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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 허우샤오시엔 특별전 [2]
이다혜 2003-04-11

그러나 아무래도 허우샤오시엔이 대만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루며 이전보다 원숙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비정성시>부터라고 봐야 한다. 이 영화와 이후 두 작품을 통해 그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나 근대화되어가면서 대만이 겪게 되는 고통 가득한 역사의 현장과 대면한다. 그렇지만 그는 참 놀랍게도 그 전환기의 역사를 마주하고도 사려 깊은 태도를 계속 유지한다. 예컨대 그는 역사의 격랑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그것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고통을 주는가를 큰 목소리로 떠들진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요동치는 역사의 한복판에 놓인 예인(藝人)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두 영화, <희몽인생>과 첸카이거의 <패왕별희>를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패왕별희>에서 역사는 보이지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힘으로 전면에 드러나면서 인물들의 운명과 관계들을 지극히 가시적으로 바꿔놓으며 감정적인 멜로드라마가 된다. 그러나 <희몽인생>에서 역사는 인형극의 달인인 주인공 리톈루의 삶에 끼어들긴 마찬가지이지만 역사라고 따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며 그렇게 한다. 그렇게 삶 위에 올라앉은 태도를 회피하면서 허우샤오시엔은 역사를 삶, 그저 흘러가는 삶 자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생략과 압축의 묘미를 활용해 미묘한 시적 정서가 묻어나게 하는 그런 화법을 가지고서 허우샤오시엔은 창의적인 이야기꾼/역사가라는 명칭 위에 시인이라는 명칭을 하나 더 살짝 올려놓을 수 있게 된다.

이쯤하면 허우샤오시엔에 대한 하나의 이미지가 얻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흔히 그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독특하게 정적(靜的)인 시선으로 과거(역사를 포함한)를 들여다보는 영화감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그를 특히 에드워드 양과 비교해 ‘모더니스트’가 아닌 ‘전통주의자’, 그리고 ‘시티 보이’가 아닌 ‘컨추리 보이’(여기서 ‘컨추리’는 과거 지향의 시간적 개념까지 갖는 것이다)라고 속단해버리기 쉽다. 그러나 이후의 행로를 봤을 때, 허우샤오시엔은 이런 말을 듣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단지 이런 식의 정의가 듣기 싫은 것이 아니라 예전에 자신이 이뤄놓았던 영화적 미덕들이 자신을 속박하는 일종의 구속적 시스템이 되기를 꺼리는 그런 시네아스트가 아닐까 싶다.

‘대만 현대사 3부작’을 마친 허우샤오시엔은 자신의 과거와의 단절을 기꺼이 꾀하는 영화에 착수했다. 그 다음 작품인 <남국재견>에 대해 그는 “내 예전 영화들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내려 애썼기 때문에 이 영화는 나에게 대단한 도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라고 말했는데, 이건 새로워지려는 그의 결단 같은 것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실제로도 <남국재견>은 허우샤오시엔의 ‘새로운 영화’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영화다. 무엇보다 여기엔 예전의 허우샤오시엔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비열한 거리’에서의 삶이 지극히 난폭한 리듬 속에 실려 전해진다. 한편으로 앞선 영화들에서 역사를 추적해가며 시간의 흐름을 통한 이동에 관심을 가졌던 허우샤오시엔은 여기에서 공간을 ‘현대’로 옮겨오며 공간 속에서의 이동에 관심을 갖는다(아주 상징적이게도 영화는 세 주인공들이 이동하는 것에서 시작해 그들의 이동이 저지될 때 갑자기 끝난다). 그리고는 현대의 삶이 영화의 주인공들을 아무 곳에도 데려다주지 못한다고 말하며 바로 그런 것이 현대의 대만에서 사는 것의 한 기본 조건은 아닐까, 하고 묻는다. 이처럼 자신의 이전 영화적 세계로부터 영역을 점차 넓혀나가는 허우샤오시엔의 행보는 다음 작품들인 <해상화>와 <밀레니엄 맘보>에서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영화 만들기는, 역사와 인생을 배우는 과정 >> 자신의 영화세계에서 하나의 전환점에 해당하는 <비정성시>를 만든 것에 대해 허우샤오시엔은 이 영화를 찍을 때에서야 40년 이상 대만에 살면서 처음으로 대만 역사를 공부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영화 만들기는 역사와 인생을 공부하는 과정이다”라고. 아마도 허우샤오시엔이라는 시네아스트에게 창조적 동력을 제공해주는 원천은 여기에서 보듯 배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와 의지가 아닐지 모르겠다. 영화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만 해도 그는 이후로 뻔한 상업영화만 만드는 감독 정도로 머물러 있을 가능성도 많았지만 동료들로부터의 배움을 통해 새로운 영화로 기꺼이 투신했다. 그리고 이후에 어쩌면 견고하다고 할 미학적 세계를 구축한 다음에는 영화에 대한 또 다른 배움을 향해 나아갔다. 80년대에 화려하게 등장해 그 미래를 궁금케 했던 ‘중국’(넓은 의미의) 감독들, 즉 허우샤오시엔, 첸카이거, 장이모를 현재의 좌표에 놓고 봤을 때, 어떤 식이든 타협만을 계속해 하강곡선의 필모그래피를 그려온 다른 두 사람에 비해 영화를 끊임없는 배움의 과정으로 본 허우샤오시엔의 위치가 월등히 높아 보이는 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 허우샤오시엔 감독 특별전 상영표(서울아트시네마) ]

[ 허우샤오시엔 감독 특별전 상영표(시네마테크부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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