다.

지금에야 “그와 같이 일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영광”이라는 소리를 귀찮을 정도로 듣지만, 이런 고집과 성향 때문에 젊은 거장 반열에 오르고 나서도 이 골치 아픈 영화감독에게 돈을 대겠다는 제작자는 80년 말까지 드물었다. 칸영화제 감독상을 안긴 <애프터 아워스>(1985)도 감독료를 4분의 1만 받는 조건을 달아 450만달러라는 극히 짠 제작비로 겨우 만들 수 있었다.

데이비드 톰슨 외 역음·임재철 옮김 | 한나래 펴냄 | 1994년 12월

대화는 잘 안 되지만 어쨌든 친구인 스티븐 스필버그(스코시즈는 스필버그를 두고 “그 친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통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가 의도하지 않은 도움을 선사했다. 스필버그는 스코시즈가 탐내던 <쉰들러 리스트> 프로젝트를 자기가 하고 싶다며 <케이프 피어>를 내밀고 갔다. 싫었지만 로버트 드 니로도 그 영화를 원한지라 억지로 맡았는데, 그의 영화에서 최고의 흥행성적을 기록하고 말았다. 놀랍게도 스콜세지가 돈되는 감독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동료 브라이언 드 팔머로부터 “자네, 또 반품 처분당했나?”는 조롱 섞인 농담을 듣던 스코시즈의 이후 경력은 지나칠 만큼 순탄하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끊임없이 그에게 이중적 열망을 심어준 고향이며 정신적 자궁인 뉴욕 뒷골목으로 돌아온다. 그는 자기 속의 분열과 모순을 외면하지 못해 결국 자신의 악몽을 탐사하는 길을 선택한다.

<비열한 거리>는 스코시즈의 강연과 인터뷰를 모아 정리한 의 번역판으로 “1987년 영국에서 스코시즈가 가진 3회의 강연을 뼈대로 약간의 인터뷰를 덧붙인 일종의 자서전”이다. 폭력과 구원의 이미지가 교차하는 뒷골목에서 자라난 소년이 관습과 상투구로 가득 찬 할리우드에서 가장 개인적 영화를 만드는 거장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가쁜 리듬의 파노라마가 되어 펼쳐진다. 오늘의 스코시즈를 만든 건 정치적 진보성이나 지성이 아니라, 영화 그 자체에 대한 끊임없는 매혹과 쉼없는 개인적 망의 추구였다. <비열한 거리>는 감독의 개인적 욕망을 추방한 1970년대 중반 이후의 할리우드에서 기적적으로 작가적 자존을 지킨 한 감독의 경이로운 생존기이기도 하다. “나는 카메라 뒤에서 죽을 것이다”라고 스코시즈는 말했다. 백은하 lucie@hani.co.kr

스코시즈가 더 궁금하다면

1994년 BFI는 영화 100주년 기념으로 마틴 스코시즈에게 ‘세기의 영화’ 중 미국 부분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해줄 것을 부탁한다. 미국영화를 말하는 데 있어 “전직 강사였고, 영원한 학생이며, 지치지 않은 필름보호주의자이자 그 세대의 가장 축복받은 감독” 인 그가 선택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 다큐멘터리의 스크립트가 책으로 발간된 것이 바로 <미국영화에 대한 마틴 스콜세지와의 사적여행>(A Personal Journey With Martin Scorsese Through American Movies/ Hyperion 펴냄)이다. 스코시즈와 동료인 마이클 헨리 윌슨에 의해 쓰여진 이 책은 ‘감독의 딜레마’, ‘스토리텔러로서의 감독’,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감독’, ‘우상파괴주의자로서의 감독’ 등 5개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트웨인 출판사의 감독 시리즈 중 하나인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레스터 키저 지음/ Twayne Pub/ 1995)는 마틴 스코시즈의 성장기부터 <비열한 거리>에서 <순수의 시대>에 이르기까지를 서술한 연대기적 책이며 <마틴 스콜세지: 인터뷰>(Martin Scorsese: Interviews/ 피터 브루네트 엮음/ 미시간대학 출판부 펴냄/ 1999)는 개빈 스미스, 에이미 토빈 등 영화평론가부터 주요 언론과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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