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무술감독 원화평(袁和平)을 만나다 [3]
김현정 2003-05-02

홍콩 현지에서 만난 원화평 인터뷰 “<매트릭스>는 할리우드 액션의 새로운 고전이 되었다”

<매트릭스> 모자를 쓰고 들어선 원화평은 자그마한 사람이었다. 몸집 작은 동양인들 사이에 있어도 쉽게 묻힐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매트릭스> <와호장룡>으로 할리우드 액션영화에 태풍을 일으킨 무술감독이었다. 워쇼스키 형제가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상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직접 선택했다는 원화평. 그는 영화사 스탭들과 에이전트가 둘러싸고 있는 화려한 사무실에서도 한여름 골목길에 바람이나 쐬러 나온 것처럼 편안하게 처신했다. 수십년을 쿵후와 영화로 살아온 그는 대인(大人)이라고 부를 만한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매트릭스> 시리즈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가. 감독인 워쇼스키 형제가 내 영화들을 보고 의견을 냈다. 그들은 다른 할리우드 감독들과 달리 액션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매트릭스>는 내가 할리우드에서 만든 첫 번째 영화였지만, 워쇼스키 형제 덕분에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매트릭스>는 스토리보드와 완성된 영화장면이 대부분 일치한다. 스토리보드가 거의 없는 홍콩과는 작업방식이 많이 달랐을 것 같다. 워쇼스키 형제는 원하는 것이 분명해서, 그들이 말로 설명하면 내가 동작을 만들어 보여주고 다시 토론하는 식이었다. 그들이 마음에 들어하면 그대로 촬영에 들어갔다. 즉흥적인 홍콩과는 달랐지만 워쇼스키 형제는 홍콩 스타일과 비슷하게 일을 했다. 할리우드에선 보통 여러 대의 카메라로 액션장면을 촬영한다. 하지만 워쇼스키 형제는 가장 적절한 앵글을 선택해서 홍콩 감독들처럼 카메라 한대로 찍곤 했다.

서극을 비롯한 몇몇 홍콩 영화인들은 할리우드 스탭들이 쿵후를 제대로 찍을 줄 모른다고 불평한 적이 있다. 카메라가 배우를 쫓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신도 그렇게 느낀 적이 있었나. 나는 서극과는 다르다. 촬영하기 전에 철저한 훈련을 거치기 때문에 촬영하면서 어려움을 겪진 않는다. 물론 의견충돌은 있을 수 있다. 만일 좋지 않은 앵글로 찍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들에게 내 생각을 말했고, 그들은 내 의견을 수용하고 검토했다.

<매트릭스>에 출연한 배우들은 혹독한 훈련을 거쳤다. 홍콩에선 배우들을 훈련시킬 필요가 별로 없었을 텐데, 어떻게 작업했는가. 홍콩 배우들은 전문적으로 무술을 배우지 않았더라도, 기본기는 되어 있다. 배우가 직접 하기에 지나치게 어렵거나 위험하면 스턴트맨을 쓰면 된다. 하지만 워쇼스키 형제와 키아누 리브스는 스턴트맨을 쓰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략 석달 동안, 아침 아홉시부터 오후 다섯시까지 기본동작을 가르쳤다. <와호장룡>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나는 촬영 전엔 기본기를 다지도록 하고, 촬영에 들어가서야 구체적인 액션동작을 가르친다. 그편이 경제적이다. 배우들도 힘이 덜 들고 다칠 위험이 적어진다.

당신이 홍콩에서 만든 영화들은 와이어나 특수효과보다 배우들의 신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반면 <와호장룡>은 유장한 와이어 액션이 눈길을 끌었고, <매트릭스>도 와이어와 특수효과가 대거 동원됐다. 당신 스스로 이런 변화를 택했는가. 내가 <취권>을 찍었던 1970년대와는 관객도 영화도 많이 달라졌다. <취권> 시절엔 배우들이 직접 맞붙어 싸웠고, 관객은 그런 걸 좋아했다. 다른 시도를 하고 싶어도 기술이 따라주지 않았다. 지금 관객은 기대치가 높아졌다. 기술도 발전했다. <매트릭스> 1편에는 키아누 리브스가 공중에서 3단차기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장면은 훨씬 힘이 있고 액션을 두드러지게 만들어주지만, 예전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매트릭스2 리로디드>는 1편보다도 와이어와 특수효과를 많이 사용했다.

<매트릭스2>에서 가장 좋았던 액션장면은. <매트릭스>의 액션장면은 다 좋아한다. 내가 만들었으니까. (웃음) 키아누 리브스가 비를 맞으며 결투를 벌이는 장면을 가장 내세우고 싶다.

홍콩 액션영화는 역사가 깊다. 하지만 1970년대 이소룡이 인기를 얻었던 이후 한동안 잊혀졌다가 최근에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홍콩영화가 보여주는 액션은 사실적이다. 주먹과 발차기가 직접 오가는 빠른 동작은 할리우드에선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매트릭스> 탓이 크다. <매트릭스>가 나온 이후 할리우드영화들은 이 영화를 흉내내기 시작했고, 그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당신은 <취권> <철마류> 등을 직접 감독했다. 무술영화이긴 하지만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의 일일 것 같다. 당신은 어떻게 영화 만드는 일을 배웠는가. 내 아버지 원소전은 홍콩 무술감독들에겐 선구자와도 같은 분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스턴트맨으로 일했고, 자연스럽게 무술감독과 감독이 됐다. 사실 쿵후를 한다는 것과 쿵후 동작을 영화에 도입한다는 것은 매우 다른 일이다. 내가 배운 무술은 정해진 틀이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항상 달라져야 하고, 많은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쿵후를 배웠지만, 그들이 모두 훌륭한 무술감독이 되진 못한다. 당신이 최고의 무술감독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매트릭스>는 기법이나 동작, 개념에 뉴테크닉을 도입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내 경우도 비슷하다. 쿵후는 누구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난 머리를 써서 쿵후가 신선하게 보이도록 한다.글 김현정·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