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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38편 프리뷰 [2]
심은하 2003-04-18

정치·폭력·섹스, 피폐해지는 영혼들

추천작 Part I - 심야가 좋다 : 하니 스스무의 밤

하니 스스무는 60년대 일본 뉴웨이브의 작가로 분류된다. 오시마 나기사 등이 주도한 일본 뉴웨이브는 프랑스의 누벨바그와 마찬가지로 정치, 폭력, 섹스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열린 형식의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냈다. 좌파 역사학자였던 아버지와 자유주의적인 교육자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하니 스스무는 사회와 학교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허무는 영화를 만들었다. 또한 하니 스스무의 영화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피폐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폭로하면서 아프리카로 대표되는 오지의 자연에서 하나의 대안을 찾았다.

대학 졸업 뒤 공동통신사에 입사하여 신문기자로 일했던 하니 스스무는 1950년 이와나미 영화제작소 창립에 참여한다. 52년 후생성이 예산을 댄 <생활과 물>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연출을 시작했다. 55년에 만든 <교실의 아이들>은 교육영화의 정형을 깬 작품으로 평가된다. 하니 스스무는 자연스러운 아이들의 모습을 잡기 위해 카메라를 숨겨 촬영하는 것을 거부하고, 아이들이 카메라와 스탭을 의식하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직접 촬영을 했다. 57년작인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은 극장에서 개봉을 했고, 로버트 플래어티상을 받기도 했다.

하니 스스무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 영화이론가로도 활약했다. <연기하지 않는 주인공들> <카메라와 마이크의 논리> 등을 발표하면서 다큐멘터리적 방법의 가능성에 대해서 역설하던 하니 스스무는 이론을 실천에 옮긴다. 첫 번째 장편 극영화인 <불량소년>(1960)은 다큐멘터리의 주요 소재였던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이어나가는 한편 다큐멘터리적 방법인 비전문배우와 즉흥적인 대사와 장면 등을 도입하여 새로운 영화를 만들었다. 현대 여성의 불안한 삶을 그린 <완전한 삶>(1962)과 <그녀와 그>(1963)를 만든 하니 스스무는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오지로 향한다.

<브와나 토시의 노래>(1965)는 탄자니아에 주택을 짓기 위해서 간 일본인이 원주민을 고용하면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상황을 그리고 있다. 현지의 원주민들을 배우로 출연시킨 <브와나 토시의 노래>는 할리우드가 찍은 아프리카영화와는 전혀 다른 아프리카의 모습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 현대인의 소외를 그린 <첫사랑-지옥편>(1968), 뮤지컬코미디인 <핑키와 키라즈의 사랑의 대모험>(1972), 여름방학에 8mm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떠난 여고생의 이야기 <오전의 시간>(1972)을 거쳐 1974년 마지막 극영화인 <아프리카 이야기>를 만든다. 오지의 삼림지대에 불시착한 청년과 숲에 살고 있는 노인의 손녀와의 사랑 이야기다. 동물의 생태를 제대로 그리기 위해 동물영화 전문가인 사이먼 트레버가 촬영과 연출을 함께했다. 이후 TV용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저술활동에 몰두하여 <인간적 영상론> 등을 발표했다. 하니 스스무는 뉴웨이브의 대표 주자답게 내용과 형식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분명하게 개척한 지성파 감독으로 평가된다.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불량소년>(Bad Boys)

하니 스스무의 장편 극영화 데뷔작. 극영화를 다큐멘터리적 수법으로 찍는 하니 스스무의 영화이론이 처음으로 적용되어 훌륭한 성과를 낳았다. 기존의 갇힌 형식과 내용에서 탈피하려 했던 프랑스 뉴웨이브와의 연관성도 많이 지적된다. 소년원 입소자들의 글 모음집인 <날지 않는 날개>를 각색한 <불량소년>은 기성 배우 대신에 아마추어를 기용하고, 때로 배우가 의식하지 않는 상황도 촬영하면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18살의 아사이는 금은방을 털다가 소년원으로 향한다. 세탁반에 배정된 아사이는 불량소년들 사이의 서열을 혐오하며 정면으로 도전한다. 하니 스스무는 아사이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과거의 모습을 교차시키고, 독백을 집어넣음으로써 한 소년의 삶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단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에 책임을 묻는 하니 스스무의 시선은 엄정하다. ‘어른이 되어라’는 친구의 조언을 진지하게 듣던 아사이는 소년원을 출소하다가 뒤돌아서서는 우렁차게 외친다. ‘대단히 고맙습니다!’라고. 그 장면의 무게는 꽤 묵중하다.

<그녀와 그>(She and He)

문명사회의 시스템은 어떻게 인간을 바꿔놓는가. 주부인 나오코는 아파트 단지 건너편에 살고 있는 빈민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눈먼 소녀를 키우면서 늘 검은 개를 데리고 쓰레기를 모으러 다니는 남자를 본 나오코는 과거의 기억을 되살린다. 그 남자는 도쿄대를 나오고, 고급 관료인 남편의 대학 친구였다. 왜 그 남자는 과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하게’ 살아가는가. <그녀와 그>는 막 보급되기 시작한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한다. 나오코가 친절하게 대하던 세탁소의 청년은, 도쿄 사람들은 인간미가 없다고 말한다. 나오코는 언제나 예의바르면서도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원한다. 그러나 단지 주민들은 오로지 자신들만의 생활을 꾸리면서 빈민촌 사이에 담을 쌓는다. 빈민촌에 불이 난 것을 본 남편은 심드렁하게 “이 아파트는 방화장치가 잘되어 있느니 괜찮아”라고 말한다. 하니 스스무는 새로운 생활형태의 불안과 위기감을 영상의 독특한 질감으로 표현한다. 기존의 극영화와는 다른 감촉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직업적인 사진가에게 촬영을 맡겼을 정도다. 나오코와 남자가 사라진 검은 개를 찾아 단지 내를 헤매고 다니는 장면은 반드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상생활 속의 작은 파란들을 순도 높은 영상으로 결실을 맺은 야심작”이다.

<첫사랑-지옥편>(Nanami, First Love)

저예산으로 예술영화를 만들기 위하여 설립된 ATG에서 제작한 영화. 가난한 10대 소년소녀의 성과 사랑을 시네마 베리테 수법으로 잡아내면서도, 철저하게 인공적인 환상의 세계 속에 빠져드는 그들의 모습을 날카롭게 담아냈다. 7살에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재혼하자 슌은 보호원에 들어간다. 금세공을 하는 남자에게 입양된 슌은 학대를 받으며 성장한다. 어느 날 슌은 나나미라는 소녀를 알게 된다. 집단 취직으로 상경했던 나나미는 누드모델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 두 사람은 허름한 호텔에서 만나 사랑을 하지만, 슌은 무기력하고 안정을 찾지 못한다. 성은 오히려 그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하니 스스무는 슌의 과거와 현실을 교차하고, 그로테스크한 현실을 인터뷰, 8mm 필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슌의 뒤틀린 욕망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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