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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애니를 껴안다①-이명하

조용한 고수

국산 애니메이션의 해외 페스티벌 수상 소식이 심심치 않게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오는 6월 열리는 프랑스안시페스티벌에도 국내에서만 15편의 작품이 본선에 진출했다.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의 물꼬가 터진 것일까. 그래서 독립 작품 감독들을 만나 그들이 품은 꿈과 희망을 해부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첫 주인공은 2000년 일본히로시마페스티벌에서 ‘존재’로 국산 작품의 해외 페스티벌 첫 본상 수상의 기록을 세운 이명하(29) 감독이다. <편집자>

2000년 8월 히로시마페스티벌 폐막식이 열린 아스터플라자 연금매장. 그때의 감격을 기자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신인상… <존재>의 이명하.” 호명되는 소리에 한국 참관단은 환호의 도가니. 말 그대로 뒤집어졌다. 당시 EBS에서 방영되던 주간 애니메이션 분석 프로그램 <애니토피아>의 진행을 맡고 있던 기자는 현지 취재를 겸한 방송 리포터의 역할도 함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이명하 감독의 방송용 인터뷰를 다 마쳐놓았던 터라 인터뷰를 새로 따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그게 뭐 그리 대수랴. 다시 인터뷰를 하는 쪽이나 당하는 쪽이나 신나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니.

그로부터 2년8개월여 만에 만난 이 감독은 언뜻 별로 변한 게 없어 보였다. 예의 보일 듯 말 듯한 사람 좋은 미소도, 패션에 신경쓰지 않는 수수한 차림새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괄목상대(刮目相對)라고 했던가.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동안 내공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보면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은 작품이죠. 졸업작품(홍익대 시각디자인)이라 동화도 부족했고 사운드도 엉망이었고, 무엇보다 출품 직전 데이터가 바이러스를 먹어 많이 손상됐었거든요.”

그런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그는 회사에서 새 작품 기획 및 제작에 몰두했다. <큐빅스>로 유명한 씨네픽스다. 대학졸업 한달 전인 2000년 1월부터 지금까지 3년3개월 동안 이곳에서 그가 매달린 작품이 <큐빅스> 후속작인 <아큐아 키즈>다.

“큰 프로젝트를 기획부터 제작까지 모두 해볼 수 있었다는 게 정말 제겐 큰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입사하자마자 새 기획팀으로 들어와 이야기 개발부터 1부(13부작)가 완성될 때까지 연출팀장으로 일을 했거든요.”

그렇게 얻은 소중한 노하우를 틈틈이 가꿔온 새 작품에 쏟아붓기 위해 그는 최근 회사에 휴직계를 냈다.

“아무래도 상업적 작품을 하다보니 제약이 많게 마련이죠. 미국 수출용을 염두에 둔 작품인 만큼 미국 정서와 어린이 정서 등을 많이 고려해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팀원들간에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해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그가 준비하는 새 작품은 고향별로 가고 싶어하는 로봇의 이야기다. 10분 정도로 이르면 올해 안, 늦어도 내년 3월까지는 완성할 예정이다. 그가 가져온 작품 개요집을 보니 설정과 스케치가 만만치 않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더이상의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이 작품을 위해 들인 공력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일단은 혼자 시작할 예정이에요. 혹시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나오면 더 좋겠구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냐는 우문에 그는 씩 웃으며 현답을 냈다.

“제가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만들고 싶을 때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형모/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h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