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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댑테이션>,찰리 카우프만 [5]

찰리: 간장, 왓?

해영: 말 놓자더니 왜 이래, 찰리.

해준: 그런데, 영화에서 비슷한 성적 악몽이 몇번 반복되잖아. 그거… 좀 작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강박을 꼭 그런 식으로 표현해야 하나?

찰리: 작위적이라니, 실제로 그랬던 건데.

해영: 그거야말로 궁극의 소심함을 보여주고 있지. 당신도 우리 동호회에 가입해. 일명 ‘작은 마음 동호회’. 그런데 우연치곤 참 이상하지 않아? 작가들은 하나같이 다들 소심하단 말이야.

해준: 작가들은 결국 혼자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찰리: 그래도 당신들은 둘이니까 좀 나을 거 아냐.

해준: … 우린 둘이라서… 두배로 소심해.

찰리: 찾아보면 우리 주변엔 소심하지 않은 작가들도 있어.

해영: 예를 들면?

찰리: 아리영.

해준 · 해영: (마주보며) … 그새 배웠어.

해준: 아, 늦었지만 상 받은 거 축하해. 그 기사 보면서 무지 부러웠다. 상도 상이지만 무엇보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과의 돈독한 관계가 진정 부럽더군. ‘앞으로도 우린 함께할 것’이라는 말, 사실 쉬운 거 아니잖아. 그건 그냥 사람끼리 친하기만 한 게 아니라 쌍방의 ‘크리에이티브한 친밀감’이란 소리니까. 창조적 상승의 관계. 흔히 감독과 작가의 관계 상당수가 소모적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당신은 데뷔부터 운이 참 좋았던 셈이야. 물론 <존 말코비치 되기> 같은 시나리오를 쓴 건 ‘운’이 아니었겠지만.

해영: 매번 새로운 감독과 일을 해야 하는 우리 같은 뜨내기 작가들은 일단 계약하기 전에 감독하고 궁합이라도 봐야 한다니까. 노트북 앞에서 끝간 데 없이 자아분열하고 있을 때, 나를 완벽히 무력화하는 말 한마디가 있어. <세기말>의 정경순 대사였는데. ‘열심히 쓰면 뭐해, 어차피 감독이 다 바꿀 거’라고. 감독과 작가의 관계가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감독과의 소통이 ‘대안 대 대안’의 설득 과정이 아닌 ‘주관 대 대안’의 구도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고,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합리적이지 못한 경우도 흔하지. 작가들의 피해의식은 감독들의 피해의식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봐. ‘시나리오부터 장악하지 못하면 감독으로서 무능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감독 스스로를 속박하는 거야. 사실, 문제는 ‘누가’ 하느냐가 아니거든. ‘어떻게’ 하느냐지.

찰리: 작가 스스로도 ‘자신의 시나리오가 끝’이라는 생각에서 자신을 조금 더 해방시킬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시나리오 완고는 끝이 아니라 앞으로 많은 가능성을 가진, 그 자체로서 시작인 거니까. 시나리오는 감독, 제작자, 스탭, 배우 등을 통해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거니까, 작가도 그 변화에 동참해서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도 이 일을 잘해나갈 수 있는 덕목 중 하나 아닐까 싶네. 우리 조금 덜 소심해지자고.

해영: 그래도 일단 ‘작은 마음 동호회’에 가입은 해. 잘해줄게.

해준: 가만. 수다떨다보니 좋은 생각이 났다. 몇달째 공포영화 시나리오 못 써서 공포에 떨고 있는 우리의 모습, 그 자체를 시나리오로 쓰는 거야. 어때, 무섭지 않아?

해영: 그건 <어댑테이션>이랑 너무 똑같잖아.

해준: …그래? …그럼 조폭을 끼워넣으면 되지.

해영: 음. 감쪽같군.

이때, 허리를 실컷 지지고 떡진 머리로 돌아온 도널드.

도널드: … 있잖아, 친구들. 내가 저쪽에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이런 아이템은 어떨까? 배경은 찜질방…. 형사와 범인, 그리고 희생자의 운명적인 삼각관계 로맨스를 그리는 거야. 물론 액션도 있고… 어때?

해영: … 그게… 알고보니 한 사람이야?

도널드: 잉? 뭔 소리야, 삼각관계라니까… 바보 아니야?

수건 하나 턱 두르고 샤워실로 가는 도널드. 머리 위, 큼직한 전구가 하나씩 탁 탁 탁 켜지는 우리 세 사람.

해준: (알고보니 한 사람이 아니었다… 거 새로운데)

해영: (범인이 시한부면 더 좋겠어)

찰리: (제목은… <또3>?)

셋 : 도널드, 같이 가!

※ 실제로 이 헐렁한 농담이 ‘3천 마디’인지는 자신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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