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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회 아카데미 영화상 The 75th Annual Academy Award [2]
김혜리 2003-04-04

"미스터 부시 정신차리시오!" 부시 대통령에게 강도 높은 비난을 한 마이클 무어.

캐서린 제타 존스(왼쪽)는 만삭의 몸에도 퀸 라티파와 <시카고>의 주제가를 불렀다.

스코시즈 역시 미라맥스의 열의에 밀려 각종 토크쇼 홍보까지 참여했다. 작품상 후보 중 유일하게 미라맥스와 연고가 없는 <피아니스트>의 선전도 ‘무조건 따놓은 당상이니 인정하라’는 식의 귄위적인 홍보전이 저항을 자극했음을 짐작게 한다. <갱스 오브 뉴욕>에 비할 수는 없지만 <디 아워스>의 실망도 컸다. 문학적 배경, 유려한 형식미, 명품 연기 앙상블로 제작단계부터 확실한 오스카 카드로 불렸던 <디 아워스>는, 영화가 지닌 미덕의 1/3 미만인 니콜 키드먼의 연기를 공인받는 트로피 한개로 만족해야 했다.

또 다른 통쾌한 반란은 시상식 현장 공연에서 제외된 에미넴의 <Lose Yourself>에 돌아간 주제가상. 놀라움을 숨기지 못한 시상자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에게서 트로피를 받아든 공동 작곡자 루이스 레스토는 의 배경 디트로이트 스포츠팀 티셔츠에 바람막이 재킷을 걸치고 아카데미 무대에 겅중겅중 뛰어올라가 오스카 패션의 신경지를 열기도 했다. <그녀에게>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역시 각본상을 수상해 37년 만에 비영어영화의 시나리오가 각본상을 타는 쾌거를 올렸다. 반면 드림웍스와 디즈니의 후보작들을 가볍게 제압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장편애니메이션 부문 수상은 이변이라기보다 재패니메이션이 이미 미국 시장에서 확보한 대중적 입지를 추인하는 절차로 보였다.

눈물과 고함의 반전 메시지

어느 해보다 엄격하게 시행된 45초의 수상소감 시간제한은 가족과 매니저에 대한 통상적 치하부터 세계 평화까지 언급해야 했던 제75회 오스카 수상자들에겐 턱없이 부족했다. 올해 오스카의 승자들은 감사와 기도, 눈물을 바칠 대상이 유난히 많았다. 오랜 인고의 세월을 거친 배우가 쏟은 감격의 눈물은 지금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고통에 대한 무력감이 자아내는 눈물과 섞여 분간하기 어려웠다. <어댑테이션>의 난초 도둑 역으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크리스 쿠퍼는 힘든 시간을 같이 견뎌온 아내를 향한 울먹이는 감사 끝에 “세상에 현존하는 아픔을 돌이키며 우리 모두에게 평화를 기원한다”고 덧붙여 오스카 시상식의 평화 청원 어록의 첫줄을 새겼다.

다음 주자는 <프리다>의 주제가 <Burn It Blue> 공연을 소개한 <이 투 마마>의 신예 게일 가르시아 베르날. “프리다 칼로가 살아 있었더라면 전쟁을 반대하는 우리 편에 있었을 겁니다”라는 그의 말에 프리다로 분했던 객석의 샐마 헤이엑은 환호했다. 반전 발언 수위에 대한 식장의 서스펜스는 장편다큐멘터리 시상자 다이앤 레인이 기쁨을 감추지 않은 높은 음성으로 <볼링 포 콜럼바인>의 마이클 무어를 수상자로 호명하는 순간 폭발했다. 기록영화 작가들의 연대를 표명하기 위해 동료 후보들을 몰고 무대에 오른 마이클 무어는 의례적 치사는 내동댕이치고 “논픽션을 좋아하는 우리는 허구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허구적인 이유로 우리를 전장으로 내모는 허구적인 대통령과 함께 살고 있다. 부끄러운 줄 아시오 미스터 부시!”라고 분노를 난사했다. 무어의 고발이 길어지면서 최초의 환호는 야유소리에 잡아먹혔지만, 부정적인 반응은 무어의 매너에 관한 것이었지 전쟁에 우호적인 정서의 반영은 아니었다는 것이 중평. 반면 곧이어 단편다큐멘터리상을 탄 <트윈 타워즈>의 감독들은 9·11 사태로 희생된 경찰, 소방관에게 영화를 바치는 심플한 소감으로 대조를 이뤘다. 연출자의 사전 지시를 어기고 소감을 메모지에 적어온 <그녀에게>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오스카를 평화와 국제 법질서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 모든 이에게 바쳤다.

그러나 할리우드와 언론의 심기를 가장 편안하게 어루만진 ‘적절한’ 발언은 파티의 꽃인 남녀 주연상 수상자에게서 나왔다. 울먹이며 무대에 오른 니콜 키드먼은 “이 상황에서 오스카에 참석하는 이유는, 예술은 중요하기 때문이고 우리 일의 가치를 믿기 때문이며 지켜져야 할 전통이라고 믿어서입니다”라고 말해 참석자 전원의 입장을 대변했다. 예기치 못한 수상으로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던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피아니스트>를 찍으며 전시의 슬픔과 비인간화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내겐 쿠웨이트로 파병된 친구도 있습니다. 알라이건 하나님이건 당신의 신이 여러분을 지켜보기를,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길 바랍니다”라고 45초를 훌쩍 넘긴 소감을 마쳤다. 격정 속에서도 두 사람은 예술의 중요성을 언급해 할리우드의 독립을 강조하고, 보편적인 평화에 대한 기원으로 세계적인 반전 정서에 호응하며, 파병된 미국 군인들의 무사 귀환까지 염려하는 황금 비율의 애드리브에 성공해 오스카 연기상 트로피가 보증하는 자질을 즉석 입증했다.

제75회 아카데미는 2001년에 이어 주요 부문상을 고루 배분하고 주제가상, 각본상 등에서 예상 밖 승자를 내놓음으로써, 오스카가 일정한 미학적 기준을 다짐하는 영화상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상에 따라 대중과 함께 움직이는 영화산업 종사자들의 취향을 반영하는 영화상임을 확인시켰다. 한편 시상내역보다 더한 관심을 끌었던 영화 밖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올해 시상식은- 할리우드영화에 흔한 평화애호 수사(修辭) 수준을 크게 넘기지 않았다 해도- 존중할 만한 용기와 균형감각을 보여주었다. “영화배우란 각양각색입니다. 키가 작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고, 마를 수도 있고 깡말랐을 수도 있고. 민주당 지지자일 수도 있고, (장내를 돌아보다 대를 이룰 구절이 궁하다는 표정으로) 깡말랐을 수도 있고…”라는 스티브 마틴의 조크는, 박스오피스를 먹여살리는 미국민 다수가 기왕 시작된 전쟁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명한 시기에도 전쟁에 부정적인 할리우드의 지배적 정서를 드러냈다. “워싱턴이 못생긴 사람들의 할리우드라면 할리우드는 단순한 인간들의 워싱턴이다”라고 불평했던 공화당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3월23일 밤 다시금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 이유는 의외로 단순할지도 모른다. 누가 강자가 약자를 일사천리로 짓밟는 영화를 보러오겠는가? 할리우드의 예술가와 엔터테이너들의 본능은 그 답을 알고 있는 것이다.김혜리 vermeer@hani.co.kr

사회자 맡은 스티브 마틴, 분전하다 “분위기 정말 화기애매하네요”

좌중을 고루 흡족하게 만드는 적당한 조크를 구사하기에 이보다 더 힘든 상황이 있을까. 올해 두 번째로 오스카 사회를 맡은 스티브 마틴은 동정받아 마땅했다. 에 따르면 마틴과 시상식 작가팀은 “사담 후세인, 시상식을 보고 있다면 작품상 발표 직전에 당신 TV가 고장났으면 좋겠네요”라는 농담도 구상했다가 폐기했다고. 지지난해 시상식에서 건조하면서도 쇼 비즈니스계의 자화상을 짚는 자조적인 유머로 호감을 샀던 스티브 마틴은 올해에도 같은 전략을 썼다. 결과는 합격점. 그러나 폭소의 크기가 예년만 못했던 것은 그의 탓이 아니라 마음 편히 박장대소할 수 없는 현실 탓이었다.

“작가, 감독, 배우. 이 안에서 식량이 떨어지면 잡아먹을 순서입니다.”

“니콜 키드먼은 지금까지 모든 출연작에 가짜 코를 달고 연기했죠. <디 아워스>만 빼고.”

“<시카고>에서 호연한 리처드 기어가 후보지명도 못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했습니다. 웰컴 투 마이 월드, 리처드!”

(한해간 작고한 영화인의 얼굴이 소개된 다음) “잠시 뒤에는 죽은 줄만 알았지만 실은 죽지 않은 분들의 몽타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할리 베리를 소개하며) “최고로 섹시한 여인들에 대한 오스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무너뜨린 주인공입니다.”

(마이클 무어가 부시를 비난하고 퇴장한 뒤) “무대 뒤 풍경이 화기애애합니다. 수송요원들이 무어가 리무진 트렁크에 들어가도록 돕는 광경을 여러분도 보셨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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