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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영화 <그 남자의 사정>으로 스크린 데뷔하는 변정수
이영진 2003-04-09

“전주영화제에서 신고합니다”

“잘사는 부부를 왜 ‘파토’내려고 하는지 모르겠네.” 새벽부터 시작한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한숨 돌리려는 정오 무렵.변정수(29)는 이승연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자마자 씩씩댄다. 자신이 남편과 불화 중이라는 기사가 스포츠 신문에 실렸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이다. 아침 식사를 촬영용 스모그로 대신했다며 콜록대던 변정수는 “주말에도 가족과 여행 계획을 짰는데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냐”며 상기된 얼굴이다. 이승연이 “오늘 만우절이야”라고 일러주지 않았다면 오후 스케줄 취소하고 멱살잡이 하러 곧장 신문사로 쳐들어갔을지도 모른다.

변정수는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좀처럼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 3월28일, ‘이라크 전쟁 및 한국군 파병 반대’를 외치며 돌연 국회를 ‘기습’한 것도 그런 기질과 무관하지 않다. 1인 시위를 하는 동안 그는 내내 눈물을 흘렸었다. “TV 보면서 강건너 불구경 하듯 했어요. 그런데 여섯살 난 딸이 지금 불꽃놀이 하고 있는 거냐고 묻더라구요. 화면에서 피폭당한 아이들 보고선 병원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고. 속으로 뜨끔했죠.” “엄마는 전쟁 때 뭐했냐고 물으면 할말이 없을 것 같아 자원했다”는 그는 거리에 나선 이후에야 ‘내가 거짓말 하는 엄마가 아닌가’ 하는 자가진단에 떳떳해졌다.

처음에 그는 가족 시위를 계획했다. 하지만 법률상 국회 앞에서 2인 이상 시위를 하지 못한다는 현행 법령에 따라 ‘홀로’ 나섰다. “미국이 자국이익을 위해 벌인 명백한 침략이잖아요.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파병을 준비하고 있으니 갑갑해요. 전쟁 잘하라며 길 닦아주는 게 말이 되냐구요.” 전쟁은 특히 아이들에겐 이루 말할 수 없는 지옥이라고 말하는 그는 올해 아동학대방지를 위한 국제민간기구 굿 네이버스 홍보대사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기아구호 활동은 일정상 놓쳤는데 기회가 있으면 북한에 먼저 가서 밥 먹기조차 불편한 장애아들을 돕고 싶어요.”

그러고보니 ‘정면 승부’는 변정수가 살아온 방식이기도 하다. “선머슴 같아서 화장실도 같이 못 가겠다”던 대학 친구들의 타박에 “남자 같은 걸음걸이를 좀 바꿔보자”고 시작한 일이 모델. 무대에 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지만, 그는 자신이 ‘아줌마’라는 것을 당당히 내세우며 세상의 편견에 맞섰고 실력으로 인정받았다. 배우로 영역을 확장한 이후에도 그의 원칙은 불변이다. 미국 유학 시절 <물랑루즈>의 니콜 키드먼을 보면서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도 있을 것”이라고 여겨 연기를 받아들였던 그가 처음 받아든 역할은 트랜스젠더. 다른 여배우들이 기피하는 역할을 넙죽 받아들인 것에 대해 그는 “이미지를 벗지 못한다면 배우 생명은 끝 아닌가요. 스스로 시험해보고 싶었다”고 답한다.

얼마 뒤면 변정수를 스크린에서도 볼 수 있다. 전주영화제 개막작인 인권영화 프로젝트 <여섯개의 시선> 중 정재은 감독이 연출한 <그 남자의 사정(事情)>에서 성범죄자 신상공개 명단에 오른, 같은 아파트에 사는 남자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딸을 둔 엄마로 등장한다. “동생(변은정. 최근 변정민으로 이름을 바꿨다)이 영화는 선배라며 카메라 의식하지 마라, 표정 만들지 마라 등등 잔소리 하더라구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어요. 아, 그런데 전주영화제는 레드 카펫이 없다면서요?” 아직 발설할 수 없지만 로맨틱코미디와 코믹호러 한편씩 출연을 약속했다는 그는 언젠가 “<어둠 속의 댄서>의 비욕처럼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캐릭터를 연주해보고 싶다”고 했다. 글 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