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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좁은 골목의 영혼>
2001-05-03

“얘깃거리가 마르진 않을 것 같다”

작가 심용학 인터뷰

2시간 넘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신명나게 들려준 스토리가 무려 7∼8개, 심용학씨는 시나리오 작가는 이야기꾼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새삼 되새기게 만들었다. 그 이야기들이 아무리 그가 지난 3∼4년간 써온 시나리오 줄거리라 해도 말이다. 아이디어만 떠오르면 한달에

1편씩 쓴다는 그는 현업 ‘백수’이자 열댓편의 습작을 거친 예비 작가. 현대자동차 차량전자시험팀 내 오디오팀에서 8년간 일하다가 IMF를 맞아

명예퇴직했다. 집안 사정이 어렵던 터라 돈도 필요했고, 내친 김에 오래도록 짝사랑해온 영화로 달려온 것이다. 현대자동차에 다닐 때도 영화를

보러 지방에서 서울까지 내달려 오기 일쑤였을 만큼, 영화가 좋았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퇴직 뒤 충무로의 시나리오 학원에 다니며 본격적인 작문

수업에 임하기까지, 써 본 글이라곤 공대 실험결과 리포트와 대리 시절의 논술시험 정도라고. 하지만 단편용 <모래알>을 시작으로 영화진흥위원회

사전제작 지원공모 본심에 올랐던 <소울 메이트> 등 15편에 이르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이야기의 직조법을 체득해왔다.

당선 소감은.

실감이 안 났다. 한동안 꿈을 잘 꿔서 느낌이 좋았지만, 당선이라니. 내 시나리오를 읽는 한석규씨를 만나고, ‘대경사’라는 이름의 가게에 물건

배달을 가는 등 꿈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뉴에이지에 관심이 많아서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이 도움을 줄 거라 믿는 편이지만, 그래도 놀랐다.

현대자동차를 그만두고 시나리오를 쓰다니,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다.

IMF가 터지고 사정이 좀 어려웠다. 집안에 부채도 많은데 명퇴하면 돈도 많이 준다니까…. 퇴직금은 빚갚는데 들어가고, 덕분에 주변 친구들이

폐인 하나 구하려고 고생했다. 전자공학과를 나왔고, 동아리도 컴퓨터 동아리였지만 어차피 적성에 딱 맞지는 않았다. 형편이 좀더 좋았다면, 그래서

직업이 보장된 진로를 고려하지 않았다면 연극영화과에 갔을지도 모르겠다. 현대자동차에 입사하기 전 40일 동안 거의 같은 꿈을 꿨는데, 단성사

간판을 보고 있거나 그 건물 안 복도를 걷거나 스크린을 보고 있는 거였다. 회사에 들어간 뒤에도 영화를 약 3천편은 본 것 같다. 그 스타들

손도장이 찍혔다는 맨즈 차이니즈 시어터에 가 보고 싶어서 여름휴가를 할리우드가 있는 LA로 간 적도 있다. 1주일 내내 영화만 20여편 보고

돌아왔다. 오히려 너무 늦게 영화로 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나.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다기보다 영화가 하고 싶었다. 펠리니의 <길>이나 왕가위의 <아비정전> 같은 영화를 보면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참 행복하겠다, 나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젤소미나의 노래가 나오는 빨래터 장면이나 장국영이 슬로모션으로 걸어가면서 뒤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장면, 마술적인 환상이 현실에 녹아든 에미르 쿠스투리차의 영화들…. 제작이나 감독은 돈이 많이 들지만, 시나리오는 혼자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학적 재능이 없어서 자신은 없었지만, 시나리오 학원에서 문맥도 안 맞고 조사도 틀린다고 놀림받아가며 쓰기 시작했다.

<좁은 골목의 영혼>은 어떻게 구상했나.

하루 동안에 떠올린 얘기다. 어떤 사람이 귀신을 보고, 그 귀신이 뭘 바라며 나타나는 것인지 찾아간다는 구상에서 출발했다. 왜 귀신을 볼까

생각하다가, 죽기 직전에는 안 보이던 것들도 보인다니까 시한부 인생으로 설정했고, 기왕 그러면 최악의 조건을 만들자 싶었다. 자신은 죽어가고,

가족은 해체되고, 마을에는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돈이 없어 이사도 못 가고. 감히 시한부 인생을 건드려서 욕먹지 않을까 싶었고, 감정 잡기도

힘들어 쓰는 데 넉달이나 걸렸다.

시나리오에 “모래와 피아노, 노래와 비밀 속에 묻혀 있는 행복의 희망에 대한 이야기”란 설명이 있던데,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나.

어렸을 때 모래 장난을 하며 모래 한알을 뿌리면서 빌면 100m 이내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100m에는 나도 포함되니까

나도 행복해지고, 서너알을 뿌리면 가족들도 다 행복해지고. 처음 쓴 <모래알>에도 모래를 뿌리는 에피소드를 넣었는데, 유치하고 동화적인

생각이지만 암울한 일상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기억한다는 게 좋기도 하다. 행복하진 않은데, 행복을 바라는 마음. 그 자체가 행복이 아닐까. 수많은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행복에 대한 생각들도 담고 싶었고. 피아노는 정숙과 귀신을 위해 끌어온 장치다.

한 가족의 일상, 귀신과 연쇄살인사건에 시한부 인생까지, 이야기가 상당히 복잡하다.

별로 좋지 않은 경험이 있어서 모방할 수 없는 작품을 쓰겠다고 복잡하게 만든 게, 너무 복잡해졌다. 장면 안에 장면을 너무 많이 넣고, 연쇄살인범의

심리묘사는 제대로 안 되고. 시한부 인생도 힘든데 연쇄살인범까지 등장하고, 호러 약간에 가족드라마에 사랑이야기까지…. 아직 손봐야 할 부분이

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을 쓰고 싶나.

글을 계속 쓴다면 사람들에게 사랑과 행복을 주고 싶다.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잠깐이나마 행복을 생각해볼 수 있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얘기도 하고 싶다. 그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쓰고 싶은 얘기 다 쓸 때가지 쓰고 싶다, 너무 많아서 마르진 않을 것 같다.

시놉시스

자동차회사 연구소의 오디오팀 과장인 이석은 아내 정숙, 어린 남매와 함께 소도시 변두리의 빌라에 살고 있다. 어느 날 부부싸움

끝에 집을 뛰쳐나온 이석은 술집에서 만난 여자와 여관에 간다. 하지만 여자는 이내 뛰쳐나가고, 취한 이석은 그녀를 찾으러 가다가 차 사고를

일으킨다. 이석은 이 사건으로 모아둔 이삿돈을 다 날리고, 정숙과의 신경전으로 단란하던 가정생활에도 금이 간다. 어느 밤 정숙과 말다툼 끝에

거실로 나온 이석은 귀신을 본다. 한편 운전면허가 취소된 남편의 차를 몰고 수영장에 다니던 정숙은 귀갓길에 실종된 여자의 사체 발굴 현장을

지난다.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이곳이 싫지만 벗어날 수 없어 원망스럽다. 친하던 정 과장 부부까지 이사를 간다고 하자, 지쳐 있던

정숙은 이혼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날 농구시합 중에 쓰러진 이석이 췌장암 말기의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는다. 정숙은 쌓인 앙금을 누르며 이석에게

헌신하려 애쓰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 이석은 새삼 어린 시절의 기억과 귀신이 관계가 있음을 깨닫는다. 늘 음악이 흐르던 이웃 한옥집, 남편에게

구타당하는 선영을 보고 행복을 빌었던 기억. 그때를 회상하며 옛 집의 골목을 찾아간 이석은 혼자된 채 꿋꿋이 살고 있는 선영을 만난다. 다시

선영의 행복을 빌며 돌아온 이석은, 의문이 풀리지 않은 가운데 선영과 외모가 비슷했던 사고 당시의 여인을 떠올린다. 수소문 끝에 정숙과 함께

그녀의 집을 찾아가지만, 다리를 저는 소설가 주환에게 문전박대를 당한다. 며칠 뒤 찾아온 주환은 아내 미란이 6개월째 실종됐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미란이 귀신임을 확신하던 이석은, 주환을 데려다주러 나선 정숙의 실종 통보를 받고 찾아나선다.

시나리오

#1. (F.I) 프롤로그 (25년 전)

저녁 무렵. 한 소년(12)이 골목을 뛰어간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골목을 꺾어 거침없이 내달린다.

골목은 한없이 길고 넓다.

계속 뛰어가다 마침내 어느 골목집 앞 창문 아래에 멈춘다.

창문으로 낯익은 70년대 팝 음악이 흘러나온다.

소년은 숨을 고른 뒤 등을 벽에 밀착시키며 음악에 젖는다.

소년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수를 세듯 손에서 해변의 모래알을 조금씩 바닥에 떨어트린다.

그리고 소년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번진다. (Dissolve)

#2. 6개월 전의 어느 날 밤

[ 2-1. 호프집 ]

이석(37)이 술에 취한 채 노곤한 미소를 짓는다.

테이블에는 빈 술병이 한곳에 가지런히 모아져 있다.

비운 술병 하나를 다시 한곳에 두는 여자의 손.

취기가 오른 이석이 술잔을 단숨에 비운 뒤(뒷모습만 보이는) 여자에게 술을 따라준다.

수수한 차림의 여자가 공손하게 술을 받아 들이킨다.

재떨이에 비스듬히 세워둔 담배는 긴 연기 줄기를 만들어낸다.

[ 2-2. 여관 복도 - 여관방 ]

색이 바랜 빨간색 카펫이 깔려 있는 복도의 맨 끝 방.

방문이 열리고 여자가 옷매무새를 다지며 뛰어나간다. 그녀의 투박한 구두.

뒷모습만을 보이고 뛰어가는 그녀는 두툼한 손가방을 들고 있다.

열린 방 안으로 카메라 들어가면…

이석이 일어나려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 넘어진다.

그 바람에 바닥에 정돈되어 있던 맥주병도 덩달아 넘어진다.

콸콸 쏟아지는 맥주 옆으로 이발소 할인권 다발이 보인다.

[ 2-3. 여관 근처 도로 ]

여관의 네온간판이 이석의 차창에 기울어져 비친다.

헝클어진 모습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이석.

도로 저 멀리 어렴풋이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도로가에 세워둔 자신의 차에 타고

주차한 곳을 빠져 나오려고 급하게 후진을 하는 순간

쿵! 뒷차의 범퍼가 내려앉는다.

다시 전진하다 앞차의 사이드를 쾅!

앞차에서 피곤한 듯 기대있던 원철(40)이 깜짝 놀라 뒤돌아본다.

이석의 차가 앞차의 깨진 사이드 램프의 파편을 짓이기며 빠르게 달려나간다.

원철의 백미러로 뒷차에서 나와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남자가 보인다.

[ 2-4. 달리는 이석의 차 안 ]

가로등이 빠르게 스친다.

이석, 계속 보도로 눈길을 돌리며 달린다.

그가 찾는 여자가 보이지 않자 반대편 차선으로 급작스럽게 유턴한다.

순간 차창 밖으로 왱왱거리며 달려오는 두대의 경찰차.

무시하고 달리는 이석.

백미러로 보이는 경찰차는 더욱 바짝 달라붙는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더 속도를 내는 이석.

그러나 계속 커지는 경음기 소리에 서서히 위협을 느낀다.

바로 옆을 달리는 경찰차를 보고 마침내 포기하듯 차를 멈춘다.

[ 2-5. 경찰서 유치장 ]

또각또각 걸어와 유치장 앞에 멈추는 정숙(35).

수갑이 채워져 있는 이석의 손을 보고 눈물을 떨군다.

아직 술이 덜 깬 얼굴로 정숙을 올려다보는 이석.

책망하는 표정으로 바뀌며 고개를 돌리는 정숙.

이석, 자신의 손에 채워진 수갑을 바라본다. (F.O)

#3. (F.I) 달리는 이석의 차 (현재)

경기도 근교 작은 도시의 동네 도로. 안개가 자욱하다.

정숙이 무표정한 얼굴로 운전하고 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이석이 고개를 돌려 뒷자리를 본다.

서로 고개를 맞대고 자고 있는 하늘(10)과 강(6).

담배를 꺼내 물며 창문을 여는 이석.

순간 끼이익!

정숙 (핸들을 잡은 채 앞을 응시하며) 나가서 펴.

이석 …엄마한테 왜 그래?

정숙 (바로 쏘아보며) 모르면 좀 가만히 있어. 바쁘신 당신 형님들 사모님 때문이라구 알어? 그 사람들 안 왔다고 나한테 역정을 내신 거야.

날 차별하고 무시해서… 참다참다 겨우 한마디했어…. 당신이 바람이나 피다 사고 치지 않았으면 내게 그랬겠어?

이석 또 그 얘기야?! 그 일은 기억이 안 난다고 내 당신한테 수십번 얘기했어.

정숙 (지지 않겠다는 듯)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그렇다고 사라질 줄 알아?

이석 !… 당신과 싸우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은 없었어.

이석, 차에서 내리며 문을 쾅 닫는다.

정숙 !…

바로 급출발해서 내빼듯 사라지는 정숙.

#4. 빌라 근처

이석, 내빼듯 달리는 차를 바라본다.

차가 달리는 방향으로 어렴풋이 외롭게 서 있는 빌라가 보인다.

여전히 안개가 자욱하다.

터벅터벅 걸으며 담배에 불을 붙이는 이석.

길가에 버려져 있는 맥주병을 주워 들고 걸어간다.

주위를 훑어보다… 어느 순간 바위를 향해 힘껏 던진다. 화풀이하듯…

챙… 병은 파편을 튀기며 산산조각 난다.

그걸 보며 걸음을 옮기던 이석, 순간 돌부리에 걸려 휘청한다.

#5. 이석의 빌라 (밤)

[ 5-1. 서재 ]

오디오시스템과 벽을 가득 메운 수천장의 CD가 있다.

헤드폰을 쓰고 벽에 기댄 채 음향공학 책을 보고 있는 이석.

옆에는 대여섯장의 CD와 담배꽁초 하나가 짓이겨 있는 재떨이가 있다.

11시50분.

이석, 책에다 갈피를 끼워 덮고 헤드폰을 벗는다.

책을 책꽂이에 CD를 CD장에 정리하고 방을 나간다.

▶ 제3회

막동이시나리오 공모 발표

▶ 당선작

<좁은 골목의 영혼>

▶ 가작

<11월의 비>

▶ 제3회

막동이시나리오 심사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