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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 포 콜럼바인>과 마이클 무어 [2]
이다혜 2003-04-25

‘금지’와 ‘압수’의 일생

그런 환경이었으니, 마이클 무어가 어린 시절부터 반골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마이클 무어는 어린 시절부터 곳곳에서 ‘금지’와 ‘압수’의 수난을 당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든 학교 신문은 압수당했고, 중학교 2학년 때 쓴 크리스마스 연극 대본은 공연 금지를 당했다. 어떤 내용일지는 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발표 시간에는 지역 내 환경오염 현황을 슬라이드쇼로 만들었고, 고교를 졸업하기 직전 18살의 나이로 출마하여 지방교육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학교 시절부터 마이클 무어는 자신이 알아낸 것을 글로 쓰고 강력하게 타인에게 주장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무어는 대학을 나온 뒤 신문기자로 일하면서도 사사건건 부딪쳤고, 주간지 <미시간 보이스>를 직접 발간하기도 했다.

1986년 마이클 무어는 샌프란시스코의 정치 잡지인 <마더 존스>의 편집진으로 참여하지만, 5개월 뒤 ‘사상적 이유’로 해고된다. 마이클 무어는 누구의 밑에서, 타인의 지시를 받으며 일할 타입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밀고 나간다. 귀향한 마이클 무어는 자신의 고향인 플린트에서 출발한 제너럴 모터스가 속속 공장을 폐쇄하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무려 3만여명 이상의 실업자를 양산한 제너럴 모터스의 공장 폐업은 플린트 전체의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마이클 무어는 제너럴 모터스의 회장인 로저 스미스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지만 번번이 거절당한다. 그러자 마이클 무어는 거절당하는 과정 자체를 영화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마이클 무어는 다큐멘터리 만드는 방법을 속성으로 익히고, 빙고 게임을 주최하고 집을 판 돈으로 제작비를 마련한다.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나간다. 동네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폐허로 변해버린 마을 풍경을 담는다. 마이클 무어의 전략은 <로저와 나>부터 확고하다. 문제의 핵심에 가까이 있는 유명 인사에게 끈질기게 인터뷰를 요청하고, 성사되면 도발적인 질문으로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인터뷰 대상자가 뭔가 엄청난 실수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일상적인 이야기나 늘 하던 말을 되풀이하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관객은 웃음을 터트리며 조롱하게 된다. 폴린 카엘은 <로저와 나>를 보고 마이클 무어를 ‘되받아치기’형 예술가라고 평가했다.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무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캅스>의 프로듀서 딕 헐란을 찾아간다. 그에게 차라리 ‘기업경찰’을 만들라고 한다. 기업의 부패를 고발하고 사장을 체포하는 장면을 찍으라고. 딕 헐란은 거기에 대중이 좋아하는 추격장면이 있겠냐고 말한다. 딕 헐란은 원론적으로 ‘재미’를 말하지만, 무어의 카메라는 그를 한심한 인간으로 만들어버린다.

사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는 100%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로저와 나>가 만들어졌을 때에도 논란이 많았다. 플린트와 제너럴 모터스의 관계가 잘못 그려졌다는 비판이 있었고, 당시는 이미 로저 스미스가 회사 실무에서 손을 뗀 뒤라고도 했다.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도 그런 비난이 있다. 경제지 <포브스>는 마이클 무어가 은행에서 계좌를 만든 뒤 1시간 만에 총을 받아들고 나오는 장면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신원조회를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일 정도가 걸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무어는 1시간 만에 총을 들고 나온다. 그건 일종의 조작이라고 할 수 있다. 총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어는 그 시간을 10일에서 1시간으로 단축시켰다. 더욱 극적으로 만들기 위하여.

그렇다면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는 거짓일까? 혹자는 <로저와 나>를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다큐코미디’라고 불렀다. 무어의 다큐멘터리는 ‘에세이영화, 선동영화, 퍼포먼스 아트’ 등 다앙한 개념으로 분석되었다. <로저와 나>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에롤 모리스의 <더 씬 블루 라인>과 함께 새로운 다큐멘터리 논쟁을 불러왔다. 에롤 모리스와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는 모두 사적인 목소리에 깊게 침윤되어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하여 다큐멘터리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대상에 근접하여 그들의 일상을 포착하고 기록하면서 진실에 근접해가는 통상의 다큐멘터리와는 달리 자신의 주장과 의문을 풀기 위하여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 물어보고, 답을 들으면서 조금씩 인식을 확장시켜 나간다. 컬럼바인고등학교의 총기난사와 무기제조회사인 록히드 마틴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을까? 마이클 무어는 단지 같은 지역에 있다는 이유로 록히드 마틴사를 찾아가지만, 결국은 관련을 끌어낸다. 이어지는 인터뷰와 자료들을 이용하여 미국 내의 컬럼바인 사건이 어떻게 세계적인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인지를 그려내는 것이다. 그 시선은 무척이나 정교하고 치밀하다. 사실을 변형시켜서 극적인 재미를 주기는 하지만, 마이클 무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어디까지나 진실이다.

‘웃기는’ 다큐멘터리, 끔찍한 진실

마이클 무어는 “인터뷰를 할 때, 내가 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하나를 고민한다. 미디어는 너무 게으르다”고 말한다. 미디어가 해야 할 일을 자신이 하는 것에 대한 회의, 아니 분노다. 무어의 다큐멘터리가 웃음으로 가득한 것은, 그런 역설이다. 그는 대중에게 날마다 엄청난 정보를 퍼붓는 매스미디어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자본가가 소유하고 있는 매스미디어는 태연하게, 그릇되거나 변형된 정보를 대중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마이클 무어는 아주 작은 개인의 카메라와 펜이 있을 뿐이다. 마이클 무어는 자신의 무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 때로 그것이 선정적인 표현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가 ‘키치와 자유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는 <택시 드라이버>처럼, 마이클 무어는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악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거리낌없이 휘둘러댄다.

▶<볼링 포 콜럼바인>과 마이클 무어 [1]

▶<볼링 포 콜럼바인>과 마이클 무어 [2]

▶<볼링 포 콜럼바인>과 마이클 무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