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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드 게레스탄트,드랙킹 소재 <비너스 보이즈> 배우
심지현 2003-04-23

여자이기전 인간인 나를 사랑한다

드레드(DRED(Daring Reality Every Day), 혹은 밀드레드) 게레스탄트(31)가 한국에서 가장 먼저 익힌 단어는 ‘언니’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드랙킹(남장 여자)쇼를 펼친 지난 4월15일 서울 동숭동의 한 라이브 카페에서 가장 많이 연호된 단어이기도 하다. 수행 통역관이 풀이해준 ‘sis’라는 의미보다 그 이상의 환영, 그리고 충격을 그녀는 몸으로 이해했을까. 흔히 남자들의 여장 공연으로 알려져 있는 드랙퀸쇼에 비해 드랙킹은 아직 우리에게 생소한 놀이이자 문화며, 발언 방식이다. 자칫 남성이 되기를, 혹은 남성의 성기를 동경하는 여자들의 그야말로 ‘쌩쑈’로 비쳐질 수 있는 드랙킹쇼는, 그 함의를 떠나 그녀 드레드 혹은 밀드레드 본인의 매력만큼이나 아찔하고 도발적이며 즐거운 것이었다. 또한 정치적이었다. 1960년대 이후 서구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결과로 촉발된 이와 같은 가면놀이는, 실은 여성과 남성으로 확고히 구분된 경계를 허무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서, 그것을 강팍한 정치주장이 아닌 하나의 축제로 승화시킨 것이다. “what is a natural woman, what is a natural man?”이란 질문으로 시작된 드레드의 쇼는 결국 “love my self!!”를 함께 외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그녀가 하고 싶은 얘기란, 그녀가 보여주는 남장쇼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자 ‘주문’인 셈이다.

1972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그녀는 12살이 되도록 사람 앞에 서길 두려워하는 수줍음 많고 겁 많은 소녀였다. 서인도제도 아이티공화국 출신의 부모님이 물려준 거무튀튀한 피부와 툭 솟아오른 앞니는 거울 앞에 설 때마다 ‘you’re so ugly’를 읊조리게 만들었다. 흑인 남성들의 포주 같은 말투와 흑인 여성들의 직업군(비서 혹은 가정부 또는 창녀)은 그녀의 앞길을 비추는 표독스런 이정표와 같았다. 당신이 여자고, 게다가 유색인종이라면 당신에게서 나올 모든 말과 행동은 이미 정치적인 것이라 했던가. 스물셋이 되던 해 크리스마스 무렵 뉴욕의 어느 바에서 경험한 (매우 정치적인, 또한 매우 신나는) 드랙킹쇼는, 그 속에서 평범하게만 보이던 그녀들이 벌이는 통쾌한 비아냥과 강한 에너지, 자유스런 표현들은, 그녀의 삶을 두번쯤 전복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날 저녁 그녀는 거울 앞에서 아이라이너로 수염을 그려넣고, 모자를 삐딱하게 눌러쓴 채 자신에게 속삭였다. ‘음, 멋진데….’(실제 그녀의 남장 모습은 퍼프 대디와 웨슬리 스나입스, 크리스 록과 스파이크 리를 살짝 섞어놓은 듯하다.) “내 안의 남성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순간 여성으로서의 내가 더욱 강하게 자각됐어요. 여자 혹은 남자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이구나, 하는 느낌. 여자라서 할 수 없다던 일들, 내 안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능력, 그래서 남자에게 기대곤 하던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그녀는 그것을 아담과 이브의 새로운 탄생이라고 부른다. 남성 심벌이라고 생각했던, 불룩한 팬티 속에 들어 있던, 사과를 꺼내 깨무는 모습은 그것을 상징하기 위함이라고. 그녀는 현재 드랙킹을 소재로 한 <비너스 보이즈>란 작품으로 서울여성영화제에 참가 중인데, 조만간 그녀의 성장과정을 다룬 자서전과 장편다큐멘터리로 다시 인사할 예정이다(www.dredking.com, www.venusboyz.com).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조석환 sky010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