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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
심은하 2003-05-07

얼마 전 한 청년이 가방끈에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이 나라가 싫고 이 세상이 싫다.” 그가 나라와 세상을 버리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무엇이 이 열아홉살 먹은 청년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을까?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다. 그럼 누가 그런 편견을 유포하는가? 여러 부류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맹렬한 집단이 바로 일부 보수교단의 목사들이다. 동성애자 차별을 이들처럼 사명감 갖고 하는 자들도 없을 것이다.

지난 4월 초 국가인권위원회가 동성애자 사이트를 유해매체로 규정한 것을 인권침해라 규정하고 이의 시정을 권고하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라는 단체의 목사들이 곧바로 규탄 성명을 냈다.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가 ‘동성애’를 ‘정상적인 성적지향’으로 간주했고 (…) 청소년보호위원회마저도 전격적으로 이에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는 데 그 충격이 더 크다.” 한마디로 동성애자 사이트가 “갈등과 혼란으로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타락시키는 유해매체라는 것이다.

기가 막힌 것은, 이들이 이런 폭언을 하던 그 입으로 버젓이 “동성애자 등 소수의 인권이 보호받고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소수의 인권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방식을 보자. 동성애자는 “창조질서에 대한 도전”이며, “가정의 붕괴”를 초래하여 “국가와 사회”를 위태롭게 하며, 나아가 에이즈를 전염시키는 주범으로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권을 각별하게 “보호”하고 유별하게 “존중”해주니, 어찌 가방 끈에 목을 매고 싶지 않겠는가. ‘독사의 자식들’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창조질서에 대한 도전? 이 세상 모든 게 신의 지으심이라면 동성애자 또한 신의 지으심이다. 어디 감히 목사들이 하나님 작품에 시비를 거는가. 가정의 붕괴? 정작 동성애자 가정을 붕괴시키는 것은 자기들이 조장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분위기다. 사회적 지탄의 대상? 에이즈를 옮기는 환자는 대부분 이성애자들이다. 그런데 왜 더 많이 에이즈를 옮기는 자신들의 성 취향만은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가?

동성애자를 매도하는 근거로 이들은 ‘레위기’와 ‘로마서’를 든다. 주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따르고 싶은가? 그럼 ‘레위기’에 쓰인 대로 동성애자를 돌로 쳐죽일 일이다. 뭐 하는가? 당장 쳐죽이지 않고. 그뿐인가? 죽이는 김에 바람 피운 자도 쳐죽이고, 멘스 중에 섹스한 자도 쳐죽이고, 미아리 점쟁이들은 아예 집단학살을 해버려야 한다. 그뿐인가? 미안하지만 목사님들 중에 눈이 멀거나, 다리를 절거나, 팔 다리가 상한 분들, 그리고 결혼할 당시 처녀가 아니었던 사모님을 둔 목사님들도 조용히 교단을 떠나셔야 한다.

‘동성애자는 죄인이지만, 죄인의 인권도 보호받아야 한다’? 심오한 농담이다. 아무 죄없는 동성애자를 죄인으로 간주하는 것 자체가 벌써 인권 유린이다. 그래서 독일의 헌법재판소는 동성애자를 죄인으로 규정하는 교회의 입장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동성애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반면 우리 목사님들은 동성애를 죄악시함로써 남에게 해를 끼친다. 아무 근거없이 타인을 음해하고 매도하는 것은 인종차별 못지않은 범죄행위다. 시민사회는 이제 교회 일각에서 저지르는 범죄행위를 법으로 제재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자신의 신앙과 성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던 수많은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고 한다. 이들을 계속 죽게 만들 것인가? 독일의 교회에서는 동성애자들을 신앙공동체 안에 끌어들이기 위해 신학적 검토를 하고 있다. 어느 교회에서는 아예 동성애자들의 삶을 성화의 모티브로 연출한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동성애자 부부가 아기를 입양하고 기뻐하는 장면은 성화 속의 예수 탄생의 모티브로, 에이즈로 숨진 아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의 모습은 전통적인 피에타로 연출되어 있었다.

문제는 동성애자 사이트가 아니다. 정말로 위험한 것은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들 사이에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유포하는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이 그저 동성애자라는 이유에서 타인을 죄인으로 낙인찍고 차별한다면, 그거야말로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동성애자 사이트는 유해매체가 아니다. 외려 감히 하나님을 빙자하여 편견과 차별을 실천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야말로 지극히 위험한 청소년유해단체다. 진중권/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