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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애니메이션 <오세암> 미리 보기 [2]
황혜림 2003-04-18

길손이의 아이다움과 더불어, 엄마를 그리며 서로를 다독이는 남매의 우애는 담백한 이야기에 애틋한 체온을 불어넣는다. 석탑 위에 기어올라 새들에게 우렁차게 인사하던 길손이가 노래를 청하는 노스님의 말에 <섬집 아기>를 부를 때, 절 마루에 앉은 감이의 플래시백으로 슬그머니 전환하는 프레임. 아직 아기인 길손이를 업은 감이와 엄마의 정다운 한때에 대한 회상은 물론, 절에서 누나를 괴롭히는 마을 아이들에 맞서다가 되레 그 애들의 엄마에게 꾸중을 듣고 설움에 목이 메는 길손이, 제 무릎을 베고 잠든 동생을 쓰다듬으며 자란 모습을 볼 수 없어 몰래 눈물짓는 감이 등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살아가는 남매의 외로운 속내는 짐작을 벗어나지 않는데도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호소력이 있다.

한겨울 폭설로 관음암에 고립된 5살 동자가 부처가 됐다는 불교 설화를 토대로 한 원작이 좀더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면, 가족용을 표방한 애니메이션은 “아이의 순수”에 초점을 맞췄다고.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본다는 부처님처럼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 엄마를 보고 육신의 눈이 닫힌 누나에게 바깥 세상을 더 잘 알려주겠다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관음암에 올랐던 길손이는, 원작처럼 불교적인 해탈이라기보다는 엄마를 간절히 그리는 아이의 마음이 승화된 의미로서의 기적을 맞이한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되, ‘엄마’라는 아련한 그리움이 환기하는 잃어버린 동심 혹은 소박한 행복으로 잠시나마 메마른 가슴들을 적시고 싶다는 게 제작진의 바람이기 때문.

사실적인 묘사의 힘

느릿하고 아기자기한 극의 전개가 좀 밋밋하다 싶을 때도, 섬세하고 사실적인 묘사의 힘은 만만치 않다. 설악산과 강원도 사찰 등을 몇 차례 답사하고 카메라에 담아가며 그림으로 옮겨낸 가을숲과 눈덮인 산길, 처마의 곡선과 풍경, 비바람과 세월에 적당히 바랜 듯한 단청의 색감이나 사진으로 찍어 일일이 덧칠한 불상과 탱화까지 세심하게 살려낸 자연과 산사의 수려한 이미지에는 토속적인 정감이 어려 있다. 휘몰아치는 눈보라 장면이나 개울물 등 일부 배경에 입체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3D를 사용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원화와 동화까지의 수작업을 거친 뒤 채색부터 컴퓨터를 사용한 2D디지털의 푸근한 질감이 살아 있다.

<백구>나 <마리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오세암>의 인물 역시 일본이나 미국과 다른 한국적인 캐릭터에 대한 시도의 일환. 살짝 꼬리가 올라간 눈에 실제 또래들의 체형 비례를 고려해가며 그렸다는 길손이, 쪼그려 앉거나 뛰어다니는 모습 하나하나 감독의 5살배기 딸을 참조했다는 동작의 자연스러움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한 캐릭터를 고민한 산물이다. <백구>의 토종 진돗개에 이어 털에 눈이 파묻히다시피한 토종 삽살개를 모델로 한 바람이까지, 구석구석 우리 고유의 것을 애니메이션에 담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인다.

기획에 들어간 것은 2000년 7월이지만, 시나리오 각색과 콘티를 끝낸 뒤 실제작에 소요된 기간은 약 1년 반. <오세암>은 개봉예정이거나 제작 중인 국산장편애니메이션 가운데 가장 적은 15억원 순제작비로, 비교적 짧은 기간에 완성됐다. <아기 공룡 둘리> 이후 국산 장편애니메이션의 대중적 성공 사례가 없는 현실, 협소한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의 여건을 고려한 선택이었지만, 오히려 ‘규모가 적다’는 이유로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기도 했다고. 하지만 해외 OEM 작업을 기반으로 쌓아온 제작노하우와 한국적인 가족용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창작의도가 맞물린 <오세암>은 소박하지만 훈훈한 동화와 안정된 만듦새로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같은 날 개봉예정인 <모노노케 히메>와의 경쟁은 적잖은 부담이 되겠지만, “마음을 다해 바라면 만날 수 있다”는 <오세암>의 동심이 내건 주문이 관객에게도 전해지길 기대하고 싶다. 황혜림 blauex@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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