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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풍‥>에서 <똑바로‥>까지,`작가` PD 김병욱 론 [1]

웬만해선 그의 순풍을 똑바로 막을 수 없다씨네21, 시트콤 공장에서 `작가` 김병욱을 발견하고 `오바`하다

1950년대까지 미국 평론가들이 스튜디오의 일관된 공정을 거쳐 나온 영화들을 2류로 여겼던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대형 영화사의 철저한 관리를 거쳐 오락물로, 흥행상품으로 만들어진 숱한 영화가 걸작으로 재평가된 것은 60년대 누벨바그의 주역이 된 프랑스 평론가들 덕이었다. 하워드 혹스, 앨프리드 히치콕, 니콜라스 레이 등이 그렇게 해서 뒤늦게 발견된 작가들이었다. 이처럼 창작자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지 않으면 예술이 될 수 없다는 오해는 뿌리 깊다.오늘날엔 비슷한 일을 방송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방송 비평의 주류는 지금도 선정성이나 도덕성을 논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김병욱의 시트콤을 이야기하면서 욕이 많이 나온다고,화장실 장면이 많다고 트집 잡는 현실은 놀랍다기보다 서글프다.시청률에 좌우되는 방송의 한계 안에서 고유의 세계를 만들어낸 작가를 격려하는 일은 TV냐 영화냐는 매체의 구분을 떠나 당면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로 이어진 김병욱의 시트콤 세편이 우리 삶에 전해준 기쁨과 웃음은 웬만한 영화보다 훨씬 큰 것이었기 때문이다. - 편집자

미국에선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시트콤의 왕국 미국에도 일일시트콤은 없다. 김병욱 PD는 지난 5년간 시트콤만 1천회 이상 만들었다. 살인적인 노동강도는 그렇다쳐도 어떻게 창작의 샘이 마르지 않았을까? 대여섯명 작가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초기 대본을 쓴다지만 김병욱은 대본까지 직접 쓰는 PD이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 신기한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다. 무려 592회를 방영한 <순풍 산부인과>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데 비해 다음 두 작품의 시청률은 다소 떨어졌지만 김병욱 시트콤의 완성도는 지금 주류 코미디영화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할 것이 없다. 상영시간이나 극적 리듬이 다른 영화와 시트콤, 두 장르를 같은 잣대로 비교할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캐릭터를 만드는 법에 관해선 김병욱의 시트콤에서 한수 배워야 한다. 오지명, 박영규, 용녀, 미달이 등 <순풍 산부인과>의 숱한 스타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할아버지 노구, 노주현, 박정수 부부, 아들 영삼으로 이어지는 삼대,<똑바로 살아라>의 노주현과 아이들, 이응경과 박영규, 재환과 리나, 흥수와 동욱(정명)은 모두 캐릭터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입증하는 예이다(이들 중 상당수가 김병욱 시트콤의 캐릭터를 모델로 삼은 CF를 찍었다).

김병욱의 캐릭터들은 오버하는 연기나 개인기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TV에서 손쉽게 볼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신중하게 매만져 인간 심리의 신경세포까지 조각한 듯한 인물들은 본심을 숨기지 못해 내비치는 실수와 표정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인류학자를 닮은 섬세한 관찰력은 김병욱 시트콤이 장수한 비결 가운데 하나다. 여기 덧붙일 것은 만화를 무색게 하는 상상력이다. 그들은 사실적으로 행동하고 반응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은 황당무계한 상상으로 말미암은 것이 대부분이다. 관찰력과 상상력의 조화는 김병욱 시트콤의 품질을 보증한다. 익히 알다시피 시트콤은 극히 적은 변수로 만들어지는 장르다. 공간과 등장인물이 정해진 틀을 벗어날 수 없다. 때문에 비슷한 사건이 자주 되풀이되며 극적 갈등의 파고도 일정하다. 노주현의 도자기나 액자가 번번이 수난을 당하고 형욱의 성적표가 언제나 정확한 타이밍에 도착하는 이유다.

주의를 기울여야 할 순간은 시트콤이 그처럼 단순한 장르라는 점이다. 지극히 적은 물리적 요소와 기술적 수단으로 어떻게 삶의 희로애락을 온전히 건져올릴 것인가? 여기서 김병욱의 시트콤은 일본 홈드라마의 대가 오즈 야스지로를 연상시킨다. 다다미방이라는 제한된 공간과 아버지와 딸이 중심에 놓인 몇몇 등장인물만으로 삶의 깊이를 들여다본 오즈의 영화처럼 김병욱은 집과 직장, 가족과 동료라는 일상적 관계에서 삶의 해학을 끄집어낸다. 아이들이 TV를 사달라고 떼쓰다 가출하는 이야기와 이웃집이 돈을 떼먹은 게 아닌가 의심하는 과정이 나란히 진행되는 오즈의 영화 <오하이오>를 보라. 김병욱 시트콤은 오즈의 영화와 같은 원천에서 뻗어나온 것이 분명하다.그들의 공통된 태도는 어떤 궁금증을 안겨준다. 그건 ‘작가’ 김병욱의 스타일과 세계관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01. 김병욱은 작은 코미디를 만든다

코미디는 광대의 장르다. 채플린이나 우디 앨런처럼 우스꽝스런 인물이 없으면 코미디라는 장르는 성립하지 않는다.그렇다면 김병욱 시트콤의 광대는 누구인가? 그의 작품에는 가난한 떠돌이나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지식인이 나오지 않는다.대신 친지에게 빌붙어사느라 눈칫밥 먹는 영규, 언제나 공부 못한다고 구박받는 아들 형욱, 걸핏하면 넘어지고 허둥대는 어설프고 겁많은 처녀 리나를 등장시킨다. 그들은 돈이 없어 서럽고 마음이 약해 안타깝지만 거꾸로 그런 이유로 시청자의 응원과 지지를 얻는다. 약해서 고통받고 웃음거리가 되지만 그래서 동정과 공감을 사는 고전적 코미디 구조는 김병욱 시트콤에서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김병욱이 풍자하는 대상은 영웅과 악당, 선과 악이 뚜렷이 구분되는 세계가 아니다. 틈만 나면 아들 뒤통수를 쥐어박는 아버지 노주현(<똑바로 살아라>)이나 호통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노인 노구(<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결코 쓰러뜨릴 대상이 아니다. “에미없이 커서 빗나갈까봐 더 엄하게 하는 거지”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살며시 드러날 때, 예쁜 할머니 만날 생각에 입이 찢어지는 할아버지가 카메라에 잡힐 때, 김병욱의 세상은 작아서 아름다운 순간을 만든다. 여기선 누구라도 웃음거리가 되지만 그를 조롱한다고 언짢아할 필요는 없다.등장인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사람들에겐 정말 사소한 일이기 때문이다.

라면에 계란을 두개나 넣어먹는다는 잔소리나 그것도 모르냐는 잘난 척은 사건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일이지만 김병욱의 코미디는 이런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당신이 느끼는 피로와 실망이 자본주의에 대한 분노나 가부장제에 대한 환멸 때문이 아니라 실은 아버지의 꾸지람, 시아버지의 구박, 하숙집 주인의 잔소리, 상사에 대한 불만, 아들의 성적표, 애인의 무관심 같은 것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여기 당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들을 보고 웃고 잊으시길.”

장진이 말하는 PD 김병욱“그는 시트콤을 만들 수도 만들어서도 안 되는 사람이다”

그가 웃음을 만들어낸다는 자체가 기적과도 같다… 난 늘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한때 꿈의 PD라고 칭송할 만큼 모범적이고 성실했던 김병욱 PD는 그 모습과 그 형태가 사라지지 않는 긴 관습으로 산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지금도 변함없을 거란 확신은 이 때문이다.

하나 그가 조망하는 세상에 대한 시선은 짙은 블루기로 뒤덮인 우울함 투성이었다. 그는 내게 언젠가 얘기했다. ‘난 내 자식이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끔찍해…. 그래서 아이를 원하지 않아. 내가 지금 아이를 만든 건 실수야….’

아무렇지 않은 듯 이렇게 말하던 그가 코미디를 만들려 하는 것이 난 언제나 신기했다.그렇다. 그의 드라마가 또 다른 정류들과 변별력을 지니는 것이…. 그가 만나고 정의내린 이 우울한 세상에 대한 확신이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웃음은 언제나 고립되고 궁지에 몰리고…. 세상에서 밑언저리로 고개를 돌릴 때 만나게 되는 우울한 궁상에서 시작한다. 그의 웃음이 단순한 에피소드 코미디를 뛰어넘어… 없어지지 못할 페이소스를 듬뿍지닌 개성들로 빚어지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그는 그 우울하고 초라한 캐릭터들로 이 불행한 세상에서 소담하게 웃는 방법을 안다.

그러나 아직도 난 그토록 슬퍼 보이게 정의한 그의 염세적 가치관에서… 그가 다른 이들을 웃기고 있다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 행복을 주고 있다는 것이 그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를 거란 추측을 해본다.왜냐면 그는 어쩌면 아직도 그 이유없는 슬픔을… 우울한 자기의 세상을 즐기고 싶어 할지 모를 거란 생각 때문이다. ps. 나는 영화감독이 되리라곤 꿈도 꾸지 못하던 94년 sbs에서 그를 만났다. 그뒤 약 2년 동안 <좋은 친구들>을 비롯한 몇개 프로그램에서 작가와 PD로 호흡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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