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미리보는 <엑스맨2> X - Men2 [1]
김혜리 2003-04-25

<엑스맨2> LA 시사기

돌연변이들의 고뇌와 반란, 그리고 진화

2000년 여름 블록버스터 레이스에서 <엑스맨>은 영광의 다크호스였다. 알록달록한 스판덱스를 입은 영웅의 발차기를 예상했던 우리의 허를 찌른 이 마블 코믹스 영화는 액션블록버스터 무리 가운데 우뚝했다. 3년만에 1편이 착륙한 자리에서 2편이 시작된다. <엑스맨2>의 새로운 진화가 궁금하다. 그래서 전세계 동시 개봉을 앞두고 김혜리 기자가 미국 LA으로 날아갔다. - 편집자

LA=김혜리 vermeer@hani.co.kr

스톰(날씨를 다스리는 엑스맨)에게 무슨 불쾌한 일이라도 있는 걸까? 26개국 기자들을 초청한 <엑스맨2>의 시사 및 회견이 열린 4월13일의 LA는 종일 궂은비 아래 가라앉아 있었다. 캘리포니아 하면 비치 보이즈부터 상상했던 방문객의 시무룩한 눈이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순간 번쩍 뜨였다. 후줄근한 검정 점퍼에 때묻은 운동화, 소품 조수쯤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 <엑스맨> 시리즈의 사령관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다. 폭스의 마케팅 부서 직원이 이튿날 인터뷰 스케줄을 다짐하는 중이다. 푸석한 얼굴로 끄덕거리던 감독이 갑자기 펄쩍 뛴다. “그런데, 나 아마 내일 8시 반에 다른 곳에 있어야 하는 것 같은데.” “아침 8시 반에? 저런, 무슨 일이죠?” “어어… 무슨 기술적 문제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뭔지 기억이 안 나네.” 전편보다 아무리 촬영 스케줄이 늘어나고 예산이 늘어났다 해도, 일찌감치 못박힌 세계 동시개봉 스케줄은 변함없이 감독에겐 목에 감긴 쇠사슬인 모양이다. 과연 브라이언 싱어의 과로는 보상받았을까?

돌연변이들이 뭉쳤다 >>

2000년 여름 블록버스터 레이스에서 <엑스맨>은 영광의 다크호스였다. 알록달록한 스판덱스를 입은 영웅의 발차기를 예상했던 관객의 허를 찌른 첫 장면- 수용소에 감금된 유대 소년의 비명이 나치의 철조망을 엿가락처럼 우그러뜨리는 프롤로그부터, 이 마블 코믹스 영화는 액션블록버스터 무리 가운데 우뚝했다. 특수효과가 캐릭터를 시중들고, 성숙한 갈등과 적당한 위트가 어울린 이 영화에서 블록버스터 리그치고는 검소한 7500만달러의 예산은 알차게 쓰였다. 브라이언 싱어는 놀랍게도 전작 <유주얼 서스펙트>의 앙상블 연출력과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의 주제의식을 폐기하지 않은 채 초능력 돌연변이들의 화려한 판타지 속으로 들어갔다. 싱어 감독은 기본기를 인정받아 메이저 스튜디오에 고용된 선댄스 키드가 아니라, 거대 스튜디오의 자산을 취미에 맞게 활용하고 있는 행운아처럼 보였다.

<엑스맨2>에서 전선(戰線)은 이동한다. 1편에서 돌연변이 등록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인간을 무력으로 절멸시키려는 매그니토와 인간과 공존을 모색하는 자비에 교수가 말콤X 대 마틴 루터 킹의 구도로 맞섰다면, 2편은 비범한 이족을 멸종시키려는 인간의 도발에 돌연변이들이 일시적 연합전선을 형성해 맞선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건 뮤턴트이건 전혀 ‘유주얼’하지 않은 용의자들이 잔뜩 등장한다. <엑스맨2>는 1편이 착륙한 자리에서 그대로 시작한다. 기억을 찾아 캐나다로 떠난 울버린은 아직도 여행 중이고 자비에 ‘영재’학교의 학생들은 자연사 박물관에 견학을 갔다가 초능력을 통제하지 못해 소동을 일으킨다.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준 스톰. 2편에서 더 큰 활약을 보인다.(왼쪽)

뮤턴트를 멸시하고 두려워하는 보통 인간들의 가시돋친 시선이 로그와 그녀의 남자친구 아이스맨, 불을 조작하는 파이로를 포위한다. 한편 백악관에서는 대통령 암살 미수범이 ‘돌연변이 해방!’이라는 슬로건이 적힌 단도를 남기고 달아나 뮤턴트에 대한 사회의 공포와 적개심이 극에 달한다. 이처럼 <엑스맨2>는 요새와 학교로 제한됐던 1편의 무대를 처음부터 벗어난다. 브라이언 싱어가 인간 대 돌연변이의 종족대결로 갈등이 평면화하는 위험을 무릅쓰며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가족과 또래집단, 사회라는 좀더 넓은 평면에서 엑스맨들이 처한 위치다.

돌연변이에게 대응하려는 미국 대통령 앞에, 음지에서 일해온 전직 장성 겸 과학자 윌리엄 스트라이커(브라이언 콕스)가 등장해서 비책을 제시한다. 돌연변이 기지인 자비에 학교를 비밀리에 초토화하자는 제안이다. 그는 뮤턴트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약물로 선한 돌연변이 나이트크롤러에게 암살을 교사하고, 감옥의 매그니토에게 정보를 빼내 포위망을 좁혀온다. 1편 말미에 매그니토가 자비에에게 던졌던 “그들이 네 아이들을 공격해오면?”이라는 물음은 끔찍한 현실이 된다.

진과 스톰이 나이트크롤러를 찾아 급파되고 교수와 사이클롭스가 매그니토를 면회간 사이, 돌아온 울버린과 주니어 엑스맨들만 남은 학교를 스트라이커의 부대가 급습한다. 특별한 아이들이 무방비한 상태로 잠든 기숙사에 테러진압 부대가 들이닥치는 장면은 관객에게 대단한 자극과 긴장을 준다. 격노한 투사 울버린은 “오랜만이다”라는 스트라이커의 소름끼치는 인사에 다시 지옥 같은 과거를 대면하게 된다. 세레브로(자비에 교수가 텔레파시를 증폭하는 장치. 모든 돌연변이, 모든 인류의 뇌파를 움직일 수 있다)를 통한 돌연변이 일망타진을 꾀하는 스트라이커는 세력규합을 위해 도망치는 울버린과 로그 일행을 뒤쫓지 않는다. 스트라이커의 목적은 세계 지배나 지구 멸망이 아니라 돌연변이의 홀로코스트다. 세상을 향한 야심이 아닌 개인적 원한에 뿌리를 둔 그의 악의는 깊고 집요하다.

레이디 데쓰스트라이크의 급습으로 스트라이커의 포로가 된 사이클롭스.(사진 왼쪽)진 그레이와 사이클롭스 커플의 사랑싸움? 스트라이커의 세뇌는 연인의 혈투를 부른다.(사진 오른쪽)

강력해진 액션, 진해진 로맨스 >>

<엑스맨2>는 97분가량으로 다소 미진하게 끝났던 <엑스맨>보다 20분 이상 길고, 스토리는 1편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말대로 이제 와서 보면 1편은 한 영화의 긴 전반부를 잘라서 독립시킨 듯한 느낌이다. 2편 역시 바른 마침으로 완결된 인상보다는 기나긴 이야기의 한마디를 임의로 끊어낸 인상이다. 등장인물 머리 수나 에피소드의 부피면에서 성경이 부럽지 않은 만화 <엑스맨>의 40년사를 생각하면 놀랍지 않다.

주역 엑스맨들의 특출한 재능과 콤플렉스를 이미 소개한 터라 <엑스맨2>는 그것을 바탕으로 한 액션과 유머로 곧장 돌입한다. 전편을 보지 못한 관객이라도 재치있는 팁들을 통해 인물과 스토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지만, 만약 전편을 보았다면 잠재된 서스펜스와 조크를 처음부터 100% 즐길 수 있다. <엑스맨>을 기억하는 관객은 이제 상황만 보고도 엑스맨 중 누가 능력을 뽐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엑스맨들이 곤경에 처하면 머릿속으로 분주히 직소 퍼즐을 맞추는 즐거움이 있다. ‘여기서 로그가 파이로의 성미를 다스리는 동안, 미스틱이 변신해서 잠입하고 아이스맨이 강을 얼린 다음 진이 염동력으로 빙하를 날리면?’ 하고 상상하는 것이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