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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계단: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뉴 페이스를 만나다 [1]
이영진 2003-03-28

“이번에도 확답을 안 주면, 손목을 그을 거예요”<여우계단: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오디션에서 크랭크인까지 56일의 기록

<여고괴담> 시리즈를 기다리는 이들은 비단 1, 2편에 매혹된 관객만은 아니다. 스포트라이트 받기를 원하는 신인배우들도 목이 빠져라 쳐다본다. <여고괴담>의 김규리, 최강희, 박진희, 윤지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김민선, 박예진, 이영진. 그동안 <여고괴담> 시리즈는 ‘귀신공장’뿐 아니라 ‘배우산실’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여우계단: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에 지원한 이가 3천명에 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월26일, 최종오디션을 시작으로 3월23일 크랭크인하기 전까지, 두달 가까이 계속된 세 번째 <여고괴담>의 배우수업 현장을 흘깃 들여다봤다. - 편집자

D-56 “ 타이즈 입을 때 속옷까지 벗었어요? ”

으슬으슬 춥다. 겨울비 때문인가. 뜨끈한 아랫목 생각이 간절하다. 휴일 오후여서 더 그럴 것이다. 건물 안이라고 해서 사정은 다르지 않다. 강남의 한 연기학원. 이곳에 모여든 9명의 ‘여고 지망생’들도 난로에 빙 둘러앉아 발을 부비고 있다. 단 하나. 시선만은 대본에서 떼지 않는다. 최종 오디션이 시작되는 시간은 오후 2시다. 테스트를 10분 남겨둔 시각. 제일 안쪽 조그만 밀실에선 윤재연 감독을 포함한 심사위원들이 회의를 열고 있다. 건수 있나 싶어 빼꼼히 문을 여니, 약속이나 한 듯 다들 채점표를 들고 일어선다. ‘일 없수다’는 표정이다. 야속하긴. 이날 최종 면접에 응하는 9명 중 7명은 교복 차림. 일러주지 않았어도 다들 입고 왔다. 따로 챙겨둔 가산점은 물론, 없다. 2개 조로 나뉘어 진행된 오디션은 일단 개인별 연기 테스트로 시작됐다. “자신이 가장 분했던 상황을 일러주되, 목소리 톤은 최대한 밝게 해달라”는 다소 복잡한 주문. 첫 응시자들과 달리 대략 질문의 ‘감’을 잡은 이들은 좀처럼 털어놓기 힘든 가정사들까지도 기꺼이 내놓는다. 여우계단이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소원이 이뤄지길 빌면서 스물까지 세는 등의 시험이 끝나고 두 사람씩 짝지어 간단한 상황극을 소화하게끔 한다. 서두른다고 했지만 몇번씩 확인해보고 싶은 심사위원들의 꼼꼼함 탓에 연기 테스트를 끝낸 시각은 예정보다 2시간가량 늦은 저녁 8시. 하지만 아직 발레 테스트가 남았다. “타이즈 입을 때 속옷까지 벗었어요?”라고 앞 조 응시자에게 묻는 이, “몸매가 안 예쁘면 감점인가요?”라고 심사위원에게 묻는 이. 여기서 그만둘 수 없다는 표정들이다. 전공자들의 유연한 손발이 눈에 띄지만, 심사위원들은 동작이 서툴더라도 “리듬을 얼마나 타느냐, 얼마나 더 적극적이냐”를 체크하고 있는 듯하다.

♣ 지난해부터 씨네2000에서 주요 배우들을 뽑기 위해 확인한 이만 3천여명. 이중 기존 포트폴리오를 확인한 뒤 실제 면담을 가진 이도 무려 500명이 넘는다. 아무래도 그걸 의식했는지, 이춘연 프로듀서- 제작자인 그는 이번 작품의 프로듀서도 겸하고 있다- 는 “여기 오신 분들은 20:1이 넘는 경쟁률을 뚫었다”며 “우리 오디션은 이미지를 뽑는 거지 능력을 판단하는 게 아니다”는 노파심으로 인사말을 대신했다. 한때 무대에 섰던 배우다운 배려.

D-55

“ 쟤들이 여고생으로 보이니? ”

회의를 시작한 지 3시간. 난상 토론은 그칠 줄 모른다. 오디션이 끝난 전날, 대략 4∼5명선으로 압축해놓고서 소주잔을 기울인 이들이지만, 막상 진성과 소희 역할을 맡길 배우를 단번에 ‘낙점’하려고 하니 수월치 않은가보다. 참석자 7명의 의견이 제각각이다. 이중엔 “예고생은 외모만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야 하는데 어제 본 친구들은 그게 없다”는 다소 과격한 견해까지 섞여 있다. 윤재인 감독 또한 자신이 들고 있는 ‘패’를 확신하지 못하는 눈치다. 애초 점찍어둔 응시자들이 정작 최종 오디션에서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다며 결국 예상 외의 카드를 내밀었기 때문. 이러다간 다시 오디션을 봐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다. 이쯤에서 의견을 취합했던 이춘연 프로듀서가 묵직한 저음 톤으로 한마디. “우린 명화를 사는 게 아니라 도화지 고르고 있는 거라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두자는 그의 설득에 토론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박한별, 송지호로 낙착됐다.

♣ 귀신 역 맡을 사람은 따로 있다? 1편 캐스팅 당시 최강희(당시엔 최세연이라는 이름을 썼었다)에게 주어진 역할은 우등생 소영. 하지만 얼마 안 되어 9년 동안 학교 다니는 귀신 재이 역으로 바뀌었다. 2편 역시 마찬가지. 김민선은 투신자살하게 되는 효신 역할을 맡기로 됐었지만, 크랭크인 직전 민아 역으로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그래서일까. 3편의 경우는 박한별, 송지효 두 배우를 뽑아놓은 다음 제작진은 “누가 소희고, 진성인지 알려주지 않고서 연습을 진행했다”고 한다. 알아서 찾아가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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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허리도 좀 밟아주세요 ”

“언니, 안 아파요?” 한별이 지효에게 묻는다. 예고 다닐 적 부전공으로 발레를 한 탓일까. 스트레칭이 그리 버겁지 않은 한별은 처음인 지효가 걱정되는 모양이다. “시원한데, 뭘.” 한별에 비해 다소 뻣뻣해 보이는 지효, 그러나 입심은 한수 위다. “선생님, 허리도 좀 밟아주세요.” 연습을 시작한 지 닷새째. 수업 대부분을 스트레칭에 쏟아붓고 있다. 한별은 자세를 바꾸어 연습실 전신 거울에 엉덩이를 밀착한다. 그리곤 발을 최대한 벌려 V자를 만들어 보인다. 지효 역시 똑같이 따라하지만 각은 한별의 것보다 좁다. 그새 친해진 것일까. 눈만 마주치면 속닥거리고 낄낄거린다. 뒤에서 지켜보던 안무를 지도하는 류형준씨가 한마디 한다. “저 포즈로 잠들면 나중에 혼자 못 일어나요. 누가 발을 접어주기 전엔.” 30분가량의 연습이었지만, 한별은 지효의 도움을 받아서야 두발로 섰다.

♣ ‘토슈즈, 착용!” 스트레칭과 반대로 토슈즈(발목을 꼿꼿하게 펼 수 있도록 앞부분을 딱딱하게 만들어놓은 특수신발. 발레리나들의 발톱을 먹어치우곤 한다)를 신기만 하면 한별과 지효의 상황은 바뀐다. 발목이 강한 지효에게 분홍색 토슈즈는 ‘유리구두’. 반면 한별에겐 ‘무쇠장화’다. 무대에 섰던 경험이 없어 토슈즈를 신어볼 기회가 없었던 한별은 토슈즈를 신으면 발갛게 발이 부어오르는데다 바가 없으면 발목이 아파 10분을 채 견디지 못한다. 이에 비해 안무선생으로부터 지효는 “토슈즈 신고 잘 버틴다”는 칭찬을 받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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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르’ 소녀들 vs ‘빨리 꺼’ 선생님

연기지도를 맡은 류승수씨. 꽤 엄한 훈장 선생인 그지만, 이번 ‘까르르’ 소녀들은 제압하기 쉽지 않다. 참다 못한 그는 결국 큰소리까지 낸다. 수업 도중 걸려온 전화를 받으러 가방을 뒤지는 지효에게 “빨리 안 꺼!”라고 냅다 호통을 친다. 옆에 서 있던 한별의 눈이 천둥소리에 놀란 토끼의 그것마냥 커진다. 살벌한 공기를 의식한 지효 또한 휴대폰을 끊고 곧장 제자리로 돌아온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다음 진도를 ‘쭈욱’ 빼는 건 효과 만점의 코스임을 모르는 티처는 없다. 하지만 ‘까르르’ 소녀들의 반격 또한 만만치 않다. 좌선 자세로 편안하게 앉힌 다음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그대들이 연기할 인물을 떠올리고 그 안으로 빠져들라”는 계율을 내렸건만, 둘은 불과 몇분 전 불호령을 잊었는지 류씨의 목소리가 “최면술사 같다”면서 낄낄댄다.

♣ 이춘연 대표는 연기지도를 맡은 류승수씨를 “연기는 별로지만 지도는 잘하는 배우”라고 소개한다. 오프닝 결혼식 장면에서 신랑(<미술관 옆 동물원)>, 한겨울에 살인마에게 목이 잘려 누워 있는 경찰관(<세이 예스>) 등의 단역으로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달마야 놀자>에서 ‘369’ 게임 도중 깨달은 바 있어, ‘묵언’ 수행을 깨는 스님으로 나온다. 최근에는 <이중간첩>에서 한석규를 돕는 운전사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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