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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 포 콜럼바인>과 마이클 무어 [1]
이다혜 2003-04-25

부시를 엿먹인 “꼴통” 반골 아저씨

카메라와 펜으로 세상과 맞서 싸우는 다큐멘터리스트 마이클 무어 스토리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마이클 무어는 놀라운 인간이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직설적인 발언도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우아하고 고상한 자리에서, 너무나 직설적인 언어로 ‘부시, 부끄러운 줄 아시오’라고 말할 수 있는 인간은 많지 않다. 그건 마이클 무어의 평소 하던 행동 그대로다. 무어는 결코 참지 않는다. 무어는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시상식장에서 환호와 야유가 함께 쏟아진 것처럼, 마이클 무어는 논쟁과 대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그가 건방지고 무례하다고 비난한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때로 그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애초부터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고와 태도를 비판하는 사람이다. 대통령이건, 찰턴 헤스턴이건 마이클 무어는 고개를 뻗대고 정면에서 치받는다. 그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본질에 파고들기를 원하고, 자신의 영화와 책을 통해서 그가 찾아낸 것들을 보여준다.

소란을 몰고다니는 사나이

마이클 무어의 화려한 경력과 성취는 그가 단지 떠버리가 아님을 보여준다. 아카데미에서 다큐멘터리 부문상을 수상한 <볼링 포 콜럼바인>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첫 번째 다큐멘터리다. 심사위원들은 특별히 55주년 특별상을 만들어서, <볼링 포 콜럼바인>에 시상을 했다. 그건 마이클 무어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독특한 다큐멘터리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상이다. <볼링 포 콜럼바인>은 미 작가조합(Writers Guild of America, WGA)에서 주는 각본상 후보에도 올랐다. 다큐멘터리로는 처음 후보에 오른 것이다. 또한 <볼링 포 콜럼바인>은 전세계에서 4천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다큐멘터리 역사상 가장 많은 흥행수익을 올렸다.

마이클 무어의 활동영역은 다큐멘터리만이 아니다. 국내에도 번역된 <멍청한 백인들>(Stupid White Men)은 2002년 3월13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뒤 40주 이상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 있었고, 지난해 비소설 부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지금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TV프로그램인 과 <끔찍한 진실>은 4년 연속 에미상 후보에 올랐고, 마침내 94년 <TV 네이션>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a comedic investigate magazine show'를 표방한 <TV 네이션>은 뉴욕의 택시가 정말로 흑인을 잘 안 태우는가를 직접 실험하는가 하면, NAFTA는 단지 미국 기업이 멕시코 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한 기회일 뿐임을 여러 자료를 활용하여 증명해준다. 그 밖에 마이클 무어는 나이키의 제3세계 노동착취를 고발한 <빅 원>과 미국이 캐나다를 침공한다는 황당무계한 코미디 <캐나디언 베이컨>을 만들었다. <캐나디언 베이컨>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만큼 괴상한 정치풍자영화’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니 적들이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다. 무어의 반대자들은 ‘무어 워치’란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놓고 마이클 무어의 잘못과 실수, 악행을 고발하자고 선동하고 있다. 노동자의 편이라는 마이클 무어가 뉴욕에서 100만달러가 넘는 ‘저택’에 살고 있다며 비난한 것도 그들이다. 마이클 무어는 우군이라고 할 자유주의자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한다. 유엔의 코피 아난 사무총장에게 부시를 하야시키기 위한 유엔군 파병을 요청하는 공개 편지를 보낸 것은 신랄한 농담이고 정치적 제스처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지난 미국 대통령선거 막판에는, 랠프 네이더를 지지하기 위한 집회에서 부시와 고어가 막상막하이니 고어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비난을 받기도 했다. 때로는 마이클 무어가 직접 소동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2000년 뉴욕에서는,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외치는 록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Sleep now in the fire> 뮤직비디오를 찍다가 경찰에 연행되는 바람에 격분한 RATM과 팬들이 소란을 일으켰다. 그 여파로 그날 하루 뉴욕 주식시장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마이클 무어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논란이 일어난다. 아니 마이클 무어는 논란이 일어나는 곳을 언제나 찾아간다. 그런데 묘하다. 사회비판 다큐멘터리의 대가인 마이클 무어가 태어난 곳은, 하필이면 미시간의 플린트다. <로저와 나>의 무대인 플린트는 미국의 자동차 회사 제너럴 모터스가 시작된 곳이며, 80년대 경제 침체로 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으며 급격하게 몰락한 도시다. 1954년 4월23일 태어나 플린트에서 자라난 마이클 무어가 그 모든 영욕을 함께 겪었을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무어는 <로저와 나>를 만들었다. 또 있다. <볼링 포 콜럼바인> 후반부에 6살의 소년이 동급생 소녀를 총으로 쏴 죽인 끔찍한 사건이 나온다. 그 사건이 벌어진 곳은 바로, 플린트다. 위대한 예술가는 언제나 시대의 중심에 서 있다고 한다. 시대를 뒤흔든 사건을 직접 지켜보며 그것을 예술로 형상화시킨다고 한다. 마이클 무어가 그런 예술가인지는 모르겠지만, 희한하게도 마이클 무어 주변을 둘러보면 미국의 끔찍한 ‘현대사’가 그대로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

▶<볼링 포 콜럼바인>과 마이클 무어 [1]

▶<볼링 포 콜럼바인>과 마이클 무어 [2]

▶<볼링 포 콜럼바인>과 마이클 무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