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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 · 류승범 · 양동근,배우로 산다는 것 [1]

적어도, 남자배우들의 다양성과 퀄리티에 있어서 2003년 충무로는 세계 어느 나라 영화판이 부럽지 않을 것이다.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안성기, 문성근 같은 배우가 뿌리에서 든든하게 자리잡은 위로, 설경구, 송강호, 최민식, 한석규, 유오성 등이 단단하게 허리춤을 잇고 있고, 그 위로 신하균, 류승범, 양동근, 차태현, 조승우, 박해일 같은 배우들이 하루 볕이 무섭게 쑥쑥 푸른 빛을 틔워낸다. 이들은 작가와 비주류, 장르영화를 유연하게 오고갈 뿐 아니라, 장르 안에서도 코미디와 액션, 멜로를 가리지 않고 특유의 독특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 충무로에 유독 남자배우들을 위한 시나리오가 넘쳐나는 것 역시 이들의 존재가 빚어낸 결과물일 것이다. 하여 <씨네21>은 창간 8주년을 맞아 이 ‘행복한 충무로’의 바로미터가 될 세명의 남자배우들을 불러모았다.

설경구, 류승범, 양동근. 한 사람은 연극으로, 한 사람은 영화로, 또 한 사람은 TV드라마를 통해 연기를 시작한 이들은 흔히 정석이라 일컬어졌던 메소드 연기론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은 채 모든 배역들을 자신만의 거름망을 통해 새롭게 해석하고 자연인 설경구, 양동근, 류승범을 경유해 누구도 복제할수 없는 창조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있다.

<실미도> 촬영을 앞두고 또다시 10kg을 감량한 핼쑥한 모습으로 나타난 설경구,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촬영이 한창인 류승범, <와일드카드>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양동근.

<씨네21>의 여덟 번째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서울에서 꼬박 2시간이 걸리는 강화까지 기꺼이 달려와준 이들은, 상상했던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강화의 갯벌과 기막힌 조화를 이루어냈다.

무슨 동네 아저씨들 개 잡으러 나온 것도 아닐진데, 약속장소인 동막해수욕장 매점앞으로 당도하는 이들의 차림새는 가관이었다. 맨 먼저 도착한 설경구가 ‘추리닝’ 차림으로 어슬렁어슬렁 나타나 매점 앞 파라솔 의자에 턱 하고 앉아 담배를 한대 피워물고 있으려니, 두 번째로 도착한 류승범이 아니나 다를까 <품행제로> ‘중필이’ 패션으로 나타나 선배님 앞으로 잽싸게 달려온다. 앞선 스케줄이 늦는 바람에 제일 나중에 도착한 양동근 역시 커다란 추리닝 반바지를 펄럭펄럭거리며 “아! 저 멋진 사람들 옆에 서기가 너무 부끄러워!”라는 특유의 감탄사를 남발하며 수줍게 비비적거리며 걸어온다. 가까이서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확인하지 않는다면, 멀리서 스윽 바라본다면, 영락없이 ‘강화 청년회 비정기모임’쯤으로 보일 이들의 만남은, 봄비가 여름장마처럼 쏟아졌던 이상한 4월, 쨍하게 햇빛이 쏟아졌던 하루, 바로 그날 이루어졌다. 2시간 남짓의 인터뷰, 혹은 방담 속에 누구 하나 그럴싸한 말로 연기론을 부르짖지 않았지만, 이들 모두에겐 슬쩍 넘기는 이야기 속에 배우로서의 오랜 고민이, 결코 만만치 않은 까탈스러움이 드러났다.

변신은 무슨 개뿔

류승범 | 저는 모든 영화에서 똑같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요. 하지만 나는 걱정 안 해요. 나는 변신한다는 말 되게 우습게 생각하거든요.

설경구: 가장 무책임한 기사가 ‘변신의 천재’, 뭐, 이런 거예요. 변신은 무슨 개뿔, 다 자기지. 배우들은 변신 못해요. 살 빼면 변신인가?

류승범 | 얼마 전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인터뷰에서 “내가 어떤 캐릭터로 가는 게 아니고 그저 나란 인물에서 불필요한 부분만 제거하는 거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게 맞는 말 같아요.

양동근 | 그건 어떤 역할을 연기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수많은 역할이 있고 수많은 연기를 다 그런 방식으로 할 수는 없을 거 아니에요. 그게 맞을 수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는 거죠. 다 통합해서 말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연기라는 게 결국엔 그 감성을 표현하는 거 잖아요. 여러 사람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저를 집어넣어야 할 때도 있고 뺄 때도 있는 거죠. 그 모든 상황과 경우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뭔가가 주어지면 그것에 맞게 바꿀 수 있어야 배우죠.

설경구 | 결국 가장 편한 모습에 맞게 연기가 떨어지는 거죠. 석규 형도, 민식이 형도 강호도 그렇고 자기 영화재료가 다 다르고, 살아온 게 다 다른데 어떻게 같은 연기가 나올 수 있겠어. 감독이란 사람이 나를 극한 상황까지 몰고가면 나도 모르는 변태 같은 모습이 나올 수도 있는 거고. 그것도 결국 내 속에 있는 거죠.

양동근 | 사람들이 답 내리는 걸 좋아하고, 비교하는 것 좋아하고, 깔아뭉개는 것 좋아하고 그러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인생이 답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듯이! 연기도 답이 없는 거죠.

설경구 | 사실, 인터뷰하면서 연기 이야기 안 하고 싶어요. 보고, 그냥 느끼고, 알아서 판단하면 되는 건데. 인터뷰를 하다보면 자꾸 분석을 시켜. 다 찍고나서 분석을 시키는 거야. 내가 볼 때 얘들, 아무도 연기분석 안 하거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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