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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다큐멘터리는 지속된다 <포토에세이 사람>

MBC <포토에세이 사람> 월∼금 오전 10시50분

가난한 사람들만을 주로 찍어 ‘거지작가’로 불렸던 다큐멘터리 사진가 최민식은 자신의 사진산문집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에 실린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정신으로 나의 영원한 주제 ‘인간’,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추구해나갈 것이다. 그곳에서 위대성과 진실성을 발견할 것이다.” 또한 “막말로 말해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노래의 집결”이라 자칭한 시집 <만인보>에서 시인 고은은 이렇게 적었다. “오,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다 세계이다.”

MBC의 <포토에세이 사람>을 보면서 최민식과 고은의 이 글들을 떠올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30년 넘게 <인간> 연작에 몰두한 최민식의 지구력, 10년 넘게 <만인보> 연작에 힘을 기울인 고은의 집요함과 이 프로그램을 곧바로 비교한다는 것은 아이러니에 가까운 일이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이제 갓 1년 반을 넘긴 이 프로그램과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거리가 그다지 멀어 보이지는 않는다. 적어도 인간에 대한, 인간의 삶에 대한 극진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시선이 세상의 중심보다는 주변을 향해 있다는 점에서는 말이다.

사실, 소재만으로 보자면 이 프로그램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지금은 공중파 휴먼다큐멘터리의 고전이 된 <인간시대>를 제작한 MBC만 해도 <포토에세이 사람> 이외에 <따뜻한 세상>을 방영하고 있고, KBS에서도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말 그대로 보통 사람들의 삶을 안방에 전달해주고 있다. <포토에세이 사람>이 주목을 끌고, 또 이들보다 좀더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이 프로그램이 채택하고 있는 독특한 형식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수십컷의 사진과 담담하다 못해 무덤덤하게 들리는 배철수의 내레이션이 고작이다. 방영시간도 다른 휴먼다큐멘터리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0분에 지나지 않는다. 규모와 화려함으로 승부하려는 공중파 방송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이러한 부조화 때문인지 시청률은 영 볼품없지만 지난해 11월, 방영 1주년을 기념해 같은 제목으로 책을 묶어내기도 했다. 제작진의 지극한 정성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사람들의 삶을 리얼타임으로 재현할 수 있는 동영상을 제쳐두고 흑백 스틸사진이라는 고전적 방식을 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흑백사진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전통의 한가운데 서 있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공황기를 기록한 사진가들이 그랬고, 앞서 말한 최민식의 사진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흑백사진이 사람들의 삶을 가감없이 보여준다는 믿음이 깨진 지 이미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흑백사진이 가장 진실하다고 믿는 순진한 사람은 별로 없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세상을 흑과 백으로만 파악하는 흑백사진의 단출함과 소박함이 보통 사람들의 삶을 가장 그럴듯하게 옮겨놓을 수 있는 매체인 것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포토에세이 사람>이 기대고 있는 것도 흑백사진의 진실성 자체가 아니라 그 단순한 매체가 고단한 인간사를 표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는 믿음인 것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많다. 무엇보다 형식만 새로울 뿐, 전달해주고 있는 내용은 공중파 방송의 휴먼다큐멘터리가 지켜온 노선을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쉽게 말해 주변부 사람들의 자잘한 일상과 미담을 통해 결국은 “그래도 이런 사람들이 있으니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진부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데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는데, 이는 새 부대만 준비해놓고서 오래된 술을 담는 격이다. 시인 고은이 <만인보> 1권의 서문에서 “여기에는 사람의 추악까지도 해당되어야 했다. 소위 진선미만으로는 사람을 다 밝힐 수 있는 때는 사실인즉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위선에만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듯, 보통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면서 미담만을 늘어놓는 것은 거짓일 수 있다. 팍팍하고 살벌해 보이는 세상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선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누가 모를까. 이 새로운 다큐멘터리에 세상을 보는 착한 눈보다는 그 많은 선한 사람들의 삶을 고단하게 만드는 원인을 지적하는 깡마른 시선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일만은 아닐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삶을 요구하지만, 삶이 지속되기 위해 다큐멘터리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거대한 삶에 비하자면 다큐멘터리는 그저 소소한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삶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무모하고 용감하다. 오래 지속되는 삶만큼이나.김형진/ 자유기고가 ofotherspace@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