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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척하는 진짜 살인마,<프레일티>

두 어린 아들과 건실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한 사내가 어느 날 갑자기 천사의 계시를 받고 악마를 색출하고 처단하는 ‘신의 손’ 역할을 이행하게 된다. 이 난데없는 광신도적 광기에 연쇄납치 살인이 벌어지는데, 9살 난 둘째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한편 12살 난 큰아들은 아버지가 미친 것임을 안다. 누가 봐도 그것은 미친 짓이다. 버려진 헛간에서 도끼를 주워와서 신이 내린 도구라고 하질 않나, 아무런 증거도 없이 신으로부터 받았다는 명단만을 토대로 그들을 납치해서는 손을 대보면 그 죄악이 낱낱이 보인다고 하고는 한번 만져보고는 악마로 단정하고 망설임없이 도끼로 죽여버린다. 그 모든 것이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정의의 심판이다. 하지만 그건 누가 봐도 미친 짓이다. 그 확고한 믿음 앞에서 큰아들 팬튼은 무서움에 떤다. 그렇다. 아무도 못 말리는 확고한 믿음은 공포스럽다. 뭐니뭐니해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귀신도 아니요, 괴물도 아니요, 다름 아닌 확고하게 ‘미친놈’이다. 그 광기로 인한 잘못된 판단이 폭력을 휘두를 때, 그것이 바로 가장 두렵고 위험한 악마의 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영화를 보노라면 상식과 정의감을 잃지 않는 큰아들 팬튼에게 기대와 희망을 가지게 된다. 믿음을 가지게 된다. 팬튼의 신념 또한 확고하다. 그러나 곧 알게 된다. 미친놈보다 더 무섭고 위험한 것은 멀쩡해 보이는 인간이라는 것을.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에도 신밧드의 모험담이 얽혀 있는 바그다드에서는 사람들이 죽어나고 있다. 더러운 명분의 전쟁. 그 미치광이 전쟁의 시작을 선언하는 부시 미 대통령의 개전발표 방송을 통해 나는 악마의 모습을 또렷이 보았다. 이라크 국민에 대한 구원의 메시지와 세계의 평화와 독재를 타도하겠다는 정의로운 명분들을 내세우는 그의 표정은 너무나도 확고하고 결의에 차 있었다. 확고한 믿음. 한점 흔들림도 없고 한점의 의심도 파고들 여지가 없는 확고한 신념의 그 눈빛과 다짐. 그것은 너무나도 당당해서 하마터면 부시가 무조건적인 정의의 사도라고 믿을 뻔하게 되었고 후세인은 악마이며 무조건 죽여야 한다고 믿을 뻔했다. 그리고 미국민들의 광신.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그 어떤 국제적 비난과 반대여론과 유엔의 존재조차도 무시하며 살육을 강행할 수 있는 그 확고한 정의로운 신념. 그 흔들림없는 신념은 한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마음속 한켠에라도 거짓말을 의식하는 인간이라면 한번쯤은 눈꼬리가 미세하게 떨리기라도 했으리라. 한번쯤은 앞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시선이 흔들렸으리라. 그러나 그는 그 어떤 정의의 첨탑보다도 강하고 높고 날카로운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는 기어이 ‘충격과 공포’의 카니발을 시작하고야 말았다. 민간인들을 수없이 죽이고도 시치미를 떼고 오직 정의의 사도로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한점 부끄럼도 타지 않는 그의 부동의 신념을 추종하는 것은 대다수 미국민들이다. 그들은 모른다. 악마는 결코 뿔난 머리에 박쥐날개와 화살표 꼬리를 달고 나타나지 않으며 가장 정의로운 의인의 모습으로 인간세계에 숨어든다는 사실을.

영화는 후반부로 가면서 허를 찌르는 반전을 보여준다.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아버지의 주장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버지를 결국 구제불능의 미치광이로 판단하고 도끼를 그의 가슴에 꽂은 큰아들의 확고한 신념은 무엇인가. 너무 확고한 신념이란 어느 쪽이든 위험하다. 한점 의심없는 확고한 신념을 유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악마의 모습이다. 이 영화는 국민의 70%가 부시를 지지하는 미국에서 큰 히트를 기록하진 못했다. 미국민들이 한번쯤이라도 그들 자신의 상식을 의심하고 그들의 정의를 의심하고 그들이 지지하는 정의의 사도가 도리어 끔찍한 악마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볼 기회를 외면한 것이다. 김형태/ 궁극종합예술인 www.theg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