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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 이야기 - 르네 젤위거 [5]
박은영 2003-03-28

차선을 최선으로

르네 젤위거는 캐스팅 일순위였던 적이 없었다. 선댄스에서 호평받으며 르네 젤위거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이 넓은 세상>은 캐스팅됐던 배우가 예정에 없던 임신으로 중도하차하는 바람에 뒤늦게 합류했던 작품이다. <제리 맥과이어>도 카메론 디아즈, 위노나 라이더, 미라 소비노 등이 저마다의 사정으로 물러나는 바람에 차례가 돌아온 것에 불과했다. 당시 스튜디오와 언론은 “2천만달러짜리 스타 톰 크루즈의 상대역으로 과연 저 풋내기 배우가 어울릴지” 미더워하지 않았다.

조디 포스터가 <애나 앤 킹>으로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면, <너스 베티>도 르네 젤위거의 품에 안길 수 없었을 것이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이 영화가 순수한 ‘영국 혈통’이길 소망했던 영국민이 똘똘 뭉쳐 케이트 윈슬럿을 주인공으로 밀었던 작품. <시카고>의 록시 하트는 영화화 계획 초기엔 골디 혼이, 십수 년 뒤인 최근엔 기네스 팰트로나 카메론 디아즈가 차지했을 역할이었다.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

<브리짓 존스의 일기>

르네 젤위거는 따끈따끈한 1쇄 시나리오를 받아본 경험이 별로 없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뒤에도 적역이 아니라는 품평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르네 젤위거는 ‘반전의 명수’였다. 르네 젤위거가 브리짓 존스로 캐스팅된 것에 대해 “주드 로가 엘리펀트맨을 연기하는 격”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던 영국 언론은 결국 “우리가 틀렸다”고 인정했다. 카메론 디아즈의 도로시를, 조디 포스터의 베티를, 기네스 팰트로의 록시 하트를, 더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그 모든 의혹과 불신에 대응하는, 르네 젤위거의 방식이다.

메소드 연기자

르네 젤위거는 부단한 노력가형이다. 처음부터 확신을 주지는 못하지만, 역할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우고 준비하는 완벽주의자다. 리얼리즘에 충실한 캐릭터 해석, 바로 ‘메소드 연기’에 도전하곤 하는 것. “캐릭터의 라이프스타일에 완전히 젖어버리자”는 주의다. 그럼에도 <시카고>의 록시 하트는 뮤지컬 무대 경험이 없고 가무에 능하지 않(다고 믿)은 르네 젤위거에겐 마뜩찮은 역할이었다. 수줍게 웅크린 노래와 춤의 끼를 끌어내준 것은 롭 마셜 감독. “하이힐을 신고 계단을 내려오는 공포만큼, 감독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도 컸다.” 그녀에게 10개월의 트레이닝은 “시카고를 뒤흔든 미모의 재즈 킬러”로 거듭나는 동시에, “춤과 노래라는, 새로운 표현 방법”을 발견한 과정이었다.

르네 젤위거가 브리짓 존스로 거듭나기 위해서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팻 닥터’의 처방대로 흑맥주와 피자와 초콜릿에 탐닉해 7kg의 지방을 늘리는 데 성공한 것은 그중 가장 유명한 일화. 그때까지 미국 밖에서 생활은 물론 촬영조차 해본 적 없던 그녀는 크랭크인 몇달 전 런던에 방을 얻고, 출판사에 ‘위장 취업’해 런던 커리어우먼의 삶에 대한 ‘감’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영국식 억양을 습관처럼 구사하기 위해 촬영장 밖에서도 그 억양을 입에 달고 살았던 것은 물론이다. 상대배우 휴 그랜트는 “크랭크업 파티에 나타난, 웬 텍사스 여자”가 런던 처녀 브리짓 존스를 연기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이쯤 되면, 소프 오페라의 환상을 좇는 베티가 되기 위해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들을 따라다녔다는 얘기쯤은 사소하게 들릴 것 같다.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

<시카고>

스타라는 자의식을 버려라

르네 젤위거는 <너스 베티>로 골든글로브 코미디 뮤지컬 부문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되던 순간 화장실로 사라져, 진행자와 시상자를 애먹인 적이 있다. 이건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르네 젤위거는 <제리 맥과이어>의 프리미어 파티에도, 그해 오스카 시상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프로답지 못하다고 타박할 만도 한데, 카메론 크로는 그런 행동들이 “르네답다”고 말한다. <제리 맥과이어>로 한창 몸값이 치솟은 뒤에 달려간 곳은, 독립영화 <페이탈 서스펙트>와 <프라이스 어보브 루비> 현장이었다. <시카고>의 록시 하트라면, 절대 하지 않을 법한 일들을, 르네 젤위거는 천연덕스럽게 해내가고 있다. 그건 ‘명성’에 연연하지 않는 일이다.

그러니 혹 르네 젤위거를 만나더라도, 스타덤이나 스타성에 대한 질문은 삼가도록 하자. “세상에, 맙소사. 난 그런 질문에 답할 만큼 자기 의식적이지 않다. 내게 그런 기미라도 보이면 정신이 바짝 들도록 한대 쳐달라.” 대중이 무엇에 야유하고 환호하는지, 르네 젤위거는 듣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겸손하고 양순한 얼굴로, 도도하고 고집스런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 배우가, 다음번엔 대중의 변덕을 얼마나 어떻게 앞질러 보일지, 주시하게 되는 것이다. 박은영 cine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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