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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교정 단편집 <피리부는 사나이>와 <붕우>

작가의 향기에 물들다

그 만화들을 보았을 때, 나는 묘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마치 “향기는 감수성의 심장부까지 침투한다. 향기는 가장 개인적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장 그르니에의 말처럼, 나는 그 만화들이 풍겨내는 독특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그것은 다른 만화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몇 페이지를 넘나드는 독립된 감정의 시퀀스이거나(예를 들어 <피터팬>에서 피터팬과 후크와 팅커벨이 대화하는 시퀀스) 아니면 낮은 파문으로 확산되는 캐릭터들의 감정과 같은 것들이다.

언젠가 <어색해도 괜찮아>를 이야기하며, 아주 일상적인 에피소드들이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주인공들의 기분에 감염된다”고 했는데, 다시 단편들을 읽으면서도 감염, 간섭, 확산, 공명과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다. 롯의 죽음을 마주한 피리부는 사나이의 감정이 윤회의 시간을 거쳐 현대를 살아가는 민흰에게 감염될 때, 꿈이라는 우연적 소도구를 통해 전달됨에도 불구하고 권교정의 만화를 통해 나도 민흰처럼 똑같은 감정의 동요를 느꼈다. ‘감정적 동요’라는 단어는 매우 주관적이지만, 권교정 만화는 이 주관적인 감정을 객관적으로 확산시킨다. 비록 사제에 의해 이단이라, 사악한 존재라 분리될지라도 사물에 대한 깊은 애정을 소유한 마법사가 컴컴한 화장실에 만들어준 아름다운 우주의 별빛을 바라본 꼬마의 기분, 사랑하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추운 겨울 맨살을 드러내 자신의 몸을 차갑게 만들어 열에 들뜬 아내를 살리려 한 순찬의 마음, 친구의 복귀를 확인하고 웃으며 죽어간 방연과 그 방연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아내 위부인의 마음까지 두권의 단편집에 실린 7개의 단편을 통해 나는 만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겪는 감정의 흐름에 고스란히 내 감정을 내맡겨야 했다. 권교정 만화에 등장하는 감정들은 ‘향기’다. 주인공들의 가장 개인적인 것을 실어내 감수성의 심장부에 침투하는 ‘향기’다.

중세와 동화를 넘나드는

두권의 단편집에서 돋보이는 시각적 아이콘은 중세와 동화다. 중세는 보통 ‘고딕’이라는 이미지로 다가오고, ‘고딕’은 주로 ‘호러’로 해석된다. ‘드라큘라’라는 표상이 대표적이다. 반면 권교정의 만화에 나오는 중세는 사람과 함께한다. 뾰족한 탑을 지닌 영주의 성이 등장하지만, 그 성에서 무언가 은밀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존재한다. 마법사도 엄청난 마법을 부리는 게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고 소박하게 자신의 일을 해나갈 뿐이다. 권교정 만화의 중세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과 함께 흥미로운 풍광을 재현하는데, 낯선 패션과 공간으로 독자들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권교정 만화의 독자들은 작가가 요구한 그대로 웃고, 울고, 흥분하는 것이 아니라 중세라는 낯선 이미지들로 인해 만화의 시대와 공간, 인물들과 분리되어 만화를 해석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서양의 중세만이 아니라 익숙한 동화를 재해석한 작품도 마찬가지다. ‘피리부는 사나이’가 왜 아이들과 사라졌을까, ‘피터팬’이 늙지 않으려 한 이유는 뭘까, <백설공주>의 ‘계모’는 과연 나쁜 여자인가처럼 익숙한 동화를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는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생각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그렇다. 당연하다. 하지만 이 당연함이 2003년 오늘에는 장점이 된다.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의 감정을 제어하려 하는 만화들이 너무 많아 함께 해석하고 생각하는 즐거움을 주는 권교정의 만화가 빛나는 것이다.

매력적인 이미지언어

권교정은 만화에서 이미지를 어떠한 방식으로 다루어야 하는가를 잘 알고 있는 작가다. 만화에서 이미지는 언어다. 이야기를 담아 보내는, 발화(發話)의 코드다. 그래서 만화의 이미지는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다. 추상화되어 있는 이미지에서, 지극히 객관적인 이미지까지. 하지만 만화의 이미지는 엄격하다. 이미지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이야기와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양하게 열려 있는 이미지와 엄격한 이미지의 두 가지 서로 모순된 측면에 만화의 이미지가 존재한다. 만화의 이미지는 오랜 숙련을 필요로 한다. 인체의 정확한 묘사, 다양한 앵글의 구현, 2차원을 3차원으로 바꾸어주는 원근의 마법까지 언어에 녹아들어 있다. 그러나 테크닉보다 중요한 것은 만화의 이미지를 언어로 이해하는 것이다. 권교정 만화의 이미지는 작가가 요구하는 대로 이야기한다. 이미지만 도드라지지도 않고, 이야기에 이미지가 치이지도 않고 마치 유려한 시인의 언어처럼, 소설가의 언어처럼 그렇게 존재한다.

2003년 봄, 새로운 옷을 갈아입은 두권의 단편집 <피리부는 사나이>와 <붕우>를 보았다. 이들은 각각 <적월전기>(1998)와 <붕우>(1999)라는 타이틀의 단편집으로 출판되었던 작품들이다. 척박한 한국만화의 출판 풍토에서 구할 수 없어 독자들을 안타깝게 했던 그 만화들이다. 다소 뜬금없는 말로 마무리(이 말은 꼭 하고 싶었다), 권교정 만화독자들의 열심에 박수를 보낸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