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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산업 X-ray 4 - 마케팅의 전문화 [2]

04. 데이터가 기초다

광고 매체가 다양화한 것도 마케팅비를 상승시킨 또 다른 핵심 요인이다. 최근 광고 매체는 무려 40여종에 이른다. 대항목으로 볼 때 극장, 영상, 인쇄 매체와 같은 전통적인 광고 매체외에도 각종 옥외 광고와 온라인 매체가 새롭게 부상한 것을 알 수 있다. 매체 환경이 변화하면서 마케팅 역시 새로운 안목을 요구받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매체비를 합리적으로 절감할 수 있는가. 답은 데이터다. 매체의 효용과 작용 방식에 대한 전문적이고 방대한 조사를 통해 광고를 결정하는 것이 시장의 합리성이고, 이것은 모든 불분명함과 복잡한 관계를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체 조사와 더불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또 하나의 축이 바로 소비자 조사다. 현재 충무로 마케팅은 본질적으로 마케터가 하고 싶은 말을 소비자에게 소리지르는 식에 가깝다. 그러나 정작 온라인을 무기로 정보를 능동적으로 취합하고 극장 앞에 서는 요즘 관객은 얼마나 당당한가. “마케팅이 소비자를 망각하고 임의로 한다. 공급자 중심 관행에 따른다는 뜻이다. 하다 못해 낡은 자막 서체를 요즘 관객에게 익숙한 컴퓨터 서체의 레이저 자막으로 바꾸는 데도 총대를 메는 분위기”(이진훈 CJ엔터테인먼트 부장)라는 것은 마케팅이 ‘이기면 행운’인 무모한 싸움에 가깝다는 뜻이다.

물론 데이터화 작업은 지금도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중이고 효용성도 있다. 전문 대행사로서 데이터화 작업에 착수해온 데이브 컴퍼니의 정진기 대표는 “2년간 주간 단위의 조사를 계속해왔고 데이터 활용도를 흥행 예측에 대해 50% 정도의 신뢰도로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이런 시도에 대해서 “데이브의 조사 자료는 수준 여부를 떠나 유일한 자료다. 자료 조사는 전문 대행사들이 앞으로 살길이다. 매체 대행이나 부킹 등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이진훈)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데이터의 수준과 신뢰도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데이터 없이 P&A조정은 불가능한데 현행 데이터는 믿을 수 없다. 인지도와 선호도 조사를 하긴 하는데 ‘더 쓰자’로 결론 내릴 뿐 ‘왜, 어떻게’는 설명하지 못한다. 이를 위해서는 거대한 리서치가 필요하다. 통합전산망은 데이터화의 기초다”(황우현 튜브픽처스 대표), “충무로의 마케팅 스탭은 약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자질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자의 프로파일을 계량화 해내지 못하고 머릿속의 감으로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영화라는 상품의 특성이 있지만 그렇다고 ‘더 어렵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례로 소비자가 상품에 대해 수동적인 다른 상품과 달리 영화 관객은 정보 습득에 능동적이다.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안이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무엇보다 13억원이 들어가는 사업을 감으로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최준용), “영진위 자료실을 봐도 마케팅에 활용할 만한 데이터는 전무하다”(심재명) 등 인터뷰어들의 의견은 모두 일치한다.

‘마케팅의 과학화’에 초석을 놓는 것은 투자배급사의 몫이다. 실제로 시네마서비스는 표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자료를 입력하는 단계이며, CJ엔터테인먼트는 외부 기관과 합작으로 광고 조사에 착수하여 “조만간 데이터베이스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며 과감한 매체 조정이 올 것”(석동준)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야 기초 조사를 축적하는 단계라는 것은 이 조사가 고도의 분석 데이터로 가공하는 능력은 아직 멀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05. 문제는 크리에이티브

비용 절감과 관련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가 두 가지 있다. 그 하나가 바로 배우의 역할이다. 배우, 특히 톱스타가 나서는 홍보는 광고를 대체하는 효과를 갖는다. 배우 개런티와 계약에 마케팅 부문을 공식적으로 연동시키고 상호 솔직한 협상을 하는 방안도 고려해봄직하다.

더 중요한 요소는 크리에이티브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전면 광고라고 해서 특별히 더 눈길을 끌지는 않는다. 오로지 내용에 반응할 뿐이다. 그러니 광고물을 잘 만들어서 메시지 전달을 확실하게 한다면 광고 사이즈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현행 마케팅을 체험해보면 이 부분은 거의 개발되지 않은 취약지구라는 것을 절감할 수 있다. 심지어 현장 마케터들이 크리에이티브와 아이디어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고 전략적으로 컨셉을 도출했을지라도 단계마다 일관성 있게 끌고 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예를 들면 사진작가에게 비주얼을 내맡기고 그중에 배우가 멋있게 보이거나 극장주가 좋아하는 것, 혹은 사장이 좋아하는 것으로 선택해버리는 식의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작품뿐만 아니라 감독에 대한 컨셉 마케팅이 전무하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LJ필름이 국내외에서 김기덕 감독을 하나의 브랜드로 런칭해간 과정은 사례가 될 만하다.

컨셉 마케팅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작업이 종료된 뒤 전체 관여자의 사후 토론과 관리를 바탕으로 한 보고서 작업을 하는 것이 실용적인 방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팅 대신 술 먹는 ‘뒤풀이’로 끝을 내서는 무엇이 잘됐는지 모르고, 흥행 성공은 있어도 마케팅 성공은 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어렵다. 명필름은 ‘클로징 다운 미팅’을 통해 시스템과 자잘한 노하우를 지속적으로 축적해가고 있는 드문 경우이지만 여기조차 제작실 내부로 한정될 뿐, 관여된 모든 회사와 개인, 수많은 작업 단계들 전체로는 확장되지 않은 상태다.

06. MD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마케팅 디렉터 시스템’을 제안하는 기획의도에 대해 각 부문의 모든 사람들이 “절대 동의”를 표했다. 마케팅디렉터(MD)는 제작자, 프로듀서, 투자배급사와 수평적인 대화가 가능하고 마케팅에 관한 전략적 결정권 가진 사람이라야 한다. 지금은 마케팅에서 권위나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다기보다 클라이언트인 제작사 대표, 프로듀서, 투자배급사 입김에 따라 활동이나 비용, 내용까지 좌지우지 휘둘리는 모양새가 훨씬 많다.

MD 시스템은 이미 어느 정도 시작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네마서비스와 CJ엔터테인먼트뿐만 아니라 몇몇 제작사에서도 마케팅디렉터 개념에 가까운 지위와 역할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도 스스로의 역할과 호칭에 대해 규정하기를 머뭇거리고 특히 MD 본연의 기능에 가까운 역량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신있게 답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하나의 첨예한 논점이 대두됐는데, MD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가라는 문제였다. 현재는 제작사의 홍보 마케팅 기능의 강약 여부에 따라 다르고 대체로 ‘어영부영’인 상태에 가까운데, 제작사-투자배급사-전문 대행사들이 모두 한치의 양보도 없이 자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제작사의 경우 “기획 단계부터 영화에 밀착해 있고 영화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고, 투자배급사와 전문 대행사의 경우 “영화를 잘 아는 것과 소비자를 잘 아는 것은 다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법”이라고 맞섰다.

이같은 파워 게임과 신경전 양상은 조만간 가닥을 잡을 것으로 예측된다. 장기적으로는 결국 투자배급사가 마케팅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지금처럼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방식을 계속하면 돈이 다 도망간다. 흥행이 ‘이븐’(even) 수준에서 왔다갔다 하도록 책임져줘야 하는데 그 역할은 투자사의 몫이다. P&A 비용을 투자배급사가 책임지고 대신 1순위로 변제하는 것이 선호되는 방법”(이진훈 CJ엔터테인먼트 부장)이라는 시장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CJ엔터테인먼트가 신생 제작사와 손잡고 마케팅을 주관한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마케팅은 의미있는 시금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동시에 현재의 충무로 역량과 적절한 조율이 이루어지는 것도 또 하나의 양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신씨네, 명필름, 좋은영화, 싸이더스, 봄 등 마케팅 역량이 상대적으로 강한 제작사의 경우 어지간한 투자배급사의 경험과 노하우를 능가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서로의 역량과 선의에 대한 의구심의 흔적이 발견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가면서 서로 윈-윈 하는 방법으로 수렴될 것”(신철)이다. 또한 “기획 개발 단계에서 마케팅을 병행하면서 특히 장르영화, 상업영화는 마케팅적 요소를 아예 작품 안에 적극 수용해야 한다. 트렌드, 코드, 제목, 캐스팅, PPL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는 원 소스 멀티 유스 자체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케팅의 상업적 위상을 제고하는 길이 인하우스 마케팅실의 경쟁력을 특화하는 방안”(심재명)이라는 말도 시사적이다.

마케팅, 그것은 영화계에 입문하는 초보들이 프로듀서가 되기 위해 거쳐가는 진입로가 아니라 한국 영화산업의 제2단계 도약을 준비하는 핵심 분야다. 물론 투자배급사와 제작사의 인식 전환과 인재 양성, 취재원과 취재인의 봉건적 관계 개선 등 외부 조건이 필요하다. 이런 문제는 늘 ‘닭이 먼저, 계란 먼저’의 딜레마로 환원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정답은 ‘계란이 먼저’다. 조건이란 한 분야 전체가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이며, 결국 10년 전에 프로듀서 시스템이 정착할 때 그랬던 것처럼 유능한 MD가 등장하는 것으로부터 돌파구가 열릴 것이다. 이제는 마케팅에서도 ‘당대의 명인’ 나와야 한다. “사회 전반에 대한 전문 지식과 끝없는 공부”(최준용)가 강조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글 김소희 cwgod@hani.co.kr·이영진 anti@hani.co.kr·편집 심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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