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가작 <11월의 비>
2001-05-03

“386세대, 중간자적 세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작가 김철한 인터뷰

김철한씨는 현재 프랑스 영화학교 에섹에서 유학중인 영화학도다. 원래 불문학을 전공했던 그는, 96년 현대 불문학을 전공하러

파리로 떠날 때만 해도 소설가 지망생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보고 느낀 것들, 한국에서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가져가서 나누고 싶다”는, 그렇다면

시청각적인 이미지를 활용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하다 뜻하지 않게 영화에 가닿았다. 하지만 우연해뵈는 영화와의 조우 뒤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백과사전에서 사진을 봤을 때부터 또렷이 남았고, 영화로 보면서는 물리적으로 가슴이 아팠다는 <자전거 도둑>의 기억 같은

내밀한 애정이 있었다. 파리에서 IMF를 맞아 생활고를 면하기 위해 무수한 아르바이트를 거쳤고, 빠듯한 생활 끝에 모은 돈을 털어 99년 에섹에

입학했다. 현재 2년과정의 교육을 모두 마치고 졸업을 위한 영화사 실습만을 남겨둔 상태. 다른 공모에도 냈던 2편과 함께 출품한 는 그의 세 번째 시나리오다.

바다 건너편에서 수상 통보를 받아서 느낌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

원래 소설가를 지망해서 글쓰는 데 부담은 없었지만, 시나리오 작법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걱정이었다. 영화 관련 유학생들의 조언도 듣고,

프랑스와 미국 등의 구할 수 있는 시나리오도 읽어 봤지만, 시나리오작가협회와 백두대간 영화사 공모에 다 떨어져 내가 시나리오라는 걸 잘못 쓰고

있나보다 했다. 학사 일정은 다 끝나서 올 때까지 왔는데 된 게 없다는 생각에 막막했지만, 밤새 다시 쓰고 그랬었다. 그걸 누군가 읽어줬다고

생각하니 위로도 되고 기쁘다.

소설가 지망생이 영화학도, 시나리오 작가로 전환하게 된 계기는.

한국에 있을 때만 해도, 영화를 좋아하긴 했지만 직접 하겠다는 생각은 안 해 봤다. 소설가 지망생으로서 언젠가 시나리오도 쓰게 될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 정도? 현대문학을 전공하러 프랑스로 와서 필수과정인 어학연수를 받는데 IMF가 터졌다. 유학생들은 대부분 귀국했고, 2년간 참 힘겨웠었다.

공부도 다 접어두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그러면서 본 파리는 일년 내내 세계적인 문화행사가 끊이지 않는, 문화적 유산이 풍부한 곳이었다.

여기서 보고 느낀 것들,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가지고 돌아가서 나누고 싶었다. 시청각적인 이미지를 활용해서 그런 것들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영화학교에 등록했고, 연출공부를 하면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생활고를 어떻게 극복했나.

원래 한인소식지 편집 일을 했는데, IMF 이후로는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텼다. 프랑스는 이사 비용이 비싸서 외국 유학생들이 허름한 트럭을

빌려 짐을 싸게 날라주는 일을 많이 한다. IMF 이후 파리에서 그런 이삿짐센터가 4개에서 2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고,

그 밖에도 한국대사관의 행사지원이나 손님 가이드일 등을 했다.

는 어떻게 구상했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면서 5편까지는 그냥 쓰고 싶은 걸 맘대로 써보자고 맘먹었다. 일제 식민지 시대, 30대 후반 세대 등 꼭 쓰고 넘어가야겠다는

몇 가지가 있었다. 그래서 첫 번째 시나리오인 <세노야>는 고통받는 독립투사와 가족들의 얘기다. 에서는

386세대에 대해 쓰고 싶었다. 매체에서 386세대란 말을 많이 듣는데, 그런 세대론이 나올 때마다 해당 연령층들은 그 말 한마디로 정의된다.

지금의 30대 후반, 40대의 사회 기성층으로 변해가는 세대를 지칭하는 것 같은데, 획일적 시각으로 볼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공통점도 있지만

저마다 아주 다르게 살아왔다는 것, 386세대란 말로 다 표현될 수 없는 것, 중간자적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본인도 386세대이기 때문인가.

엄격히 말하자면 난 386세대로 정의할 수 없는 부류에 속한다. 85학번 나이지만 군대에 갔다와서 91학번으로 학교를 다녔고, 한쪽에서 출정가가

울릴 때 록밴드를 하느라 연습실에서 하드록을 연주하곤 했으니까. 형들 때문에 중학교 때부터 팝을 들었고, 고등학교 때부터 기타를 배우면서 대학

때는 뮤지션이 되고도 싶었다. 30대 후반 정도되면사람마다 제각각 사연이 참 많다. 사회생활, 군대 등등. 지금은 아무도 안 들어주지만. 그

얘기를 쓰고 싶었다. 386세대라 불리는 지금의 30대들이 교육받고, 자라고, 강제받았던 상황들, 그 속에서 양분된 사람들을 두 친구를 매개로

담아내고자 했다.

동성애적인 코드를 끌어온 것은 어떤 의도였나.

두 친구의 관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동성애적인 시각으로 보여지기 쉽겠지만, 사실은 동일인의 정서, 분열된 한 사람의 두 자아라고 생각했다.

아주 가까운 두 친구 사이에서는 굉장히 밀착된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꼭 동성애로 정의되는 걸 원치는 않았지만, 감수해야지. 사고가 밀착되고,

정서적으로 연결된 두 사람을 표현하기 위해 음악이나 세트에서 동성애적인 코드를 차용해온 부분도 있다.

계속 시나리오 작가로 남고 싶은가.

기본적으로 하고 싶은 것은 영화연출이다. 시청각화가 가능한 문학작품과 시청각화가 돼 있는 매체로서의 영화는 다르니까. 시나리오의 메시지는 연출을

통해 살아난다. 나같은 지망생은 실제 작업에 접근할 길이 멀고 험할 테니, 시나리오 작업을 꾸준히 하면서 기다려야겠지. 무엇을 얘기할 것인가,

어떤 얘기를 나눠가질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루이스 브뉘엘의 영화를 좋아한다. 빈민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사회적인 기능을 할 수 있는

매체로서의 영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를 나눠가질 수 있고, 고독한 개인들이 보면서 같은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시놉시스

건축설계사무실을 운영하는 30대 후반의 동연은 아내 소영이 피살되자 용의자로 조사를 받는다. 알리바이가 확실해 혐의를 벗고

나온 동연은, 경찰서 앞에 마중나온 친구 주한과 예전부터 자주 찾던 동해안으로 간다. 착잡한 심경을 잠시라도 잊어보려고 수영을 하던 동연은,

뒤따라오던 주한이 실종된 것을 알고 혼란에 빠진다. 구조작업에서도 주한은 발견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동연은 이웃에 있는 주한의 집이 완전히

불타버린 것에 놀란다. 그날 밤 동연은 집을 기웃거리던 괴한, 주한의 사촌에게 카세트테이프를 건네 받는다. 기타 반주와 함께 녹음된 주한의

이야기에는 군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두 친구가 공유한 추억, 동연의 삶을 둘러싼 주한의 갈등과 애증의 비밀이 담겨 있다. 80년 후반, 여리고

나약한 신병인 주한은 동성애자인 조 병장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동연의 도움을 받는다. 당당하고 패기만만한 동연에게 끌리는 주한은, 제대 뒤

동연의 학교로 진학해 함께 생활하고, 시위와 혼란의 와중에서 각별한 우정을 쌓는다. 주한의 어머니가 갑자기 죽음을 맞은 날 그들 사이에는 소영이

끼어들고, 우정과 사랑의 경계를 찾지 못하던 주한은 동연을 떠난다. 하지만 미국으로 떠난 주한은 동연을 잊지 못하고, 동연을 따라 결혼한 뒤

폭파철거전문가가 되어 한국에 돌아온다. 공사현장에서 재회한 두 친구는 오랜만에 옛 우정을 되새기지만, 동연을 아끼는 주한은 소영의 부정을 감내하고

두 아이를 돌보며 살아가는 친구의 고달픈 모습이 안타깝다. 한편 소영의 뒤를 캐기 위해 고용했던 심부름센터 소장 희창은, 소영의 정부를 죽이고

주한을 협박하다가 죽음을 당한다. 그뒤에도 소영의 부정은 이어지고, 보다 못해 찾아간 주한의 앞에서조차 당당하던 소영은 결국 사체로 발견된다.

시나리오

#1. 외부-바닷가-낮

인적없는 바닷가 바위투성이 암석지대, 삼십대 중반, 군살이 다소 붙었지만 건장한 동연이 알몸으로 물에 뛰어든다. 상당한 수영 실력의 동연이

바다 쪽 물결에 잠길 듯 어른거리는 작은 바위를 향해 곧장 헤엄쳐간다. 양복 차림으로 멀찌감치 바위와 헤엄치는 동연을 번갈아 바라보는 주한은

동연에 비해 훨씬 젊어보인다. 주한이 동연이 벗어둔 옷 옆에 앉으며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전화벨이 여러 차례 울리고 나서 응답기가

돌아가자, 메시지 없이 녹음된 기타소리가 들려온다.

#2. 내부-하얀 집-낮

(#1과 같은 시간 / 교차편집), 한돌이 지난 지호를 품에 안은 선주가 열쇠를 꺼내 현관문을 연다. 문을 여는 선주의 등 뒤로 널찍한 밭

하나를 지나 동연의 집이 멀리 보인다. 선주가 집안에 들어서자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고 무엇에 놀란 듯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린다. 거실에 놓인

전화를 바라보던 선주가 지호를 달래며 전화벨 소리가 들려오는 이층 주한의 서재로 향한다. 서재에 들어와 전화벨 소리를 좇아 허둥대던 선주가

책상 서랍 안에서 전화기를 발견하는 순간 응답기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선주가 응답기에서 흘러나오는 기타소리를 들으며 막 수화기를 드는 순간

응답기에 붙은 빨간색 단추가 깜박이며 작은 경고음이 울린다.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던 경고음이 막 다섯을 헤아릴 때 하얀 집은 폭발과 함께 엄청난

화염에 쌓인다.유리창은 산산이 부서져 사방으로 날아가고 네이팜탄에 맞은 듯 맹렬한 화염이 건물의 몸체를 고스란히 삼켜버린다. 엄청나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가 멀리 보이던 동연의 집을 가린다.

#3. 외부-바닷가-낮

힘이 부친 듯 움직임이 완만해질 무렵 헤엄을 치던 동연이 겨우 바위에 도착한다. 바위 위에 오른 동연은 주한이 있는 육지 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먼 바다를 향해 바위에 걸터앉는다. 생각에 잠긴 듯 움직일 줄 모르고 수평선을 바라보는 동연의 뒤로 역시 알몸이 된 주한이 능숙한 솜씨로 헤엄을

쳐온다. 지친 기색도 없이 그대로 바위에 올라선 주한이 동연이 향하고 있는 먼 바다쪽 수평선을 바라본다.

주한 : “무슨 생각해?”

동연 : “그런 거 안 한지 오래됐어. 넌 뭘 보고 있어?”

주한 : (턱짓으로 먼 바다를 가리키며) “글쎄 있어서 보는 건지? 보니까 있는 건지…?”

동연 : “무슨 소리야?”

주한 : “저기.”

주한이 가리키는 먼 바다쪽 아득한 수평선이 끝간 데 없다. 주한의 시선을 따라 수평선을 바라보며 말이 없던 동연이 일어난다.

동연 : “(육지쪽을 바라보며) 와서 보니까 되게 머네, 저기까지 언제 가냐 ?”

동연이 돌아보면 바다쪽으로 쑥 들어온 모래톱 끝에 밤송이처럼 해송이 높이 자란 작은 섬이 있다. 온통 바위들로 둘러싸인 섬 가장자리 동연과

주한이 옷을 벗어둔 큼직한 바위가 보인다.

잠시 뒤 동연이 물에 뛰어들고 잠시 동연을 바라보던 주한이 곧 뒤따라 뛰어든다. 동연이 육지쪽을 향해서 곧장 헤엄을 쳐나가고 주한 역시 뒤따라

물에 뛰어들어 힘차게 헤엄쳐 나아간다. 두 사람이 한참을 헤엄을 치고 있을 때 바위를 기점으로, 동연은 육지를 향해 주한은 먼 바다를 향해

정반대로 가고 있다.

겨우 암석지대에 도착한 동연이 지친 듯 바위틈을 기어오르다가 주한이 없는 것을 알아차린다. 당황한 동연이 물 속과 바다쪽 바위를 두리번거리지만

주한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주한의 이름을 부르며 옷을 벗어둔 곳으로 간 동연이 주한의 옷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당혹한 눈으로

출렁이는 파도를 바라본다.

저만치 바다쪽에는 동연이 주한과 앉았던 작은 바위만이 파도가 칠 때마다 물 속에서 머리를 내밀다 이내 잠기곤 한다.

#4. 외부-고속도로-밤

생각에 잠긴 동연이 혼자서 주한의 차를 몰고 있다. 초조하게 빈 담뱃갑을 구기던 동연이 조수석에 놓인 주한의 소지품을 뒤진다. 운전을 하느라

정신이 팔린 동연이 주한의 양복을 뒤질 때 안주머니에서 휴대용 소형 녹음기가 차 바닥에 떨어진다. 주한의 옷에서 찾아낸 담배를 피워 문 동연이

길게 연기를 뿜어내며 생각에 잠긴다.

(FLASH BACK)

어두워지는 바닷가에서 경찰들과 구조대원들이 주한을 찾기 위해 수색작업을 펼치고 있다. 주한의 옷과 소지품을 든 동연이 구조대원들 사이에서 걱정스런

눈으로 먼 바다를 주시한다.

구조대원 1 : “수온이 너무 찹니다. 수심도 깊고 아무래도 익사 후에 조류에 휩쓸린 것 같은데요.”

구조대원 2 : “시간없어 어서 서둘러! 어두워지기 전에 좀더 찾아보자구.”

#5. 외부-마을 길-새벽

동연이 운전하는 주한의 차가 새벽안개를 헤치며 마을길을 달리고 피곤한 동연이 졸음을 참으며 겨우 운전을 한다. 밭을 사이에 두고 동연의 집

방향과 갈라지는 갈래 길에서 동연은 주한의 집을 향한다. 가물거리는 안개를 헤치며 주한의 집 근처에 도착한 동연이 집이 보이지 않자 당황한

듯 급히 핸들을 꺾으며 차를 세운다. 차를 세운 동연이 무엇에 홀린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차에서 내린다.

#6. 외부-하얀 집-낮

안개가 걷히고 산등성이로 햇살이 번져오는 아침, 차 옆에 멍청하게 선 동연이 주위를 돌아본다. 차가 선 자리가 주한의 하얀 집 현관이 있던

자리임을 확인한 동연이 집터를 둘러보며 당황한다. 집터 모양을 따라 두툼하게 잿더미가 한 층을 이루고 있을 뿐 주한의 하얀색 이층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동연이 놀란 눈으로 집터 주변 사방에 깔려 있는 유리 파편들과 집터 자리에 두껍게 깔린 잿더미 위에 서너개 겨우 형체만

남아 뒹구는 가재도구를 바라본다.

#7. 내부-경찰서 1-낮

경찰서 1, 동연이 담당형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찰간부 : “사고시각은 어제 낮 네시경입니다. 원인 모를 강력한 폭발이 있었습니다. 폭발에 따른 화재로 송주한씨 소유의 이층 단독주택이 흔적도

없이 전소됐습니다. 출동 소방관들의 말에 의하면 상상할 수 없는 맹렬한 불길이었답니다. 화재진압반이 신고 후 십오 분, 폭발 후 약 이십분

만에 도착했는데 이미 화염이 온 집을 삼켜버린 뒤라서 속수무책이었다고 합니다. 이미 속초 경찰에 협조 요청을 했습니다만 실종된 송주한씨의 소재파악

이전에는 사건해결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수사에 협조를 좀 부탁드립니다.”

▶ 제3회

막동이시나리오 공모 발표

▶ 당선작

<좁은 골목의 영혼>

▶ 가작

▶ 제3회

막동이시나리오 심사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