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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TV가 신나는 10가지 이유 [1]
김현정 2003-03-28

틀었노라, 돌렸노라, 만족하였노라!당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기발하고 하수상한 케이블TV 프로그램 10선(選)

TV를 벗삼아 사는 사람들에게 리모컨은 반드시 도움되는 물건만은 아니다. 수십개 채널을 쉴새없이 바꿀 수 있으니, 첫눈에 반할 만한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마음붙일 채널을 찾기가 더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편성표도 소용없을 때가 많다. 조그만 글씨로 빽빽이 채워진 방영 스케줄은 제목만 봐선 뭐가 뭔지 모를 프로그램투성이. 조금만 참다보면 한 시간 채워줄 보석을 발견할 수 있으련만, 아직 득도하지 못한 백수들은 공연히 마음만 바쁘다. 여기 소개하는 프로그램과 채널들은 광속으로 쏘아대는 리모컨 끝에 우연히 걸린 결과물이다. 두 시간짜리 영화에도 집중 못하는 사람, 긴 밤을 벽만 노려보며 보냈던 사람, 영양가보다는 맛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특히 유용할 것이다.김현정 parady@hani.co.kr / 일러스트레이션 이우일

<헐리웃 이야기>

스타도 시작은 미약하였으니2 Z

동아TV/ 월요일 오전 10시 40분

케이도 케일런은 할리우드만의 스타였다. 그는 블록버스터영화에 출연한 적은 없지만, 어떤 블록버스터 못지않게 스펙터클했던 사건에 주역으로 등장했다. O.J. 심슨의 살인사건 재판. O.J. 심슨 옆집에 살았던 그는 심슨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증언을 했고, 그뒤 시트콤에 출연하면서 새떼 같은 사진기자들의 초점이 됐다. 할리우드가 아니라면 어느 동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헐리웃 이야기>는 제목만 보고 기대하게 되는 것과 달리 화려한 꿈의 도시에서 흘러나온 전설이 아니다. 어이없는 이유로 스타를 만들고 한순간에 폐기하는 할리우드, 거짓과 사치와 퇴행이 고여 있는 타락한 마을의 이야기다.

<헐리웃 이야기>에는 부유한 집안에서 가족 끈팬티와 가죽 멜빵만 두른 채 청소하는 남자들이 등장한다. 그렇게 스타들의 이야기 밑바닥을 들추는 것이다.

<헐리웃 이야기>는 내레이션이 거의 없다. 직접 설명하는 대신 인터뷰와 편집으로 할리우드의 속성을 폭로한다. 케일런에 이어 치정이 얽힌 살인미수 사건의 주인공으로 유명해진 조이 버타푸코를 영입한 에이전트들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당신들 언론이 우리 친구예요. 당신들이 스타를 만들잖아요.” 이어지는 장면은 죄수를 스타로 포장하는 <시카고>의 신문기자들처럼, 무차별로 플래시를 터뜨리는 사진기자와 파파라치들이다. 비슷한 방식은 여러 사람의 인터뷰를 교차하는 방식에서도 응용된다. 존 보빗, 강간당하다시피한 아내가 성기를 자르는 바람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이 못난 남편에 관한 에피소드는 할리우드가 과연 사람사는 동네인가 의심하게 될 정도다. 보빗은 세 시간 동안 버려졌던 성기를 다시 붙인 다음에 성인영화 배우가 됐다. “그는 섹스도 안 해본 것 같아요. 남들 하루 찍는 성인영화를 8일 동안 찍었어요.” “보빗은 재능이 있어요. 크게 될 거예요.” 이 에피소드의 대단원은 보빗이 출연했던 영화 시사회가 열렸던 날의 기억이다. 정장을 입고 성인영화를 보러 극장에 몰려든 명사들은 보빗의 성기가 노출되려는 순간 한없는 침묵에 빠졌다가 기립박수를 쳤다고 한다.

할리우드에도 정직한 사람들은 있다. 배우가 되고자 몰려든 꿈 많던 젊은이들은 웨이터와 피에로, 운전기사, 영업사원을 하면서도 연기학원에 다니고 오디션을 받는다. “오일 발라줄까요?”라는 대사 한마디를 위해 가능한 모든 억양을 연습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자신들이 증오하던, 성상납까지 받는 할리우드 최고층에 편입되거나, 60살에 에미상을 받았다는 어느 배우의 성공담만 믿으며 늙어갈 것이다. <헐리웃 이야기>에는 부유한 집안에서 가죽 끈팬티와 가죽 멜빵만 두른 채 청소하고 배선을 손보는 남자들이 등장한다. 부모의 직업에 따라 파티에서도 서열을 정해 앉는 아이들이 등장하고, 지쳐서 어린아이인 척 놀이를 하며 환호하는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헐리웃 이야기>는 윤기나는 종이에 인쇄된 스타들의 이야기 그 밑바닥을 들추는 프로그램이다.

<특종! 파파라치>

‘카더라’ 통신의 증인들

무비플러스/ 화요일 오후 6시30분

파파라치에게도 권리는 있다. <특종! 파파라치>는 할리우드에서 나름의 명성과 경력을 인정받은 파파라치들이 출연해 직접 목격한 스타들의 면모와 취재과정에서 겪은 애환을 털어놓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좀더 솔직해진다면, 이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의 핵심은 파파라치들이 찍은 비디오 화면이다. 짐 캐리와 로렌 홀리가 바람부는 절벽 위에서 치른 쓸쓸한 결혼식, 클럽에서 울먹이며 뛰쳐나오는 르네 젤위거, 파파라치에게 욕설을 뱉는 토미 리와 어찌할 바를 모르는 파멜라 앤더슨, 홀로 방황하는 니콜라스 케이지. <특종! 파파라치>는 “그렇다더라…”라고 소문으로만 떠돌던 스타들의 무방비 상태를, 길게는 십년 넘게 그들을 따라다닌 파파라치들의 증언과 함께 방송한다. 아무리 욕을 퍼부어도 결국 팬들이 파파라치를 먹여살리는 것이다.

<특종! 파파라치>는 2001년 비디오와 DVD로 발매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때로 분열하고 때로 분노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복잡한 심리를 깊이 분석할 수는 없겠지만, 이 프로그램은 생각하지 못한 인간적인 시선을 드러내기도 한다. 공항 출구에서 매몰찬 대접을 받은 어떤 파파라치는 “여덟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탄 다음에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죠”라며 조그만 배려를 보인다. 엎치락뒤치락 전쟁을 치르다시피 취재를 하는 와중에서도 파멜라 앤더슨이 겉보기보다 똑똑하기 때문에 지금껏 팔리는 이미지를 구축해왔다고 판단하는 여유도 있다. 그들이 가장 참기 힘들어하는 행동은 장비를 부수는 것과 이유없는 폭력. 그러나 자폐적인 면이 있는 짐 캐리가 취재진을 따돌리기 위해 하객도 없이 결혼하는 장소까지 쫓아가 말을 거는 행동을 보면 역시 파파라치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특종! 파파라치>는 파파라치와 스타를 향한 동정심을 자극하면서도 그들을 욕하게 만들고, 훔쳐보는 시청자 자신을 한탄하게 만드는 기묘한 경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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