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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작품상 받은 <시카고>의 허점들

타협과 절충주의

1.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극장주의적 변신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뒤 스티브 마틴이 이라크전을 끝낼 방법이 있다고 허풍을 떨었던 모양이다. 그 방법은? 조지 W. 부시와 사담 후세인을 한 방에 가두어놓고 <사랑은 비를 타고>를 함께 보게 한다. 그 영화를 본 뒤에도 전쟁을 계속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결코 가장 좋은 스티브 마틴 농담도 아니고, 일반적인 기준으로 봐도 그렇게 좋은 농담이 아니며, 사실 요새 분위기 속에서는 그냥 농담이라고 받아들이기도 좀 그렇지만, 한 가지는 맞다. <사랑은 비를 타고>에는 분명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마음을 풀어놓게 하는 구석이 있다.

그리고 그건 할리우드 뮤지컬의 기본적인 기능이기도 하다. 관객에게 거친 현실을 잠시 잊을 만한 행복한 몇 시간을 제공하는 것. 대부분의 뮤지컬들이 단순 소박한 해피엔딩의 로맨스인 것도 그 때문이다. 일반 극영화에서 비극적 로맨스를 즐기는 관객도 진 켈리 주연의 뮤지컬영화에서 같은 수준의 드라마나 비극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나 <카바레> 같은 영화들은 뭐냐고? 그런 영화들은 할리우드 뮤지컬의 전성기를 훨씬 넘긴 1960, 70년대에나 나왔다. 소박한 할리우드 장르 공식을 하나씩 깨뜨리며 거칠거칠한 현실의 요소들을 하나씩 삽입하던 당시 말이다. 이런 식의 변화는 장르의 몰락을 초래했다. 할리우드 뮤지컬이나 서부극은 의심없이 장르 설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쉽게 붕괴된다. 당시의 ‘수정주의적’ 접근법은 거의 사망 선고였던 셈이다. 수정주의 서부극에는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핑계라도 있었지만 뮤지컬은 그런 것도 아니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사랑은 비를 타고> 사이에는 또 다른 중대한 차이가 있었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안에서 자체 생산된 작품이었다. 하지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나 <카바레>는 브로드웨이에서 먼저 상영된 연극을 각색한 것이다.

특별히 장단점을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대 뮤지컬과 영화 뮤지컬은 접근 방식부터 다르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공간적 제한에 있다. 영화는 카메라와 편집자의 가위가 허락하는 한 어디든지 간다. 하지만 무대극은 어쩔 수 없이 무대라는 공간에 제한될 수밖에 없다. 회전 무대나 무대 장치들이 동원되어 그 제한을 커버할 수 있긴 하지만 그 역시 제한적이다.

그 결과 무대 뮤지컬이 공간적 제한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서서히 극장주의적으로 변해간다. 최근 들어 히트한 <오페라의 유령>이나 <레미제라블> 같은 작품들을 보라. 모두 스펙터클을 추구하는 작품들이긴 하지만 효과를 위해서라면 사실주의 따위엔 신경도 쓰지 않는다. 관객이나 연기자들이나 모두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연극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이런 스타일의 변화는 중요하다. 사실성에 대한 환상은 어떤 장르에서건 기본적인 소박함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뮤지컬이 이야기 중간에 노래와 춤을 선보이는 장르라도 말이다. 이야기의 형식이 거기에서 벗어나면 관객은 불안해진다. 한마디로 진정효과가 떨어진다는 말이다. 게다가 예술적 테크닉이 무대에 깊이 뿌리를 박을수록 영화로 옮기는 건 점점 더 어려워진다.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극장주의적인 변신은 스토리와 주제의 입체화와 자연스럽게 길을 같이했고 두 가지 모두 브로드웨이에서 소스를 공급받던 후기 할리우드 뮤지컬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2. 관객들은 변했다

뮤지컬 장르가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연속해서 두편의 뮤지컬영화가 모두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건 정말 오래간만의 일이다. 그리고 그중 한편은 정말로 작품상을 타기도 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오페라의 유령>이나 <레미제라블>과 같은 뮤지컬의 영화 버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 뮤지컬영화의 관객은 <사랑은 비를 타고>의 관객과 같지 않다.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 분명한 차이점을 지적할 수 있다. 우선 그들은 소박한 해피엔딩의 로맨스보다 복잡한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을 별 부담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동안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할리우드영화들은 모두 꾸준히 내용폭을 넓혀왔던 것이다. 둘째로 그들은 당시와는 다른 뮤지컬 언어에 익숙해져 있다. 뮤직비디오 말이다.

첫 번째는 건너뛰고 두 번째로 넘어가기로 하자. 극장주의적인 뮤지컬과 뮤직비디오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가위질의 방식이다. 극장주의 뮤지컬은 될 수 있는 한 장면전환없이 하나의 장면에서 모든 걸 처리하려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뮤직비디오는 필요 이상으로 분주한 자잘한 컷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동안 둘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들을 다시 화해시킬 수 있을까?

3. <시카고>는 어정쩡하다

밥 포스의 무대 뮤지컬 <카바레>와 <시카고>는 모두 카바레와 뮤직홀이라는 무대 공간을 전면에 끌어놓고 노래와 춤을 정당화시키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야기 중간에 갑자기 사랑의 노래를 뽑아대는 일반적인 뮤지컬보다 더 사실적이라고 우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무리 이야기 속의 무대라는 핑계를 댄다고 해도 이들이 극장이라는 공간을 다루는 방식은 기존 뮤지컬들과는 다르다. 상대방을 제외하면 종종 관객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이전의 뮤지컬과는 달리 이들의 노래와 춤은 눈앞에 앉아 있는 관객과의 직접적인 대화이다.

이런 작품들을 어떻게 하면 영화화할 수 있을까? <카바레>는 비교적 쉬웠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노래와 춤들은 말 그대로 카바레의 공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춤과 노래의 삽입에 사실적인 핑계를 달지 않은 <시카고>는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벌써 두개의 질문이 나왔는데, 영화는 이 둘을 서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방법을 택했다. 영화 <시카고>의 세계는 둘로 나뉘어져 있다. 하나는 록시와 벨마가 재판을 받는 현실세계이다. 다른 하나는 이들이 춤과 노래로 관객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가상의 무대 공간이다.

이론만 따지면 지금까지 제시된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되었다. 환상과 현실을 분리시키자 뮤지컬의 표현적인 요소는 실제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의 사실성을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살아남았다. 현실세계와 뮤지컬 세계의 잦은 교차편집은 현대 뮤직비디오의 영화적 테크닉을 무대 뮤지컬영화 각색물에 이식시키는 핑계가 되기도 한다. 이런 식의 접근법이 영화의 매정한 냉소주의를 더 강조하기도 한다. 문제는 머릿속으로 짜맞춘 개념이 실제 스크린에서도 그대로 산다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수상쩍은 점들을 하나씩 지적해보자. 일단 화면비율부터 보자. 이 영화의 화면 비율은 1.85:1이다. 혹시 여러분은 이 비율로 만들어진 뮤지컬의 걸작을 하나라도 알고 있는지? 대부분 이 장르의 작품들은 스탠더드 화면이거나 2.35:1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어떠냐고? 대부분 그 영화들의 화면비율은 1.66:1로 일반적인 1.85:1보다 스탠더드에 가깝다. 그리고 브로드웨이 뮤지컬 각색물에서는 좌우 길이를 충분히 살리는 2.35:1이 유리하다. 왜 이번 영화는 그 비율을 포기했던 걸까? 안전한 길을 택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라도 되는 걸까?

두 번째. 혹시 무대 뮤지컬을 다루는 방식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지? 이런 종류의 공연에서 시선 처리는 상당히 중요하다. 만약 배우가 관객들을 주시한다면 그 시선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배우들의 정면 응시 반 이상은 수상쩍게 무시되고 화면구성은 늘 성의없어 보일 정도로 기울어져 있다. 종종 1층 맨 앞자리 구석에서 뮤지컬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어떤 냉정한 비평가는 마치 아델피 극장 앞 좌석에서 캠코더로 찍은 것 같다고 했는데, 좀 심한 말이긴 해도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일부러 이런 식의 균형과 시점을 파괴해서 얻는 게 무엇인가?

세 번째. 극장주의적인 방식에는 고유의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시카고> 역시 전혀 다른 두개의 세계가 하나의 무대에서 합쳐질 때 느껴지는 강렬한 쾌감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을 영화의 편집으로 번역하면 원래의 매력은 사라지고 만다. 편집이란 영화에서 일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앨런 파커의 <에비타>가 그런 편집으로 흥미로운 영화를 평범하게 추락시킨 대표적인 예다. <시카고>는 <에비타>보다 조금 더 창의적이긴 해도 결국 매력적인 소재를 평범화시킨 것에 불과한 게 아닐까?

이런 질문들을 계속 곱씹고 있노라면, 이 영화의 어정쩡한 성격이 조금씩 폭로되기 시작한다. 좋건 싫건 완벽한 예술적 자기 완결성을 지니고 있던 지난해의 <물랑루즈>와는 달리, <시카고>는 잡다한 타협과 절충주의가 가득하다. 관객은 종종 무대에서 벗어나겠다며 쿵쾅거리고 뛰어나갔다가 슬쩍 돌아왔다가 쑥스럽다는 듯 다시 달아나기를 반복하는 무대감독의 방황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바로 그게 이 영화가 데뷔작이었던 롭 마셜의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아니었는지? 영화는 여전히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그게 영화적 성취가 아니라는 느낌이 자꾸 드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그건 <시카고>로 대표되는 ‘현대 브로드웨이 뮤지컬영화‘가 아직 안정된 자기 표현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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