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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서크 감독의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감독 더글러스 서크 출연 록 허드슨 EBS 4월27일(일) 낮 2시

어느 시사회장에서 토드 헤인즈 감독의 <파 프롬 헤븐>(2002)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영락없는 더글러스 서크 감독 영화였던 것이다. 부분적으로 대사까지 똑같았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토드 헤인즈는, 왜 굳이 자신의 영화를 1950년대 영화처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심지어는 배우 연기도 50년대 스타일이었다. 서크 감독의 영화는 서구 멜로드라마 장르에서 절대적인 고전으로 대접받는다.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은 국내에서 <순정에 맺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적 있다. 이른바 ‘할리우드 바로크’라는 용어로 설명되는 더글러스 서크의 멜로드라마 중에서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은, <바람에 쓴 편지>와 <슬픔은 그대 가슴에>와 함께 영화사적 걸작으로 꼽혀왔다.

미망인 캐리 스콧은 정원사 론 커비에게 사랑을 느낀다. 다른 남성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캐리는 론을 택한다. 이 연애사건은 보수적인 동네 사람들에게 질타의 대상이 되고 캐리의 자녀 역시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녀들의 반대가 극심해지자 캐리는 론과 헤어질 결심을 한다. 무기력한 생활을 하게 된 캐리는 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지만 그에게 다가설 용기가 없다.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의 무게에 맞서는 동시에 외부 사회의 무게에 맞서는 것.” 어느 소설가의 멘트다.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의 커플은 이 언급이 어떻게 구체성을 띠게 되는지 예증하고 있다. 부유한 미망인 캐리는 외롭다. 넓은 집안은 휘황한 장식물이 버텨 서 있고 보석이 그녀 주변에 널려 있다. 그럼에도 보수적인 분위기는 그녀 가족과 영혼을 잠식하고 있다. 구원자로서 등장하는 것이 론 커비다. 록 허드슨이 연기하는 이 캐릭터는 미망인의 삶에 등불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그렇지만 계층적 차이가 문제로 떠오른다. 동네 사람들은 론의 직업을 깔보고 수군거린다. 이것은 ‘아메리칸 드림’으로 통칭되었던 미국적 이상이 추악한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더글러스 서크 영화를 설명하는 데 ‘스타일’의 개념은 핵심적이다. 그의 영화에서 모든 요소, 다시 말해 음악과 조명, 의상과 연기에 이르기까지 감독의 인장이 새겨져 있음은 놀랄 만하다. “이것은 서크의 영화다!”라고 공언하는 듯하다.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에선 특히, 캐리라는 미망인이 살고 있는 저택을 유심히 볼 만하다. 이곳은 눈이 부실 만큼 모든 것이 빛난다. 벽들은 거울로 모든 광선을 반사시킨다. '‘유리의 방’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그렇지만 여기 사는 여인은 공허하고 황폐하다. 서크 감독은 캐리의 삶에 대해 “스스로 선택해 살고 있는 바로 그 사회에서 감옥살이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은 용감한, 그리고 상실감을 극복하는 어느 위대한 사랑에 관한 영화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