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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들 [4]
김혜리 2003-04-18

내겐 너무 낙천적인 그녀

<키카>(1993)의 키카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명랑한 키카는 방송사에서 만난 미국 소설가 니콜라스를 통해 그의 의붓아들 라몽과 사귄다. 관음증과 기면 발작증이 있는 사진작가 라몽은 어머니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니콜라스와도 관계를 지속하던 키카는 어느 날 감옥에서 탈출한 색광 파블로에게 추행당한다. 라몽의 옛 애인이자 선정적 뉴스쇼의 VJ인 안드레아는 키카의 강간장면을 포착함과 동시에 다른 범죄의 냄새를 맡는다.

<키카>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장 폴 고티에의 기상천외한 가죽옷을 입고 카메라를 머리에 매단 빅토리아 아브릴은 기억한다. 하지만 아브릴의 극중 이름은 안드레아다. 영화의 타이틀 롤 키카는 베로니카 포르케가 연기하는 흔한 외모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그러나 평범한 그녀는 만인의 이기심과 폭력성을 자극하는 저주라도 받은 것 같다. 정사장면을 찍는 사진작가 라몽, 아들 애인과 밀회하는 소설가 니콜라스, 키카를 속이고 니콜라스와 밀회하는 친구 암파로, 강간범 파블로, 강간장면을 찍어 방송한 안드레아까지 키카 주변의 모든 사람이 그녀를 착취한다.

키카의 주된 장점은 도넛처럼 텅 비어 있다는 것이다. 천재지변이 나도 여자의 최고 무기라 믿는 마스카라를 빼먹지 않는 그녀는, 다정다감하고 수다스럽고 놀라울 만큼 단순하고 섹시하며 기가 막히게 낙천적이다. 악명 높은 강간장면은 대표적 예증. 색정광 탈주범이 몇 시간이고 그녀의 몸에 매달려 있는 동안 키카는 연신 대화를 시도한다. “영화하고 현실이 같아요? 현실에선 코도 풀고 화장실도 가고 싶다구요. 예의도 없어요? 콘돔은 써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러지 말고 내가 도와줄게요. 자유주의자라서 도움이 될 거예요.” 희화화도 이쯤 되면 키카가 초인처럼 보이기 시작하고 남성 관객은 불편해진다. 이건 강간 따위가 사람을 절대 다치게 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알모도바르의 판타지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키카는 잘생긴 히치하이커를 태운다. “여태 당신처럼 의지할 남자를 찾았어요”라고 반색하며. 하지만 관객은 안다. 결국 이 남자도 키카에게 의지하게 되리라는 걸.

어머니, 그 궁극의 여성성에 바친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의 마누엘라

소중한 아들이 16살 생일날 교통사고로 죽은 뒤 깊은 슬픔에 잠긴 마누엘라는 아들이 늘 알고 싶어했던 생부 롤라와 만난 바르셀로나로 돌아간다. 트랜스섹슈얼인 옛 친구 아그라도, 롤라의 아이를 임신하고 AIDS에 걸린 수녀, 아들에게 죽음의 동기를 제공한 배우 우마 로소가 마누엘라의 새로운 생활에 얽혀들면서 그녀는 또 다른 생의 의지를 얻는다.

어느 감독보다 많은 트랜스섹슈얼과 여장남자를 영화마다 끌어들이지만, 알모도바르는 게이의 삶을 프로모션한다기보다 지고한 여성성을 영원히 동경하는 것처럼 보인다. 격렬하기로 이름난 알모도바르의 섹스신은 대부분 이성애자들의 침대에서 벌어진다. 알모도바르의 걸작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의 마누엘라는 여성성에 대한 알모도바르의 매혹이 결정된 인물이다. 그녀가 알모도바르 전작의 흑장미 같은 여인들 옆에 서 있다면 아마 우리는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할 지도 모른다. 착하고 슬기로운 아들을 가슴에 묻은 마누엘라의 이목구비는 모난 데 없이 잔잔히 일렁인다. 이마에 내려앉은 부드러운 주름은 장기기증을 담당하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내 살처럼 익숙해진 고통과 슬픔을 여미고 있으나, 아들의 상실은 그녀의 얼굴에 지울 수 없는 그늘을 다시 음각했다.

젊은 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연기한 스텔라의 대사를 지금도 생생히 암기하는 마누엘라는 이 세상의 모든 스탠리와 블랑쉬들을 거두고 위무하고 그 틈에서 아기를 키우는 사람이다. 마누엘라의 아들은 <이브의 모든 것>을 <벌거벗은 이브>라고 번역한 TV를 보며 불만스러워하지만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은 ‘벌거벗은 어머니’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어머니 마누엘라는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지만 사랑은 아들의 죽음을 막지는 못한다. 친구들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지만 병마와 과오의 독을 씻어내지 못한다. 사랑은 강하지만 신의 어긋난 사랑을 이길 순 없다. 알모도바르는 그처럼 무기력한 모성의 결정체 마누엘라에게 한없이 정다운 러브레터를 보낸다.

무작정 기다렸던 남자

<그녀에게>(2002)의 베니그노

간호사 베니그노는 멀리서 지켜보던 알리샤가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자 매일 그녀에게 말을 걸며 행복하게 곁을 지킨다. 글을 쓰는 남자 마르코는 실연 뒤 새로운 사랑을 가꾼 투우사 리디아가 소에 받혀 코마에 빠지자 소통의 단절을 못 견뎌한다. 멀리 여행을 떠났던 마르코는 리디아의 부음과 베니그노가 강간죄로 교도소에 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녀에게>의 제목은 여성을 앞세우고 있지만 ‘그녀’에 붙은 조사는 여격(與格)이다. 그래서 영화의 주체는 두 남자다. 정적이고 말많은 베니그노와 말없고 동적인 마르코가, 따로 또 같이 남기는 진한 인상에 비하면 남자들이 사랑하는 리디아와 알리샤의 존재감은 희박하다. 그렇지만 베니그노는 여성의 영혼을 가진 남자다(<그녀에게>의 무용가는 전쟁터에서 남자들이 죽으면 여자 무용수들이 그들의 육신에서 빠져나온 영혼을 연기하는 공연을 묘사한다). 철들고 내내 어머니 수발만 들며 살아온 그는, 짝사랑하던 알리샤가 식물인간이 되자 그녀의 침대 곁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4년을 보낸다. 베니그노의 마시멜로 같은 얼굴과 봉제인형 같은 몸매, 캐러멜처럼 느긋한 목소리는 그가 가진 정신성의 일부다. 무작정 기다리고 간호하는 남자는 영화사상 악의 세력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는 여걸보다 드물었다. 도입부의 피나 바우쉬의 공연에서 몽유병 환자처럼 눈을 감고 맨발로 방 안을 헤매는 여인을 끝없이 따르며 그녀가 걸려 넘어질 가구를 치우는 고단한 사내는 바로 베니그노의 숙명이다.

영화에 나오지 않지만 알모도바르의 상상을 따라 과거로 돌아가보자. 베니그노의 어머니는 마흔살이 됐을 때, 남편이 자기를 떠났고 미모가 시들기 시작했음을 발견했다. 그녀는 침대 속에 은둔했다. 못생겼다고 정을 주지 않았던 아들 베니그노가 어머니의 생명을 부지한다. 엄마가 추해지는 걸 원치 않았던 베니그노는 간호학에다 미용술까지 배워 엄마를 씻기고 꾸몄다. 인생을 가지고 달리 하고픈 일은 없었다. 20년 뒤 그의 어머니는 문득 물었다. “엄마가 죽으면 뭐할래?” 베니그노는 깜짝 놀라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자살할 거예요.”어머니는 동의하지 않았고 끔찍한 세상이지만 그를 매료하는 것이 있을 거라고 충고했다. 착한 아들은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걷었다. 거기에 알리샤가 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춤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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