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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댑테이션>,찰리 카우프만 [1]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작가 이야기찰리 카우프만 그를 해부한다

여기, 머릿속에 집을 짓고 웅크린 사내가 하나 있다. 그의 이름은 찰리 카우프만. 사교성 없는 그는 다행스럽게도 예술가다. 할리우드는 그의 글에 돈을 지불하고 영화로 만든다. 자기 머릿속만으로는 부족했던지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타인의 뇌까지 잠입한 전력이 있는 그는 신작 <어댑테이션>에서 급기야 자신을 증식시켜 쌍둥이로 둔갑했다. 그리고 스토리텔링의 불가능함에 대한 스토리를 요란하게 떠들어댄다. 사람이 오죽 괴로우면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찰리 카우프만의 ‘제 살 도려내기’는 영화세상에서 작가라는 존재가 처해 있는 곤경을 보여준다. 그렇다! 그들은 영토라고는 파지가 구르는 골방이 고작인 고통의 제왕들이다! 또 작가주의 비평 이론이 세상에 나온 이후 정작 작가들의 고생은 얼마나 막심했던가. 감독도 제작자도 원작자도 하나같이 그들에게 절대적 존중을 구할 뿐, 존중해줄 궁리는 하루에 단 몇초도 하지 않는다. 신경쇠약 직전에 있는 시나리오 작가들을 대변하여 의뢰받은 영화를 극히 자기중심적으로 이용한 용사 찰리 카우프만,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명랑하고 기운찬 성품에도 불구하고 찰리의 편두통을 남의 일 같지 않게 공감한 <품행제로>의 두 얼굴 작가 이해영, 이해준 콤비에게 ‘밀착취재’를 부탁했다. (아 참, 혹시 이게 무슨 소린지 막막하신 분은 84쪽에 나온 <어댑테이션> 프리뷰를 참고하세요)글 김혜리vermeer@hani.co.kr·편집 심은하eunhasoo@hani.co.kr

폐쇄적이고 소심한

찰리 카우프만이라는 시나리오 작가가 자신의 책 <난초도둑>을 각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원작자 수잔 올린은 ‘기껏해야 난초가 튤립쯤으로 바뀌겠거니’ 생각했다. 애초부터 비선형적으로, 그러니까 어지럽게 쓰여진 자신의 논픽션이 각색되는 것에 큰 기대를 갖지 않았다. 프로듀서 애드 섹슨이 시나리오를 들고 와서 “이건 정말 놀랄 만해요. 하지만 읽기 전에 알려드릴 것이 있어요. 조금 다르고요, 당신도 그 안에 나와요” 하며 머뭇거리고 돌아간 날에도 첫 장면에 등장하는 찰리 카우프만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이상하다. 이건 각본가 이름인 것 같은데” 하며 대강 덮어둔 채 잠을 청했다. 이튿날,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마다 수잔 올린은 ‘수잔 올린’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름과 사람만 같을 뿐, 영화 속에서 난초의 마약에 절어가는 수잔 올린의 캐릭터는 영화 바깥 자신의 삶을 멋대로 각색해버린 것이었다. 진심 어린 마음으로 간극의 창조를 인정했지만,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그녀는 애드 섹슨에게 말했다. “재밌네요. 정말 좋아요, 진짜 색다르고…. 하지만 내 이름만은 바꿔주세요.” 프로듀서 애드 섹슨이 간청했다. “보세요, 모두가 실명을 쓰잖아요, 제발… 온통 자기 이름을 쓰는 찰리는 영화에서 마스터베이션까지 한다고요.” 수잔 올린은 승복했고, 실재의 출발선을 지워버린 <어댑테이션>은 그 상태에서 수정없이 고스란히 촬영되었다.

스스로를 동원하여 실제와 허구의 범벅을 만들어놓은 <어댑테이션>의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은, 그러나 예상되는 것(혹은 기대하는 바)처럼 노출증 환자가 아니다. 그는 사진촬영에 극도의 혐오감을 갖고 있고, 말수도 적다. 뿐만 아니라 공적인 장소에 참석하는 것은 더더욱 싫어한다. 또는 두려워한다. 소문에 의하면 언젠가 그는 공동 인터뷰 자리에 나가는 것이 싫어 자신의 대역배우를 고용하기까지 했다. 사생활을 물어오는 것에도 거부감을 표한다. 또는 무서워한다. <에스콰이어>의 인터뷰 도중 몰고 다니는 차종을 물어보는 질문에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실’들이란 사생활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을 가리킨다. 뉴욕주립대에서 영화를 공부했고, 잠시 저널리스트 생활을 거쳐, <네드와 스테이시> <겟 어 라이프> 등의 시트콤 대본작가 생활을 했으며, 낮에는 대본을 쓰고, 저녁에는 각본을 쓰면서 완성한 첫 번째 작품이 <존 말코비치 되기>였으며, 프로듀서 스티브 골린의 눈에 띄어 감독 스파이크 존즈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는 대중 앞에 노출되기를 싫어할 만큼 폐쇄적이며, 대중에게 소개되는 것을 피할 만큼 소심하다. 바로 그런 찰리 카우프만이 자신을 모델로 <어댑테이션>이란 영화를 만든 것이다.

<어댑테이션>의 시나리오 완성본을 본 스파이크 존즈는 제작자 조너선 드미에게 감독을 맡고 싶다고 편지를 썼다. 자신이 감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조너선 드미는 <존 말코비치 되기>의 편집본을 보고서야 믿음을 갖고 스파이크 존즈에게 <어댑테이션>을 넘겨주었다. 외양적으로는 한편의 성공적인 사례인 것처럼 보이지만, 7개월째 한줄도 쓰지 못하고 모니터만 바라보아야 했던 찰리의 위기가 아니었다면 현재의 <어댑테이션>은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1998년 조너선 드미가 찰리 카우프만에게 수잔 올린의 책을 각색할 것을 제안했을 때, “그녀의 책을 좋아했고, 꽃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존 말코비치 되기>를 촬영 중이던 그 즈음 다른 시나리오 <순결한 정신의 영원한 빛>도 팔렸다. 그런데 찰리 카우프만은 이때부터 이중의 압박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점점 더 백지상태가 되어갔다. 영화에 등장하는 찰리의 초조함 그대로. 그러다 더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갑자기 결심했다. 이 답답한 상황 자체를 영화화하자. 이때부터 찰리 카우프만은 초조함을 창조적으로 가공해내기 시작했다. “에너지는 장애에 있었다”는 찰리 카우프만의 고백은 이 과정에 대한 토로이다. 영화 속에서 찰리 카우프만은 모든 것을 벌거벗는다. 실제 삶(real life) 속의 자신을 영화의 삶(reel life)으로 옮겨놓는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덧붙이고, 세계를 짓는다. 봉쇄의 상황이 낳은 최선의 도약이었다.

초조함을 창조적으로 가공해내다

이런 상황들을 통해 탄생한 <어댑테이션>은 영화만들기에 대한 영화라고 이해되기 쉽다. 하지만 찰리 카우프만은 “이 영화는 영화 만들기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나는 사람들이 그런 쪽으로 머리를 쥐어짜지 않기를 바란다”고 잘라 말한다. 스파이크 존즈도 “그것은 단지 배경일 뿐”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므로 실제 인물인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법 강사 로버트 맥기와 가상의 쌍둥이 동생 도널드 카우프만(찰리 카우프만은 자신과는 대조적인 작가관을 가진 쌍둥이 동생 도널드 카우프만을 영화에 등장시킨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1인2역을 한다. 또한 도널드 카우프만은 이 영화의 크레딧에도 당당하게 올라 있다)을 할리우드에 대한 비유적 야유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한 이해의 통로로 빠지기 쉽다. 왜 끝끝내 실제 명단에 가상의 인물 도널드 카우프만을 올려놓았는지, <어댑테이션>에서 사건은 어느 시점부터 시작하는지, 그리고 누구를 희생자로 선택하는지를 눈여겨보면 좀더 넓은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어댑테이션>은 그 낱말 자체가 포함하고 있는 중의적 의미들, 즉 찰리 카우프만의 시나리오 세계를 조정하는 지시판들을 예술가의 삶 안으로 끌어들인 또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개조와 적응과 각색’의 모티브가 이야기화된 또 한편의 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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