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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이의 전주 다이어리 [1]
김현정 2003-05-09

술 대신 작가를, 잠 대신 다큐를

전주 아가씨 김현정 기자의 `작가`들과의 同居同樂 무박8일

장 외스타슈의 다큐멘터리 을 20분 정도 보고 있던 젊은 관객이 가방을 움켜쥐었다. “오빠, 이게 뭐야. 도저히 못 보겠어. 나 먼저 갈게.” 평범한 할머니가 한번 했던 이야기를 자꾸만 다시 하는 은 감독이 친한 친구들에게만 보여준 영화라고 했다. 그가 그렇게 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나갔고, 기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파란색 ID카드를 내밀고 들어왔던 나는 차마 나가지 못했다. 처음도 아니었다. 거장에게 바치는 오마주와 밤인지 낮인지 분간이 안 가는 흑백 무성영화, ‘작가’라고 불리는 감독들의 다큐멘터리를 견뎌온 일주일 동안, 자꾸 선배 H가 떠올랐다. 지난해에 그는 파졸리니의 <테오레마>를 보고 돌아온 내게 눈을 최대한 크게 뜨면서 “너, 왜 그랬니?”라고 물었다. 사실은 너무 심하게 잠든 나머지 꿈도 꿨다고는 절대 말 못했지만, 그는 사람 보는 눈이 있었던 것이다. 그 안목이 여전한 H 선배는 이번엔 “술만 마시지 말고, 작가들의 영화도 열심히 보렴”이라고 못 박는 전화도 잊지 않았다.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입문기

고향이 전주라는 이유만으로 짐을 싸서 내려오던 날, 비가 참 많이 왔다. 첫날이라서 티켓 판매 부스도 너무 붐볐다. 비맞으며 영화제목과 내용과 감독을 일일이 확인할 여유가 없어서 같은 줄에 서 있던 사람이 사는 티켓을 똑같이 샀는데, 직접 고른 유일한 영화가 심야상영 프로그램인 ‘폭발,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이었다. 거기엔 ‘섹스 머신’이라고 불렸다는 탐정이 나오는 <샤프트>와 우연히 만난 영화기자가 “코피 터진다니까”라면서 추천한 <코피>가 들어 있었다. 약간 불안하기는 했다. 자정부터 상영을 시작하는데 첫 번째 영화는 다큐멘터리 <배다스 시네마>였고, 그 다음은 멜빈 반 피블스가 감독·각본·제작·편집·주연을 도맡았다는 ‘독립영화’ <스위트 스위트백스 배다스 송>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영화의 상영시간을 더하면 153분. 사람도 많은 데서 목청도 크게 “영화를 보겠다고? 그냥 평소대로 해”라고 외쳤던 안목있는 또 다른 선배 L을 뒤로 하고, 전주에서의 첫 번째 영화를 보러 메인상영관인 전북대 문화관을 향해 떠났다.

전주를 밝히는 불면의 밤에도 잠은 자야한다. 극장 의자에서 애처롭게 잠시 휴식을 취하는 관객

비가 주룩주룩 내려 쌀쌀한 가운데도 티켓박스는 사람들의 열기로 넘쳤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배다스 시네마>는 초호화 캐스팅에 가까운 영화였다. 영국인 감독이 흑인선정성 영화라는 용어로 번역되는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즉 흑인(black)+착취(exploitation)라는 심상치 않은 뜻을 가진 장르를 탐구하는 다큐멘터리였지만, 타이틀은 화려한 원색에 음악이 경쾌했고, 처음부터 쿠엔틴 타란티노가 나왔다. 욕설과 폭력이라면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타란티노지만, 그조차도 어린 시절 멋모르고 블랙스플로이테이션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들어갔다가 난무하는 욕설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뒤이어 <샤프트> 리메이크 버전에 출연한 새뮤얼 L. 잭슨과 자료화면에도 나오고 인터뷰도 하는 여배우 팸 그리어, 그 아들만 알고 있는 래퍼 투팍의 어머니, 영화평론가 몇명이 등장해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이 가지는 영화사적 의미와 문화사적 맥락을 꼼꼼히 짚어주었다. 그러나 기억에 남는 한마디는 <스위트 스위트백스…>의 감독 멜빈 반 피블스가 남긴 것이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뭘까 생각해보니, 섹스였다. 그래서 섹스 애니멀을 만들기로 했다.” 내 선택이 만족스러웠다.

이번에도 생각과는 달랐다. 꼬마 스위트백이 어른 창녀 위에 엎어졌다가 그대로 청년이 되는 도입부는 감독이 말한 그대로였지만, 영화는 금세 혼란에 빠졌다. 스위트백은 흑인청년을 구타하는 백인경찰을 수갑으로 때려눕히고 도망가기 시작한다. 이상하게도 그는 뛰기만 할 뿐, 자동차를 훔치거나 버스에 무임승차할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인화한 필름처럼 한 가지 색깔만 번쩍, 나타나는 이상한 그림들과 감독의 연출의도를 충실히 지키는 몇번의 섹스신이 지나간 뒤,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스위트백이 멕시코의 어느 산꼭대기가 육안으로 보이는 지점에 도달하자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뛰어라, 스위트백. 두발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어”라는 가사가 반 이상을 차지하는 노래였던 것이다. 바로 두 시간쯤 전, <배다스 시네마>가 “블랙스플로이테이션에서 음악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꼭 미리 알고 그런 것 같았다. 당대의 흑인 관객은 사막에 쓰러진 스위트백을 보면서 “하느님, 차라리 저대로 죽게 해주세요. 백인들의 손에 죽게 하지 마세요” 하고 울었다지만, 현대의 한국 관객들은 “저게 끝인가?”하고 술렁이면서 스위트백에게 안녕을 고했다.

며칠 뒤 아침에 본 <코피>는 다시 한번 생각과 달랐다. <스위트 스위트백스…>는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의 ‘독립영화’라고 할 수 있다던 설명을 주의깊게 볼 걸 그랬다. 팸 그리어가 마약 때문에 폐인이 된 아홉살 여동생의 복수를 하는 <코피>는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이 도대체 뭘 착취한다는 거지?”라는 의문을 풀어주는 영화였다. 코피(팸 그리어)가 흑인 마약상의 머리를 통째로 날리는 장면은 잔인했고, 그녀가 뒤돌아 드레스를 벗고 천천히 앞모습을 보이는 장면은 아찔했다. 코피와 창녀들간의 17 대 1 정도 되는 격투장면에선 가슴 부분만 골라가면서 옷을 찢었기 때문에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의 참의미를 깨달았고, 곱슬머리 사이에 끼워넣은 면도날을 보면서는 동서를 막론하는 무기의 보편성을 깨우쳤다. 끝내 <샤프트>를 보지 못한 것이 기사를 쓰는 지금까지도 아쉬울 따름이다.

전주에서 발견한 다큐멘터리 1

증오의 끝을 바란다

<마이 테러리스트> | 2002년 | 이스라엘 | 율리 코언 거스텔

1978년 런던, 젊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가 이스라엘 항공기 승무원들이 탄 버스를 향해 총알을 퍼부었다. 한명이 죽었고, 두명이 다쳤다. 부상을 당했으면서도 살아남았다는 자책에 시달리던 율리 코언 거스텔은 23년이 지난 어느 날 그 테러리스트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이 작은 질문으로 시작된 영화가 <마이 테러리스트>다. <마이 테러리스트>는 좀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딸들에게 증오를 물려줄 수는 없어서” 이 영화를 찍은 율리는 자신의 상처를 보살피는 과정이 두 민족 사이의 뿌리깊은 갈등과 멀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몇십명을 죽인 아랍인들이 평생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율리가 몸담고 자랑스러워했던 이스라엘군대는 팔레스타인 마을에 폭격을 퍼부었다. 군인 마을에서 자란 율리는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현장을 목격한 뒤 제대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이 테러리스트>는 테러가 시작과 끝을 가릴 수 없는 복수의 순환이라는 사실 역시 피해가지 않는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여성은 팔레스타인의 테러 때문에 열여덟살난 예쁜 딸을 잃은 어머니다. 그녀가 자신이 쉴 수 있도록 대신 안식일 식탁을 차려주던 딸을, 다시는 볼 수 없다면서 통곡할 때, 역시 어머니인 율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율리는 <마이 테러리스트>를 찍던 도중 9·11 테러를 경험했다. 자신에게 총을 쏜 테러리스트가 가석방될 수 있도록 탄원을 준비하던 율리는 잠시 망설이지만, 결국 탄원서를 제출한다. 누군가 분노와 증오의 고리를 끊는다면, 그 고리는 언젠가는 끝이 보일 직선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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