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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포럼(indie forum) 2003 [1]
문석 2003-05-30

골때리는 영화들아, 반갑다

5월 31일부터 개막하는 인디포럼 2003, 추천작 25편

독립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조망하는 인디포럼 2003이 5월31일부터 6월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올해 인디포럼이 내건 슬로건은 ‘산점(散點)-미학선언1. 의미의 비종속성’이다. ‘초점’의 상대어인 ‘산점’이라는 개념은 회화에서 쓰였던 것으로, ‘사물의 다양한 측면을 화가가 깊이있게 관찰, 나름대로 현실을 통합해 하나의 화폭에 그려내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처럼 다소 난해한 슬로건을 내건 이유는 현실의 다양한 층위를 제시하는 작가의 사유능력과 관객의 자유로운 상상과 해석능력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같은 ‘의미의 비종속성’에 대한 강조는 올해 선정작 중 실험영화가 부쩍 늘어났다는 것과 관련이 깊다. 30편의 극·실험영화 중 3분의 1이 실험영화이며, 그외에도 실험성이 두드러진 작품이 많다는 사실은 오늘의 독립영화계가 고민하는 바를 짐작게 해준다. 즉, ‘독립영화’가 아니라 영화 그 자체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격렬해지고 깊어졌다는 것. 다양한 지원제도와 여러 색깔의 영화제 등으로 독립영화가 생존할 수 있는 토대가 미약하나마 안정화됐고, 충무로에서 생산되는 상업영화의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독립영화의 존재조건에 대한 고민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외에 한때 우후죽순처럼 쏟아져나오던 디지털영화가 새로운 발전을 위한 위축 국면에 들어갔고, 일상에 관한 새로운 고민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장르영화의 요소를 끄집어 키치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이 나름의 완성도를 갖게 됐고, 독립 애니메이션의 기술적인 진보가 일정 단계를 넘어섰다는 점 등은 올해 인디포럼의 두드러진 경향들이다.

인디포럼 2003의 국내상영작은 출품작 404편(극·실험영화 332편, 다큐멘터리 28편, 애니메이션 44편)에서 추려낸 극·실험영화 30편, 다큐멘터리 13편, 애니메이션 9편 등 모두 52편이다. 또 일본의 실험영화 그룹 FMIC(film makers information center)의 작품 8편, 2002년 ‘포스트 픽션!-일본의 새로운 기록 선언! 논픽션 뉴픽션’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열렸던 야마가타플러스영화제의 다큐멘터리 4편,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열리는 실험영화제 미디어시티에서 6편 등 18편이 해외초청작으로 소개된다. 한편 해외초청작의 각 섹션을 대표해 제레미 릭스비 미디어시티9 프로그래머, FMIC의 기획자이자 영화감독 수에오카 이치로, 일본 다큐멘터리 감독 시미즈 히로유키 등이 게스트로 서울을 찾을 예정이다.

인디포럼 2003이 내일의 한국영화를 이끌 미지의 감독을 발굴한다는 의미만을 가진 건 아니다. 젊고 발랄하며 싱싱하고 참신한, 해서 때때론 치기(稚氣)와 의욕과잉일 수도 있는 새로운 영화와 조우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독립영화 축제의 진정한 의미이며 즐거움이리라. 때문에 영화들을 평가하기보단 가슴으로 즐기고, 스크린 뒤에 숨은 작가의 생각을 읽으려 노력하는 것이 관객의 행동지침일 것이다. 이 젊은 영화들 사이를 탐험할 수 있는 지도를 제시한다. 편집자편집 심은하 eunha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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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를 밟고 일어서라 | 일상의 새로운 포착 6편

일상은 독립영화의 오랜 관심사였다. 하지만 일상을 다룬 많은 영화의 경우, 홍상수 감독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사람들의 행위에 대한 집요한 탐구와 인간의, 그리고 관계의 모호성을 그려내는 홍상수 영화세계를 모방하거나 답습하는 작품이 많았던 것. 올해 인디포럼은 이같은 그림자가 서서히 걷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상 또는 그 확장형인 다양한 관계에 대한 묘사에서 자신만의 색깔이 드러나고 나름의 독창적 철학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 이하/ 16mm/ 컬러/ 25분/ 2003년/ 극·실험

이 관계, 수상하다. ‘야메’ 운전교습소의 사장과 여직원 재경. 뜨거운 눈빛을 주고받지도, 마음속을 뒤집어 털어놓지도 않지만 둘 사이에선 미묘한 긴장이 흐른다. 사장은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고 번호를 누르지만 무의식적으로 재경에게 신호가 가고, 재경은 “이젠 너도 나 없이 혼자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장의 말에 벌컥 화를 낸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이들이 마시는 소주와 맥주처럼 뜨뜻미진하고 김빠진 것이어서 누구도 “널 사랑해”란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 없다. 스스로 알아서 식힐 수밖에 없는 열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이들의 일상도 퇴근길의 1호선 열차처럼 푸석푸석 흘러간다. 핸드헬드로 포착한 이 ‘주변부’의 사랑 이야기는 보는 이를 시종 출렁이게 한다. <용산탕> 등을 만든 이하 감독의 이 작품은 지난 5월20일 폐막한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인 동백대상을 받았다.

<김밥 싸는 남자> | 하경용/ 16mm/ 컬러/ 34분/ 2002년/ 극·실험

비겁한 과거에 대한 일상의 반항. 소설가 정우는 인터뷰 약속 때문에 고속터미널 근처에 갔다가 구걸하는 소녀를 만나고서, 방황하던 3년 전 만난 한 여자를 떠올린다. 글이 안 써져 괴로워하면서 공원에 나가 깡소주를 마시던 그는 매일 같은 자리에서 김밥을 싸와 먹는 여자를 보게 된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녀가 접근해오자 정우는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무 대가없이, 진심으로 다가오는 여성을 정우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지식인의 허위의식에 대한 반성이 엿보이는 작품.

<단순한 열정> | 이진우/ 16mm/ 컬러 /11분/ 2003년 / 극·실험

필터없는 맨눈으로 관계를 확대관찰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허름한 여관방으로 들어가는 남녀가 보인다. 이내 여자가 방에서 뛰쳐나오고 남자가 뒤따른다. 구질구질한 골목길을 유영하듯 헤매는 남녀.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떠돌던 남녀는 다시 여관으로 돌아간다. 한곳에 머무는 카메라는 화면 이리저리를 헤집고 다니는 남녀를 일종의 풍경처럼 고찰한다. 그들은 멋진 로맨스의 주인공이 아니라, 칙칙한 골목의 한 구성요소에 불과한 것이다. 앙상하게 가시만 남은 남녀관계가 쓸쓸하게 보인다.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에서 코닥상을 수상했다.

<선재네 집에서 하룻밤>

<김밥 싸는 남자>

<선재네 집에서 하룻밤> | 함영준/ 16mm/ 컬러/ 25분/ 2003년/ 극·실험

친구와 연인이라는 관계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먼 것인가. 선재와 민수는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왔다. 남들은 둘이 어울린다지만, 민수는 선재에게서 성적 감흥을 못 느끼고, 선재 또한 민수에게 데면데면하다. 하지만 어느 날 외로움에 지쳐 선재네 집에서 술을 마시던 민수는 하룻밤을 청하게 된다. 남녀의 미묘한 감정을 기교부리지 않으면서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영화. 유독 낮은 천장 아래서 두 사람이 나누는 키스장면은 인상적이다.

<시즈쿠> | 하종수/ 35mm/ 컬러/ 20분/ 2002년/극·실험

일상 속에 촉촉히 스며드는 판타지를 깔끔하고 예쁘게 그려낸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주인공은 어느 맑은 날, 버스에서 빨간 우산을 쓴 기묘한 소녀를 만난다. 그녀의 치맛자락과 우산엔 빗방울이 맺혀 있고, 그녀가 내린 자리에도 물방울이 있었던 것. 깊은 인상을 받은 남자는 그녀에 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예기치 못하는 순간마다 공놀이하는 아이, 조깅하는 남자와 함께 빨간 우산의 소녀가 나타나고 남자는 점점 그녀의 신비에 매료된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올해 프리브루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됐던 이 작품은 오사카예술대학교에 다니는 하종수 감독이 일본에서 제작했다.

<후회해도 소용없어>

<단순한 열정>

<후회해도 소용없어> | 박경목/ 35mm/ 컬러/ 42분30초/ 2003년 /극·실험

남과 여의 반복되는 애증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영화. 연상의 여성 혜숙과 정남은 수시로 잠자리를 같이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 다퉜다가 화해한 지 얼마 안 된 이들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온다. 혜숙의 전 애인이자 정남의 선배인 동렬이 이들에게 술자리를 제안한 것. 동렬의 존재로 혜숙과 정남 사이는 갈라지기 시작한다. 삼각관계라는 뻔한 멜로드라마의 코드를 사용하지만, 다양한 장치를 통해 내면의 울림을 증폭시킨다. 사람들의 관계가 얼마나 깨어지기 쉬운지, 그리고 사소한 일에도 균열되는지 매우 섬세하게 묘사된다.문석 ssoo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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