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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알모도바르 셀프 인터뷰 [2]
김혜리 2003-04-18

<애인이 줄었어요> 부분은, 눈가리개

페드로: 영화 주요 스토리라인에서 갑자기 빠져나와 우회한 까닭이 무엇인가?

알모도바르: 겉보기에 우회로처럼 보일 뿐이다. 왜냐하면 베니그노와 알리시아의 이야기는 <애인이 줄었어요>가 나오는 7분 동안 정지하는 게 아니라 무성영화와 융합되기 때문이다. 무성영화는 하나의 가리개다.

페드로: 뭘 가리는?

알모도바르: 베니그노가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코마 상태의 알리샤에게 한 일을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디테일을 감추고 본질만 보여주는 은유로서) <애인이 줄었어요>를 넣었다.

페드로: 그런 걸 가리켜 ‘조작’이라고들 하지 않나?

알모도바르: 내러티브상의 선택이었고 간단치 않은 선택이었다. 그래서 결과가 더욱 자랑스럽다.

페드로: 어쨌거나 당신 영화 속 인물들이 다른 영화를 빌려 자기를 설명하는 게 처음은 아니다. <하이힐>만 해도….

알모도바르: 맞다. 딸 빅토리아 아브릴은 어머니 마리사 파레데스에게, 엄마를 향한 애증을 설명하기 위해 <가을 소나타>의 한 장면을 외친다. <마타도르>에서 쫓기는 여자와 쫓는 남자는 <백주의 결투>가 상영되는 극장으로 뛰어들어가는데 그때 스크린에 영사되는 남녀가 서로를 죽이는 장면은 두 주인공이 앞으로 맞이할 결말과 똑같다. <라이브 플래쉬>에서도 리베르토 라발과 프란체스카 네리가 싸울 때 텔레비전 화면에 루이스 브뉘엘의 <범죄의 리허설>이 나온다. ’범죄의 리허설’은 그 장면의 제목이 될 수도 있다. <범죄의 리허설>에는 다리가 없어진 마네킹이 나오고 <라이브 플래쉬>에서는 하비에르 바르뎀이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다. <범죄의 리허설>에선 마네킹이 오븐에서 불타는데 <라이브 플래쉬>에서는 앙헬라 몰리나가 리베르토로부터 결별을 통고받는 순간 불길에 갇힌다. 우연히도 몇년 뒤 앙헬라 몰리나는 불타는 차 안에서 사망했다. 나한테 영화는 사적 경험의 일부이기에 나는 영화를 경험처럼 이용한다. 그러나 인용된 영화의 감독들에게 오마주를 바치거나 모방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것은 시나리오로 흡수된 요소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는 나의 개인적 기억과도 관련있다. 포럼이나 영화에 대한 전형적인 토론(난 그런 자리를 매우 싫어하는데) 얘기가 아니다. 어렸을 때 나는 누이들에게 같이 봤던 영화 얘기를 다시 들려주곤 했다. 내 기억은 흥에 겨워 훨훨 날개를 폈고 나는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각색을 했는데, 누이들은 원래의 영화보다 나의 불확실하고 착란적인 버전을 더 좋아했다. 테라스에 화로를 놓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바느질하는 누이동생들에게 내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 시간은 평소보다 느리게 흘렀다.

페드로: 손자, 손녀에게 영화를 이야기로 들려주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나?

알모도바르: 모르겠다. 손자를 보려면 이미 좀 늦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난 더이상 영화를 말로 옮기지 않는다. 나는 그런 기술을 잃어버렸고, 오로지 인터뷰에서 강요받을 때만 영화를 이야기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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